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 돋보기] 도시락 통으로 체면 깎이는 북한 남편들?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6월 1일은 국제아동절, 6월 6일은 소년단 창립절이라 북한의 아이들은 이맘때 신이 났을 것 같은데, 자녀를 둔 북한의 어머니들은 원족(소풍) 날 도시락 반찬에 신경이 많이 쓰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손 기자, 지금 어떤 분위기일까요?

소풍 날 도시락, 옥수수밥 위에 쌀밥 덮는 이유

손혜민 기자: 우선 장마당 분위기를 말씀드린다면, 당과류 매대와 육류 매대 등이 흥성거립니다. 국제아동절에는 유치원에서 원족(소풍)을 조직하고, 소년단 창립절에는 소학교에서 원족을 조직해서 아이들에게 도시락이나 간식으로 싸줄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소년단 창립절에는 소학교에서 소년단 입단 정치 행사가 진행되지만, 소년단 입단 행사는 광명설절(2.16)과 태양절(4.15)에도 진행되었으므로 이날 입단하는 학생 숫자는 적습니다. 따라서 이날 오전 소년단에 입단하는 행사가 진행된 후 소학교에서는 학생 집체로 원족을 가는 겁니다.

집단적으로 조직되는 원족은 유치원생들과 소학교 학생들의 집단의식을 목적으로 조직되지만, 사실상의 의미는 도시락 잔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는 아직 어린이 명절이 따로 없기 때문에 어린이들에게는 부모님이 싸준 도시락과 간식을 맛나게 먹으며 다양한 오락을 즐기는 날이 어린이 명절이죠. 하지만 이 날은 도시락 반찬과 간식에 따라 빈부가 선명하게 갈라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6월은 아이들이 쉽게 상처 받는 달로도 유명하거든요.

따라서 부모들은 자녀들이 밖에서 기 죽지 말라고 어떻게 해서든 주머니 돈을 털어 맛난 음식으로 도시락을 싸주느라 고민합니다. 가난한 집에서는 자녀의 도시락 밑에 옥수수밥을 깔고 위에는 이밥을 씌워 싸주기도 하고, 간식 가방에는 펑펑이(옥수수떡)라도 채워주고 작은 사탕 봉지라도 사서 보냅니다. 소득 수준이 괜찮은 집에서는 사탕, 과자는 물론 입쌀 강정과 젤리 등을 구매해 자식들의 원족 가방에 넣어주느라 장마당에 몰리는 겁니다.

2019년 9월, 북한 학생들이 백두산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2019년 9월, 북한 학생들이 백두산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2019년 9월, 북한 학생들이 백두산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AFP)

소풍 날 도시락 반찬으로 선명해지는 빈부격차

진행자: 저도 어렸을 때 소풍, 북한 말로 원족가는 날이 되면 맛있는 김밥 먹을 생각에 설렜던 기억이 나는데요. 북한의 어린이들도 마찬가지겠죠. 원족가는 날 북한의 도시락은 평상시와 좀 다릅니까?

손혜민 기자: 아무래도 많이 다르죠. 부모들이 정말 정성을 다하는 날인데요. 달라진 점은 2000년대 중반부터 도시락에 김밥이 등장한 겁니다. 그 전에는 고위간부들이나 국가에서 공급하는 김을 먹었고, 일반 주민들은 김을 구경도 못했거든요. 장마당이 발달하며 중국에서 수입된 김이 판매되었는데, 꽤 비쌌던 기억이 납니다. 김 한 장 가격이 500원이었죠. 당시 공장 노동자 월급이 1,800원 인 것을 감안하면 쉽게 살 수 있는 가격은 아닙니다.

잘사는 집에서만 아이들의 원족 날이 다가오면, 장마당에서 2~5장 정도의 김을 사서 김밥을 만들어 도시락에 싸주었는데요. 하지만 그 숫자가 적다 보니 빙 둘러 앉아 아이들의 도시락 뚜껑이 열릴 때 김밥 싸온 아이들의 어깨가 으쓱할 정도였습니다. 김에 대한 수요가 부각되자 2010년대부터 동서해 일대 중심으로 김을 양식하는 기지가 등장했는데요. 하지만 북한산 김은 품질이 좋지 않아 밥을 말면 터지곤 해 구매자가 적었습니다.

꼭 김밥을 싸지 않아도 이밥과 떡, 꽈배기 등에 돼지고기, 두부, 계란 같은 반찬을 도시락으로 싸오면 괜찮은 거죠. 두부에 콩나물 정도의 반찬도 싸주지 못한 부모는 부모대로 가슴 아파하고, 자식은 자식대로 가난이 서러워 눈물을 훔치는 사례도 꽤 많습니다. 특히 원족 날이면 잘사는 집 아이들 따로, 가난한 집 아이들 따로 모여 도시락을 먹는데요. 그나마 도시락을 전혀 싸오지 못한 아이는 돌부리에 앉아 있는데요. 담임 선생이 정이 많은 선생이라면, 자기에게 학생들이 뇌물로 바친 도시락을 가난한 집 아이에게 나누어 주는 사례도 있습니다.

2011년 9월, 라선시 인근 농촌 지역에서 이동하고 있는 어린이들의 모습.
2011년 9월, 라선시 인근 농촌 지역에서 이동하고 있는 어린이들의 모습. 2011년 9월, 라선시 인근 농촌 지역에서 이동하고 있는 어린이들의 모습. (Reuters)

북한의 도시락 통 변천사

진행자: 그것도 훈훈한 일이지만, 어쨌든 내 도시락이 변변치 않으면 마음 상하는 건 어쩔 수 없겠죠. 도시락 반찬만으로도 북한의 빈부격차가 크게 느껴지네요. 그런데 북한 내 빈부격차는 도시락 통만 봐도 알 수 있다면서요?

손혜민 기자: 맞습니다. 1990년대 중순 이전, 국가공급체계가 작동할 때만 해도 북한 주민들이 사용하는 도시락은 국영공장에서 똑같은 디자인으로 생산해 상점에서 판매된 납작한 모양의 알루미늄 도시락이었습니다. 벤또라는 말로도 통용되었죠. 알루미늄 도시락은 파손될 염려는 없었지만, 며칠에 한번 닦아주지 않으면 꺼멓게 변해 신경 써야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가정 주부 여성들은 볏짚 수세미에 비누와 연탄재를 살짝 묻혀 도시락 겉면과 안을 빡빡 닦고, 다시 햇빛에 말리거나 마른 가재 천으로 닦느라 고생했죠. 그러면 광택이 나거든요.

하지만 국가 공급체계가 무너지고 장마당이 생기면서 북한에는 도시락 문화가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에서 수입된 합성 비닐 소재, 스텐 소재 등의 다양한 도시락이 장마당으로 유통되었는데요. 크기도 다양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북한 주민들은 다양한 색상과 다양한 모양의 도시락을 보면서 북한 경제의 허구성을 자연스럽게 학습했습니다. 2단 도시락부터 3단 도시락, 5단 도시락 등 편리하면서도 디자인이 고운 도시락을 보면서 주민들이 중국처럼 경제를 개혁, 개방하면 생필품을 생산하는 기술이 발전한다는 것을 체득한 겁니다. 북한 장마당에 도시락을 전문 파는 매대가 생겨날 정도였는데요.

특히 겨울에도 밥과 국의 온도를 보장하는 보온 도시락이 장마당에 유통하며 도시락 상품은 계층별 소비를 뚜렷하게 나타내는 상품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보온 도시락은 중국산이 많았는데요.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 소득이 낮은 사람들의 경우 사용하지 못하지만, 빨갛고 파랗고 취향에 따라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 합성 비닐 소재의 도시락을 구매해 사용했습니다. 이로써 북한에서 사회주의 계획경제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단일한 모양의 알루미늄 도시락은 원시적인 상품으로 밀려나게 됐습니다.

2014년 6월, 원산의 해변에서 소풍을 즐기고 있는 북한 청년들의 모습.
2014년 6월, 원산의 해변에서 소풍을 즐기고 있는 북한 청년들의 모습. 2014년 6월, 원산의 해변에서 소풍을 즐기고 있는 북한 청년들의 모습. (AP)

도시락 통으로 체면 깎이는 북한의 남편들

진행자: 반찬만큼이나 도시락 통도 북한에선 꽤 중요하겠네요. 그런데 사실 북한에서 도시락은 아이들뿐 아니라 남편들도 매일 아침 싸가죠. 도시락 반찬이나 통으로 체면이 깎이는 일은 남편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은데 어떻습니까?

손혜민 기자: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원족 날에만 도시락을 싸지만, 도시에서 살고 있는 공장 노동자들과 사무원들은 매일 점심 도시락을 싸가지고 출퇴근 합니다. 도시락 내용도 중요하지만, 어떤 도시락에 밥을 싸가지고 다니냐에 따라 남편의 위신이 오르고 내렸죠. 이 때문에 아내들은 도시락에 신경 써야 합니다. 장사를 잘하는 아내들은 보온 도시락을, 하루 벌이 아내들은 일반 합성 비닐 도시락을 구매해 남편의 점심 밥을 싸 주는데요.

지난해부터 북한 당국이 지방발전 20x10정책을 추진하며 지방공업공장마다 도시락을 비롯한 인민생활소비품을 자체로 생산하도록 강조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도시락 재료인 합성 비닐 소재는 석유화학산업이 발전해야 가능하기 때문이죠. 코로나로 국경이 원천 봉쇄되면서 북한에서는 군용 밥통이 도시락으로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생각보다 알루미늄 재질의 군용 밥통은 야외에서 사용이 편리하도록 제작되었죠.

예를 들어 북한의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한지에서 일을 하다 점심 도시락을 먹어야 하므로 군용 밥통이 유리하기도 합니다. 겨울에는 날씨가 추우므로 점심시간 모닥불을 지펴 놓고, 주변에 둘러 앉아 밥을 먹는데, 그때 군용 밥통은 손잡이가 있어 모닥불에 올려 놓고 끓여 먹을 수 있는 겁니다. 문제는 당국이 군용 밥통을 수시로 단속해 회수한다는 거죠. 당국은 도시락을 통제할 게 아니라 도시락에 쌀 수 있는 밥 문제부터 해결해주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행자: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