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낙원’ 선전에 속아 탄 북송선] ① 북송사업 손배소 승소위해선 여론 움직여야

워싱턴-박수영 parkg@rfa.org
2021.10.25
[‘지상낙원’ 선전에 속아 탄 북송선] ① 북송사업 손배소 승소위해선 여론 움직여야 사진은 지난 2003년 일본 니가타 항에 정박한 만경봉호.
/AP

앵커: 최근 일본 법원에서 북송사업 피해자들의 첫 구두 변론이 진행됐습니다. 북송 사업 피해자인 원고 5명은 북한에 5억엔 (약 44만 달러)의 손해 배상을 요구했지만, 일본 사법부가 과연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줄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RFA 기획, 지상낙원 선전에 속아 탄 북송선,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이번 재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인과 일본 내 현지 반응을 박수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일본 정부 입장 탓 피해자 승소 불확실

일본에서 1950년대 후반부터 1984년까지 30년 가까이 진행된 재일동포 북송사업. 당시 지상낙원이라는 거짓 선전에 속아 북한으로 갔던 재일 한인 5명은 지난 8월 북한 정권과 김정은 총비서를 상대로 개인당 1억엔, 총 5억 엔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손해배상 소송의 재판이 이 달 중순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시작됐지만 일본 정부의 입장과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 문제 탓에 피해자들의 승소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습니다.

휴먼라이츠워치 일본 지부장인 도이 카나에 변호사는 판결이 북일 관계에 미칠 영향 때문에 일본 사법부의 판단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도이 카나에] 북한 정부가 원고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것은 분명해요. 그런 이유로 원고들이 패소하리라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둘러싼 복잡한 법적 문제들이 많아요. 거짓 약속을 바탕으로 한 선전은 오래전 일이기도 하고 또 중요한 건 북한이 외국 정부라는 거죠.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 김석향 교수도 일본 사법부의 재판에 일본 정부의 입장이 배제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석향] 일본 재판부의 판단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는데 일본 사법부도 결국 일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거잖아요. 그래서 재판이 원하는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올까 하는 의혹은 있습니다.

북송 사업을 파해치다 보면 일본 정부와 일본 적십자 그리고 국제 적십자의 책임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일본 정부에선 북송사업이 언론의 주목을 받거나 여론화되는 것을 원치 않으리라는 겁니다.

일본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도 일본 정부는 재일 한인 북송 사업 피해 보상에 관해 지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9만 3천 명의 안부 확인 아니면 왕래의 자유 이런 부분에서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는 일본 정부가 북송 사업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해왔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일본 정부는 앞으로도 법적인 책임은 인정하지 않을 거예요. 그거는 적십자가 추진한 사업이었고 일단 본인(재일 한인)들의 의사 확인도 했고 “일본 정부에는 법적인 책임이 없다”라는 입장은 계속할 겁니다.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한다면 거기에 배상 책임도 생기잖아요. 그러나 일본 정부의 도덕적인, 도의적인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런 귀국자분들의 구제를 위해서 (일본 정부도)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시마루 대표는 나아가 당시 북송을 부추겼던 일본 정부, 언론 매체, 정당, 그리고 일본 내 여러 단체는 도덕적인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단언했습니다.

1960년대에 북한으로 건너가 2004년 탈북할 때까지 약 43년간 북한에 사실상 감금됐던 북송사업의 피해자로 이번 소송을 제기한 원고 중 한 명인 가와사키 에이코 씨. 그는 여러 차례 북송 사업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법정 공방을 벌여왔고, 이 과정에서 북한과 일본 정부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함을 깨달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가와사키 에이코] 그걸 다 혼합해버리면 안 된단 말이에요 그래야 9만 3천 340명에 대한 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떤 결과 낳았는가 하는 데 대한 그 참상을 정확히 분석할 수 있단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한 계단씩 처리할 거예요. 그래서 다음 번은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데 그냥 재판이라는 방법은 쓰지 않고 일본 정부에다가 북송된 사람들에 대한 구제법을 제정해달라는 요구를 할 거예요.

김 교수는 일본 정부의 잘못을 들추거나 책임을 묻지 않고, 협조를 요청하는 방식이 유리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석향] “일본도 책임이 있다, 일본도 같이 책임져라” 이런 식의 주장보다는 일본 안에서 거부감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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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사업으로 북한에 갔다가 이후 탈북해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남녀 5명이 북한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사진은 소송을 제기한 가와사키 에이코(川崎榮子·76)씨. /AP


일본 국민들의 관심 필요

일본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견입니다.

김 교수는 이번 재판이 북송 사업에 대해 생소한 일본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석향] 사용 가능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널리 알리고 공감을 얻는 노력을 해야겠죠. 재판을 하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는 의의가 있을 거로 생각해요. 이제 재판이 되면 기사화가 되고 이게 무슨 일이지 하고 사람들이 조금 찾아볼 거고 그러다 보면 그 중에 한 사람이라도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이런 일들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

도이 지부장은 실제 이번에 북한을 상대로 재판을 건 이유 중 하나가 북송 사업에 대해 알리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도이 카나에] 북송 사업에 대해 아는 일본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거의 없어요. 북송 사업은 수십 년 전에 일어났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이 북한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법원에 제기한 이유 중 하나가 원고들이 이를 일본 국민들에게 알리고, 상기시키게 하고, 피해자들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바램대로, 공판이 열리자 많은 언론 매체가 주목했습니다.

가와사키 씨는 지난 14일 1차 구두변론 날, 해외 매체를 비롯해 일본의 각 지방 언론 매체들까지도 몰렸다고 말했습니다.

[가와사키 에이코] 2018년 8월 20일에 우리가 소송을 제기하고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도 기자회견장이 꽉 몰릴 정도로 보도 기관이 왔었어요. 이번에도 상당히 많은 통신들이 왔거든요. 미국, 영국, 독일, 네덜란드, 어쨌든 전 세계 통신사가 모두 보도했어요. 굉장히 많이 했어요. 일본도 지방지까지도 다 찍었어요.

이시마루 대표는 피고가 김정은 총비서라는 점 탓에 일본 여론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도쿄 지방재판소에서 첫 번째 공판이 열렸을 때는 모든 매체가 크게 보도를 했어요. 그래서 관심도 꽤 높았죠. 근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피고 그러니까 재판 대상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 정부였고 그 대표자인 김정은 (총비서)가 피고인 입장이 됐기 때문(입니다). 이런 재판은 일본에서는 처음이거든요. 김정은 상대로 재판한다는 게 대단하다 이런 관심도 있고, 한 60년 전에 시작된 이런 북한에 대한 북한 귀국 사업 자체에 대해서 다시 재조명하게 됐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갔구나’라는 그런 관심도 꽤 생겼어요.

기본권 침해와 일본인 납치 함께 다뤄야

다만 일본 정부의 협력을 얻기 위해선 북송 사업이 인권 유린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도 함께 다뤄져야 한다고 이시마루 대표는 제안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일본인 배우자들 있잖아요. (일본 정부가) 배우자들의 안부 확인을 북한 정부에 요구한 적은 있었어요. 일본인 배우자일 경우는 일본 국적자이기 때문에 자기 국민 보호 차원에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안부 확인 요청은 계속 북한 정부에다가 해왔습니다.

김 교수는 북한 당국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지를 침해했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석향] 일본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이게 어느 특정 재일 조선인이라는 그 집단에 대해서 ‘일본 정부가 뭘 어떻게 잘못했나, 북한 당국이 뭘 어떻게 잘못했나’ 하는 것보다 인류에 대한, 그러니까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런 식의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런 행위를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인류에 대한 범죄라는 시각에서 제대로 알려야 할 텐데. 제대로 알리려면 제대로 사실 확인을 하고 연구를 해서 알리는 일을 해야겠죠. 시간은 걸리겠지만.

북송 사업의 피해자들이 보상을 요구하고 나선 가운데, 일본 정부의 입장과 일본 내 여론이 이번 재판 결과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됩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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