[장마당 돋보기] 북한의 화려한 결혼식 상차림 “보기만 하세요”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한국에서는 이맘때, 꽃 피는 봄에 결혼하는 신랑, 신부들이 꽤 많은데요. 북한에서는 어떨까요?

북한 결혼식, 봄보다 가을 선호하는 이유

손혜민 기자: 봄이면 북한에서도 결혼하는 신랑과 신부의 모습이 적지 않게 보입니다. 한국은 딸을 가진 아버지가 신부의 손을 잡고 걸어가면서 신랑에게 인도하는 과정을 결혼예식에서 진행하지 않나요. 북한에서는 신랑과 신부가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으므로 오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습니다. 도시는 도시 대로, 농촌은 농촌 대로 결혼식 풍경은 차이가 있지만요. 사람들이 몰려 구경하거나 무리 지어 들어가고 나오는 살림집이 보이면 ‘아 저 집에서 잔치하누나’ 이렇게 말하죠.

코로나19 이후 북한 주민들의 삶의 하루가 팍팍해졌지만, 그 속에서도 사랑을 나누고 가정을 이루는 신혼부부가 있다는 말인데요. 북한에서 결혼식은 봄과 가을에 하는데, 소득에 따라 선택하는 계절이 다릅니다. 봄에 결혼식을 올린다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우리가 알다시피 북한의 보릿고개는 봄철입니다. 식량이 부족한 계절이라는 의미죠. 결혼을 하려면 상차림에 들어가는 비용도 많지만, 손님을 치르는 데 들어가는 음식 마련 비용도 적지 않거든요.

북한 웨딩촬영
북한 웨딩촬영 2015년 8월, 북한 해변에서 한 신혼부부가 웨딩 촬영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

북한의 결혼식이 식량 가격이 그나마 내려가는 가을에 가장 많은 이유입니다. 특히 봄철과 달리 가을에는 배추, 무 등 채소도 많아 손님을 치를 반찬 재료 비용이 훨씬 적게 들죠. 따라서 북한의 결혼식은 소득이 낮으면 대체로 가을에 올리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람일수록 봄에 올리는 특성을 보입니다. 물론 간부나 돈주의 경우에는 계절에 관계없이 결혼식을 올리기도 하지만, 경제적 비용을 따지는 대중 소비 기준으로 평가해 본다면 가을을 선택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결혼식 장소도 가정 형편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요. 북한에서는 집에서 결혼 예식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고 하는데, 집에서 결혼식을 할 때 가장 신경 써서 준비하는 게 뭘까요?

결혼식에서 가장 중요한 상차림, 먹지는 못해

손혜민 기자: 북한에서 외화를 필수품으로 구매하는 중산층 정도면 대부분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합니다. 한국처럼 결혼 전문 웨딩홀이 있는 게 아니고요. 일반 식당보다는 규모가 큰 식당 건물에서 결혼과 환갑, 돌잔치 등 예식에 필요한 영업 봉사를 하는 겁니다. 이 정도의 식당 운영자는 외화벌이 기관이나 지방정부에 소속된 돈주들입니다. 평양은 물론 지방도시에도 2010년대 들어서 결혼 예식을 전문으로 주문 받아 영업하는 식당이 늘어났는데요.

결혼 예식장 비용은 시간 당 500달러부터 시작해 상차림의 품질, 축하공연 시간, 음식을 소비하는 손님 숫자 등에 따라 올라갑니다. 요즘은 최고지도자가 간부들의 부정부패 현상을 척결하도록 투쟁 강도를 높이면서 예식장을 이용해 결혼식을 올리는 간부집 자녀들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 장마당 장사가 경직되다 웬만한 중산층도 집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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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집에서 결혼식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상차림이죠. 상차림 음식은 먹는 게 아니라 보는 거라고 할 수 있는데요. 잔칫상 앞에서 신랑 신부가 결혼 기념사진을 찍으므로 상차림이 결혼식 위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죠. 2000년대 만해도 결혼식 상에는 가운데에 닭 두 마리를 놓고 그 양 옆으로 술병과 떡, 전, 과일 등을 높이 쌓았습니다. 하지만 2010년대부터 결혼식 상차림은 눈에 띄게 달라졌는데요. 떡이나 전 같은 것보다는 바나나와 파인애플 등 열대 과일과 고급 과자, 사탕, 빵, 고급 술과 음료수 등을 놓는 것을 북한에서 입수한 사진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진행자: 시간이 흐르면서 올리는 음식도 많이 달라졌네요. 그런 결혼식 상차림 음식은 따로 주문하는 데가 있는 건가요?

결혼식 신부가 가장 입고 싶어하는 한복은 한국산

손혜민 기자: 잘사는 집에서만 결혼 상차림에 올려놓았던 열대과일을 일반 주민들도 올려 놓는 것이 가능해진 것은 결혼식 상차림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임대해주는 장마당 매대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전국 지역마다 자리한 종합시장에는 과일매대, 당과류 매대, 주류매대 등이 있지 않나요. 거기 가면 시간 당 상차림에 필요한 상품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상인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상인들은 한두 시간 상품을 빌려 주고 돈을 받아 좋고, 결혼 대사를 준비하는 집에서는 적은 돈으로 결혼 상차림을 멋지게 차릴 수 있으니 좋은 거죠.

진행자: 북한에선 결혼식 때 사진용으로, 한국의 돌상처럼 상차림을 하네요. 그밖에 장마당에서 결혼 용품으로 많이 팔리는 건 뭐가 있을까요?

손혜민 기자: 아무래도 치마저고리 수요가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혼식 날 신랑은 양복을 입기 때문에 크게 옷에 대해 신경 쓰지 않지만, 신부는 치마저고리를 입기 때문에 신경 씁니다. 치마저고리는 중국산과 북한산, 한국산이 있는데, 한국산이 아무래도 고급스럽고 이쁘지 않나요. 한 번 밖에 없는 결혼식 날, 신부라면 누구나 한국산 치마저고리를 입고 싶어합니다. 원래 치마저고리는 신랑의 집에서 신부의 집으로 보내는 예장함에 넣어야 하는 필수 품목입니다.

그런데 10년간 군사복무하고 제대한 신랑이 무슨 돈이 있어서 한국산 치마저고리를 예장함에 넣어 주겠나요. 부모가 장사를 잘한다면 모르겠지만요. 이로 인해 한국산 치마저고리는 장마당에서 대여해서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혼식 때 병풍을 사용하는 집도 있습니다. 접이식 병풍은 화가에게 주문하면 금강산과 묘향산 등 풍경화를 그려주는데요. 가격이 꽤 비싸므로 병풍을 사는 집도 있지만 대여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또 결혼식 날 신랑, 신부가 사진을 찍을 때 반드시 손에 꽃다발을 들어야 하므로 장마당에서 잘 팔리는 상품의 하나가 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준비해야 할 것, 특히 빌려야 할 게 참 많네요. 또 요즘에는 북한에서도 결혼식 영상을 찍는 사람을 따로 고용한다면서요?

북한 웨딩촬영
북한 웨딩촬영 2018년 8월, 북한 평양에서 한 신혼부부가 고(故) 김일성 주석과 그의 아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형 청동상 앞에서 웨딩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AP)

결혼식 영상, 김씨 일가 동상 장면 필수?

손혜민 기자: 북한의 결혼식 문화에서 가장 큰 변화가 결혼식 영상을 비디오로 제작해 기록으로 남겨주는 문화입니다. 한국에서 신랑, 신부가 웨딩 드레스나 턱시도를 입고 다양한 자세로 결혼사진을 찍는 과정은 사진관에서 전문가의 연출에 의해 진행되는 것과 같습니다. 북한에서는 개인 살림집에 김부자 초상화 외 다른 사진을 액틀에 끼워 벽에 걸어놓으면 정치범으로 걸리기 때문에, 한국처럼 결혼사진을 커다란 액틀에 끼워 살림집에 걸어 놓지는 못하지만 영상 비디오는 제작해 보관합니다.

컴퓨터와 사진기를 장만한 IT기술자들이 결혼식 영상을 전문 비디오로 제작해주는데요. 결혼식 영상을 주문하면 신랑, 신부를 차에 태우고 경치 좋은 바다나 공원 등으로 나갑니다. 한국영화에서 남자가 무릎 끓고 한 손에 꽃이나 가락지를 들고 여자에게 주면서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 있지 않나요. 그 장면 그대로 신랑에게 연출시키는 거죠. 신랑이 신부를 업고 걸어가거나 둘이 손을 잡고 웃으며 뛰어가는 장면 등도 여러 번의 작업을 거쳐 촬영하는데요. 나중에 시끄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랑, 신부가 김일성과 김정일의 동상 앞에서 인사하는 장면도 놓치지 않습니다.

이렇게 촬영된 결혼식 동영상은 음악을 넣고 다양한 디자인으로 편집해 DVD, USB에 담아 주는데요. 제작비용은 선불입니다. 가격은 수백 달러에서 천 달러 이상으로 알려졌는데요. 이 가격은 명승지로 이동할 때 들어가는 승용차 임대비와 연료 비용, 한국산 치마저고리를 비롯한 다양한 복장 임대비용, 음료수 비용 등이 포함됩니다. 어쩌면 북한의 결혼식은 빈부격차를 실감할 수 있는 자본주의 축소판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행자: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