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된 국가 바로 청취자 여러분이 살고 계신 북한입니다. 내부 문서를 통해 오늘이 북한을 만나보는 [문서로 보는 북한] 진행에 안창규입니다. 오늘도 김지은 기자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지은 기자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지난 시간에 이어 2025년 3월 조선로동당출판사 발행해 전국에 배포한 전 주민 대상 학습 제강 중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 현상’ 교양 자료 - ‘자식들의 이름을 망탕지어 부르는 현상을 철저히 없애자‘는 내용을 다뤄보겠습니다.
한국에서는 매년 가장 인기 있는 이름을 발표합니다. 이번 방송을 위해 2024년에 선정된 인기 있는 이름을 찾아봤는데 남자 이름의 경우 이준, 하준, 도윤이라는 이름이고 여자 이름은 서아, 이서, 아윤이라고 합니다.
각 이름에 담긴 의미도 각각 여자 이름의 경우 서아는 자연과 잘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이름이고, 이서는 예술적 감각과 창의력을 나타내는 이름이며, 아윤은 밝고 순수한 여성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이름이라고 합니다. 모든 이름에는 부모가 자식이 이렇게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사랑과 기대가 담겨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최근 어떤 이름이 가장 인기가 있을까요. 한번 비교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인기 있는 이름은 ‘가장 무난한‘, ‘어떤 의미도 없는 이름’
김지은 기자 : 대부분 무난하게 숙명, 명숙, 경식, 수길. 5월 생이면 오월이, 가을에 낳으면 추월이, 봄에 태어나면 춘월이라고 짓습니다. 행복할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 누가 무슨 이유로 행복이니, 은혜라고 이름을 지을 것이며 북한에서 혁명이 인민의 삶을 더 윤택하게 변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점점 열악하게 만드는 데 당을 위해 혁명과 투쟁을 하고 싶겠습니까.
그래서 최근에는 혁명이라든가 당국을 찬양하는 식의 이름들이 사라져 가는 분위기입니다.
게다가 북한 주민 누구도 지어서는 안 되는 이름이 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이름은 아무도 지어서는 안 됩니다. 성이 달라도 안 됩니다. 어릴 적에 부모들이 일성아, 정일아, 정은아, 하고 부르기 때문이고 또 잘못하면 혼내기도 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라도 위대성이 흠집이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을 통해 김씨 일가도 신이 아니라 주민들과 동등한 인간으로 생각할 수 있어서 애초에 그들의 이름은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곳이 북한입니다. 사람들이 이름을 부르기 때문에 박정은이라고 해도 안 됩니다. 일체 김씨 통치자의 이름은 성이 달라도 지을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독재의 정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이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진행자 : 사실상 1974년 ‘유일사상10대 원칙‘이 발표된 이후에는 김일성, 김정일과 비슷하게도 이름을 짓는 사람은 없었다고 봐야죠.
특히 문서에서는 ‘적들이 썩어빠진 부르죠아사상 문화를 침투시키기 위해 악날한 책동‘을 하는 중이니 이름 하나도 ‘당의 사랑과 은덕을 후손에 전하는 의지를 담아‘, ‘당을 끝까지 받들어 나갈 소망이 비끼게(나타나게) 지을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문건에서는 “돈과 권력에 대한 저속한 욕망이 느껴지는 이름, 같은 글자가 반복되는 이름, 무슨 뜻인지 분간할 수 없는 얼치기 이름” … 등 여러가지 설명을 하고 있으나 사실 북한 당국은 남한식 이름을 짓지 말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지은 기자 : 사실 부모가 자식이 잘 자라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짓는 이름인데 이를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이라며 당에서는 저속하다고 비난합니다. 이 대목을 보니 생각나는 이름이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권력에 오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도권, 상권, 일권 등으로, 돈과 금은보화를 가득 가지고 살라는 의미로 금철이, 금화, 금옥 등으로 짓기도 합니다. 이걸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라고 합니다. 이 이름들이 사회주의를 반대하고 비사회주의적인 요소가 무엇입니까. 게다가 북한은 같은 글자를 반복하여 이름을 짓거나 아명으로 부르는 현상, 무슨 뜻인지 분간할 수 없는 얼치기 이름을 짓는 것은 다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당의 사랑과 은덕을 전하는 의지를 담고”, “당을 끝까지 받들어갈 소망이 비끼게 지을 것”을 강조합니다. 당의 사랑과 은덕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그렇게 지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매일 같이 생계의 위협을 받으면서 굶주리고 강제로 무상 사회 동원과 강제 학습에 내몰리는 입장에서 당의 사랑과 은덕이 느껴지겠습니까. 과거 김일성 시대에는 그런 이름들이 다소 등장했습니다. 행복, 은혜, 충성, 충직이 말이죠.
문건에서는 “특히 한국 괴뢰 것들을 동족으로 간주할 수 있게 절대로 짓지 말 것”을 특히 강조하지만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단어를 쓰는데 수천만 명의 주민들이 어떻게 남한 사람과 같은 이름을 피할 수 있겠습니다. 옛날 봉건시대의 이름처럼 개똥이나 마당쇠로 지어야 하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주애‘라는 이름에는 어디 혁명성이?
사실 남한식으로 이름을 짓지 말라는 건 몇 년 동안 꾸준히 북한 당국이 강조해 온 부분입니다. 어떤 때에는 받침이 없는 이름을 짓지 말라거나 혁명성과 충성심과 반대되는 이름을 짓지 말라거나, 표현을 바꿔 금지하는 이유와 내용을 조목조목 열거하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 남한식 이름의 유행을 금지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충성이라는 좋은 이름을 두고도 성씨가 ‘안’가라고 하여 ‘안충성‘을 ‘안변절‘로 고쳐야 하냐는 웃지 못할 농담도 나오는데요. 이에 대한 주민들의 비난 여론은 북한 김정은 정권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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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 특히 문건에서는 이름을 별나게 짓는 것을 ‘사회주의를 좀 먹고 적들의 반동 사상문화적침투 책동에 동조하는 매우 위험한 행위‘로 규정합니다. 한국 등 다른 나라들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이름을 어떻게 짓든 전혀 관여하지 않는데 이름을 개인이 자기 마음에 들게 짓는 것이 실제 이렇게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행위로 볼 수 있을까요.
김지은 기자 : 그렇게 따지면 주민들의 입장에서 김정은의 딸 주애라는 이름은 어디에 혁명성이나 충성심, 투쟁열이 드러나는가를 반문할 것입니다. 최고지도자는 자녀의 이름을 당의 정책대로 혁명적으로 지었습니까, 받침이 없는 이름은 한국식이라고 짓지 못하게 한 적도 있는데 그렇다면 ‘주애‘라는 이름에는 받침이 없으니 한국식이 아닙니까? 지도층과 간부, 일반 주민들에게 각기 다른 기준을 갖다 대는 것이 북한 당국이지만 어떻게 이렇게 대놓고 이중 잣대를 들이댑니까?
이름이 별나든 이상하든 그의 부모가 지을 탓이고 그것이 어떻게 사회주의를 좀 먹고 적들의 반동사상문화적 침투 책동에 동조하는 매우 위험한 행위입니까. 이제는 강제적인 방법이 아니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당을 따르거나 최고 지도자를 숭배하는 현상은 바랄 수 없는 것이 되었으니 개인의 이름 같은 개인적인 부분에도 강제적 방법으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부모들이 한국식 이름을 짓는 이유?
진행자 : 1990년대 이후 일부 북한 부모들이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이 좋아서 그와 똑같게 혹은 그와 비슷하게 짓는 분위기가 있었지 않습니까. 요즘 주민들이 어떤 이름들을 짓습니까?
김지은 기자 : 북한 주민들은 한국의 영화를 보면서 따라 짓는 이유는 그 이름이 부르기가 쉬워서 그런 것도 있습니다. 수빈이, 다온, 아리… 이런 여자아이 이름은 얼마나 부르기 부드럽습니까.
진행자 : 북한은 자녀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할 때 어떤 분야에 가면 좋을지, 대학에 간다면 어떤 대학에 가며 어떤 학과를 전공할지 등 자녀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에 부모가 전혀 개입할 수 없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인데 이름마저 마음대로 지을 수 없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김지은 기자 : 제 자식의 이름이라도 당의 의도를 떠나서 마음대로 지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살게 된다면 북한 주민들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모두 바라는 세상일 겁니다. 그런 날이 도래하기를 바라며 다음 시간에도 또 다른 북한 문서를 가지고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행자 : 네, 김지은 기자 수고했습니다. [문서로 보는 북한]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진행에 안창규였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