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특집:김정은 집권 10년] ③ ‘부귀영화’ 커녕 다시 허리띠 졸라야

워싱턴-박수영 parkg@rfa.org
2021.12.11
Share on WhatsApp
Share on WhatsApp
[연말 특집:김정은 집권 10년]  ③ ‘부귀영화’ 커녕 다시 허리띠 졸라야 북한 원산시의 한 농원 옆에서 북한 주민들이 농작물을 포장하고 있다.
/AP

앵커: 10년 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인민 생활 향상’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집권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게 해주겠다던 약속은 깨진지 오래입니다. 급기야 최근에는 ‘자력갱생’을 내세우며 주민들의 희생까지 촉구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연말 특집: 김정은 집권 10년], 오늘은 세 번째 시간으로 김정은 총비서의 경제 정책을 되짚어 봅니다. 박수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인민 생활 향상’ 목표는 어디로

[김정은]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입니다.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된 지 3개월 만인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 경축 열병식에서 김정은 총비서는 북한 주민들에게 다시는 과거와 같은 배고픔을 느끼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집권 뒤 첫 육성 연설에서 북한 주민을 향해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겠다는 ‘통 큰’ 약속을 했습니다.

김 총비서는 이듬해인 2013년 1월 1일 신년사에서도 인민 생활 안정과 향상을 강조했습니다.

연설에서 김 총비서는 인민 생활이 경제 건설의 척도라고까지 말했습니다.

[김정은] 경제건설의 성과는 인민 생활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인민 생활과 직결되어있는 부문과 단위들을 추켜세우고 생산을 늘이는데 큰 힘을 넣어 인민들에게 생활상 혜택이 더 많이 차례지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7년만인 2020년 1월, 김 총비서의 연설은 이전과 180도 확 바뀌었습니다. 다시 북한 주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겁니다.

[북한관영매체] (김정은 총비서는) 허리띠를 졸라 매더라도 기어이 자력 부강, 자력 번영하여 나라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것이 우리의 억센 혁명 신념이라고 천명하셨습니다.

국가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약속은 다시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한다는 공개적 언급 탓에 빛이 바래는 순간이었습니다.

김 비서는 급기야 같은 해 4월 제6차 노동당 세포비서 회의에서 ‘제2의 고난의 행군’까지 언급했습니다. 대북 경제제재, 코로나 비루스의 세계적 대유행 그리고 자연재해까지 ‘3중고’가 겹치면서 북한 경제가 다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른 점을 사실상 공식 인정한 겁니다.

일본 시사주간지, 슈칸킨요비(주간 금요일)의 편집장이자 북한 경제 전문가인 문성희 박사는 (2일) RFA에 김정은 총비서가 국내외적으로 총체적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문성희] 김정은 총비서는 집권 첫 시기에는 여러가지로 개혁을 시도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상 시행해 보니까 자신이 생각한 이상으로 근본적으로 고쳐야 할 경제구조였다는 것이지요. 북미정상회담이 잘 되었더라면 경제 제재 문제가 해결되고 개혁, 개방 쪽으로 방향 전환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안 되었지요.

미국 워싱턴의 한미경제연구소(KEI)의 북한 경제 전문가인 트로이 스탠가론 선임국장도 김정은 집권 초기 상승세를 보였던 북한의 경제 성장률이 최근 몇 년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내 자원만으로는 경제성장을 통한 인민 생활 향상에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트로이 스탠가론] 지금 북한은 자급자족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문제는 자족할 자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국내 무역을 활성화하기 위한 기술, 에너지, 농업 기반 등이 부족합니다. 이것이 바로 다수의 북한 주민들이 식량을 보장받지 못하고 평양 밖의 도시들은 대부분 낙후된 이유입니다.

올 해 7월 한국은행이 공개한 '2020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에 따르면, 지난 해 북한의 경제 성장률은 -4.5%로 2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K121121NE-PS 사진 2-min.jpg
김정은 총비서가 삼지연군 공사 현장을 시찰했다. /AFP


신도시 개발에 전념…부실 건물 양산

스탠가론 국장은 김정은 총비서가 평양에 신식 건물을 건축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트로이 스탠가론] 건설의 측면에서 보면, 신식 건물들은 대부분 평양에 있거나 엘리트들에게 더 나은 주택을 제공해 정권에 충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상여금이자 연결 고리라고 봅니다.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 대규모 건축사업을 적극 활용하려 했다는 겁니다.

실제 지난 10년간 평양 종합병원, 려명거리 초고층 아파트, 미래과학자거리 주상복합 아파트 등 다양한 최신식 건물이 착공됐습니다.

그러나 지은 지 1년도 안 된 릉라인민유원지와 류경원, 인민야외빙상장은 부실 공사로 인해 운영 중단 및 보수작업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급기야 2014년 5월 13일에는 평양 평천구역에서 건설중이던 23층 아파트가 붕괴돼 대형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원자재 부족과 날림 공사로 부실 건물이 양산된 겁니다.

[트로이 스탠가론] 북한의 문제는 건설작업이 얼마나 빠른가가 아니라 품질에 있습니다. 알다시피 북한의 건축물은 질이 낮습니다. 그런데 이는 경제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김 총비서는 이 달 초 열린 정치국 회의에서 “국가경제가 안정적으로 관리됐다”고 자화자찬했습니다.

문성희 박사는 북한 당국이 5개년계획 첫 해인 올 해 성과를 과시하지 않으면 내년부터 계획을 수행하는데 차질이 생길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문성희]북한 당국의 공식 평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국경봉쇄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국제 제재도 완화되지 않고 있는데 갑자기 성과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믿기 어렵습니다. 자력갱생, 자급자족의 성과가 그리 간단하게 나온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고 할까요.

문 박사는 특히 김 총비서가 농업과 건설 분야에서 큰 성과를 냈다고 콕 집어 강조한 데 주목했습니다. 실상은 그 반대일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문성희] 반대로 말하면 이 두 가지(농업과 건설)가 여전히 경제정책의 중심에 놓여 있다는 것 자체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같으면 이 두 가지를 먼저 해결해야 되고 그러기 위해 김정은 총비서는 정권 집권 초기부터 여러가지 정책을 세우고 실행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 박사에 따르면 김정은 총비서의 집권 10년간 사회기반시설 구축 역시 여전히 별 진전이 없었고 관광지구 개발도 오히려 후퇴했습니다.

graphic-sp.jpg
/RFA 그래픽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새로운 분조관리제의 등장

김 총비서가 집권 초 북한의 경제체질을 개선하려는 듯한 시도를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김 총비서는 2014년 5월 30일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와 농장책임관리제(분조관리제)를 골자로 하는 ‘5.30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로 공장, 기업소의 자율성을 확대했고, 농장책임관리제로 분조 구성원의 숫자를 줄여 초과 목표 생산물에 대한 분배율을 늘렸습니다. 개인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늘린 겁니다.

한국 동국대 DMZ 평화센터 김일한 연구위원은 최근 (11월 2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와 독일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김 총비서가 군부 등 특수 집단을 겨냥한 점에 주목했습니다.

[김일한] 8차 당대회에서 아주 독특한 개념이 하나 등장하게 됩니다. 단위 특수화라는 거죠. “특수화된 단위가 국가의 정상화를 가로막고 있다.” 다른 말로 “중앙 계획 경제를 좀먹고 있다,” “중앙 계획 경제를 흔들고 있다.” “계획 경제에서 벗어난 특수 단위가 권력 기관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거죠.)

김정은 총비서가 제7차 노동당 대회에서 제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2016~2020)에 따르면, 석탄과 금속·비금속 광물 생산 단위 중 약 15% 정도만 국가 운영이고 나머지는 특수 단위에서 운영합니다. 즉, 이익과 힘의 균형이 특수 기관들에 집중되어 있다는 겁니다.

김 연구위원은 북한에서 이처럼 특수 단위가 등장한 배경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특수 단위의 자력갱생이 강조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김 총비서의 5.30 경제관리개선조치로 인해 오히려 중앙 계획경제의 입지만 더 좁아지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일한] 김정은 시대에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경제 개선 조치를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와 농장책임관리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단위 특수를 오히려 강화하고 기관본위주의를 오히려 강화하면서 기업 유보금과 민간 비축금은 증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중앙 계획 경제는 갈수록 약화되고 특수단위는 점점 강해지고. 이 부분을 해결하지 않으면 사회주의 중앙계획 경제 시스템은 정상화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K121121NE-PS 사진 3-min.jpg
북한 개성시 외곽의 들판에서 모내기를 하고 있다. /AFP


코로나 대유행 탓 경기 침체…자력 갱생 매진

이처럼 내부 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지난해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비루스의 대유행은 북한 경제의 회복에 더 큰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북한 스스로 국경을 꽁꽁 걸어 잠궜고 해외 무역은 물론 국내에서의 자유로운 이동도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문성희 박사는 2년째 이어지고 있는 북한의 장기 국경봉쇄로 인해 자급자족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성희] 최근 들었는데 북·중 국경의 통제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결국 자력갱생, 자급자족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런 결론이 떨어진다고 생각을 합니다.

김일한 연구위원은 특히 북·중무역 차단으로 산업 분야에 필요한 원자재들의 수입이 어려워졌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일한] 지금 산업 분야에 아주 중요한 금속, 화학 분야라든가 기계공업이라든가 전력 공업이라든가 이런 부분들은 여전히 어려워 보입니다. 특히 코로나 대유행이 닥치고 무역이 중단되면서 성장의 한계를 분명히 보이고 있는 것이고요.

임을출 한국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고육지책으로 폐기물을 자원으로 재탄생시키는 재자원화 연구에 몰두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임을출] 2013년에서 2016년까지를 보면 우리가 공통적으로 평가했던 게 ‘시장화가 아버지 김정일 시대보다 훨씬 많이 진전되었다’는 것이었거든요. (중략) 지금 북한이 무역을 중단하면서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해선 모든 것이 부족한데, 이 부분 자체를 재활용을 통해 해결하고 있단 말입니다. 이것이 지금 북한 경제를 유지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집권 10년 만에 애초 제시했던 장밋빛 전망 대신 암울한 현실을 맞딱뜨린 김정은 총비서. 지지부진한 경제개혁 조치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코로나 비루스 상황 등 내외적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