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혁명소조'는 감시역할 하는 김정일 친위대

북한 3대 혁명 수행의 전위대로서 '3대 혁명소조'가 정식 출범한 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로 지명되기 바로 1년 전인 1973년 2월입니다.
서울-노재완 xallsl@rfa.org
2009.02.02
'3대 혁명소조'는 애초 젊은 일꾼들을 미래 간부로 육성한다는 목적으로 김일성 주석이 시작했지만, 실제로는 김 위원장이 소조원들을 자신의 친위대로 앞세워 각 기관에 대해 감시의 역할을 했다고 탈북자들은 전했습니다.

노재완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74년 2월 후계자 지명을 받고 나서 '3대 혁명소조'를 지도하면서 경제부문에 대해 자신의 지도력을 확대시켰습니다. '3대 혁명소조'는 73년 김일성 주석의 지도로 시작됐지만, 그 후의 전개과정에서는 김 위원장이 직접 지도해 '3대 혁명소조'를 당의 1개 부서로 편입시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위원장은 74년 3월 중앙당과 지방당에 3대혁명소조부를 신설하고 자신의 매제인 장성택을 3대 혁명소조부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최용환 경기개발연구원 책임연구원입니다.

최용환: 3대 혁명소조는 김정일 위원장이 사실 주도했었고, 비유하자면 (중국) 문화혁명 시기에 홍위병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권력이 교체되는 시기에 본인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전국에 전파하는 역할로서 3대 혁명소조와 같은 조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사실입니다.

애초 '3대 혁명소조'는 현대적인 교육을 받은 과학자, 기술자, 청년 지식층 등 당성이 뛰어난 청년들로 구성됐습니다. 소조는 사상, 기술, 문화의 3개 분야로 나뉘어 파견됐고, 단위 소조는 지도 대상에 따라 20명에서 50명으로 구성됐습니다. 지도 대상은 공업과 농업 등 주요 부문에서 점차 건설, 운수 등 인민경제 각 분야로 확산했습니다.

소조는 외견상으로 당의 노선과 정책을 대중에게 관철하고, 근로자들에게 현대적인 과학기술을 가르쳐 각 생산 단위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장 간부들의 당 정책적 집행 과정을 매일 보고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탈북방송인 김태산 씨입니다.

김태산: 김정일이 중앙에 앉아서 밑에 지방 당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어서 3대 혁명소조를 형식상 파견해 지방 당과 공장당 등 산하 조직들에 있는 행정 일꾼들이 하는 행동들을 각 방면으로 감시, 통제케 했던 것입니다.

아울러 소조원들은 현장에서 간부들을 드러내놓고 무시했으며, 심지어 간부사업에까지 개입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생산 현장에서는 소조원들과 공장, 기업소의 간부들 간에 자주 충돌이 일어나 불협화음이 많았다고 탈북자들은 전합니다. 젊은 소조원들은 대부분이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들로서 지식은 갖췄지만 실무 경험이 부족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료화가 된 소조원들은 간부들을 감시하는 기능을 강화하면서 점차 군중에게 비난을 받는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3대 혁명소조'는 90년대 들어 대부분 공장들이 가동을 멈추기 시작하면서 그 기능이 축소됐으며, 90년대 중반에 공식 발표 없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탈북자들은 중요한 군수 공장에는 아직까지 '3대 혁명소조'가 운영되고 있다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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