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배고플땐 쑥떡, 배아플땐 쑥물, 다친곳에 쑥뜸…

5월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넘기 힘들다는 고개, 보리 고개가 거의 넘어가는 시기입니다.
서울-이현주 xallsl@rfa.org
2008-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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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선 이 맘 때가 보리 고개였지…이렇게 떠올려 보는 사람도 이젠 거의 없는데요, 그만큼 옛날 일입니다.

보리 고개가 있던 없던, 그때를 무사히 넘기게 도와줬던 쑥은 남쪽 땅에도 지천입니다.

이제 단오도 눈 앞인데요, 오늘 남북 문화 기행 이 시간엔 쑥 얘기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서울에서 이현주 기자가 전합니다.

경상도와 전라도에 걸쳐지는 긴 줄기를 가진 지리산 자락엔 아직도 시골 장이 섭니다.

이제는 관광지가 돼버린 화개 장터를 지나치더라도 3일과 8일에 서는 구례장도 있고 2일과 7일에 서는 하동장도 있습니다.

오래된 장옥 사이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허리를 펴지도 못하는 시골 할머니들이 작은 바가지를 앞에 놓고 이런 저런 남새와 나물을 팝니다.

그 중에도 제일 인심이 후한 건, 앞산, 뒷산 다니면서 뜯은 쑥.

서울에서 온 손님에겐 큰 자루를 만원에 다 가져가라고 인심을 쓰기도 합니다.

서울, 광장 시장에서 떡집을 하는 김씨 할머니도 이렇게 쑥을 사옵니다.

봄 내내 사서 모은 쑥은 삶아 얼려선 가게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그러고도 또 쑥을 뜯으러 일주일이 멀다하고 단오까진 산에 갑니다.

“저어기 , 전라도 완주군 장수군 이런데..여럿이 가서 싸왔어요”

한복 집에 금은방, 폐백집, 원단 장사까지 몰려있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끌 시끌한 종로 광장 시장 바닥. 입구부터 빈대떡에 순대.. 온갖 장마당 음식이 총출동을 한 모양샙니다. 구석 쪽으로 쭈욱 들어가면 큰 쟁반 가득 아이 손바닥 만한 개떡을 만들어 파는 김씨 할머니 떡집이 있습니다.

“ 10장에 5천원! 이렇게 짜르면 안에 뭐 있는지 보이잖아”

쑥개떡이 고급입니다. 참기름 잘 발라놓은 동그란 개떡을 먹기 좋게 가위로 잘라선 콩고물을 무쳐 줍니다.

“맛있다고 생각되면 또 와”

“많이 파세요”

떡을 사 들고 돌아오는 길, 쑥떡을 들고 택시를 탄 저는 남쪽에선 이젠 찾는 이가 많지 않아 별미가 되버린 쑥개떡을 일흔 다섯의 나이 지긋한 운전 기사에게 권했습니다.

“쑥떡 좀 드릴까요? 아유 드세요. 우린 어렸을 때 하도 먹어서.. 저 뭐야 보리떡이랑..쑥개떡이랑.. 그것도 있으면 다행이었고..”

해방 직후 배고팠던 시절엔 5월 보리 고개에 들어서기 전부터 벌써 먹을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른 봄부터 만만한 것이 쑥이었으니, 이 시기를 넘어온 세대들은 쑥떡이 질력 날만 합니다.

된장도 아껴가면서 연하게 탄 맑은 된장 쑥국, 밀가루나 보리 가루에 쑥을 버무려 쪄 먹던 쑥 버무리에 둥글 둥굴 반죽해서 쭉 눌러놓은 모냥 안 나던 개떡.. 쑥으로 해먹을 수 있는 음식도 가지가지입니다..

개떡에는 항상 곡식가루보다 쑥이 더 많이 들어가서 껌 마냥 씹어야 겨우 목으로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런 쑥떡은 양반이었습니다.

논두렁 난 뚝새풀을 뜯어 죽을 쑤어 먹기도 하고, 설 익은 보리를 쪄서 먹는 풋바심, 또 보리빻고 나온 가루로 만드는 보리 개떡.. 들에 풀은 거의다 뜯어 먹었고 진달래꽃도 따먹었습니다. 이것이 1950년대 남쪽의 보리 고개의 모습입니다.. 아마 이 시기는 남쪽보단 북쪽의 사정이 더 나았을 수 있습니다.

“ (보리대)목아지를 이렇게 따서 그절 절구에다가 슬근 슬근 쪄서. 아직 탱탱하게 영글기 전에 ..그게 풋바심이라고해. 이걸로 밥도 먹고 그냥도 먹고 감히..(곡식이 많이들어가니까) 개떡은 만들 생각도 못하고. (맛이 어땠어요?) 그래도 그때 꿀맛이었지.”

그런데, 요즘 남쪽엔 보리 고개 마을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보리고래를 겪어 본 일이 없는 남쪽의 아이들에게 춘궁기, 보리 고개가 뭔지를 알려주고 햄버거나 피자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쑥개떡 같은 그 시절 음식들을 직접 만들어 보게 하는 곳입니다.

남쪽에서 보리 고개가 사라진 지 40-50년이 되가니, 이제 이런 일도 있습니다.

보리고개가 없어도 남쪽에선 쑥이 아직 인기입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인기를 얻고 있다고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쑥을 먹어보면 독특한 향이 있는 데 이것이 치네올이라는 성분입니다. 이것이 위액 분비를 촉진 시켜서 소화를 도와주고 우리 몸 속에 살균 내지는 향균 효과가 있습니다.”

이런 쑥의 좋은 성분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건강식으로 쑥을 다시 찾게 됐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먹던 그때와는 또 다른 얘기죠?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반대쪽 한반도, 북쪽 땅엔 보리고개가 아직 있고, 쑥은 여전히 보리 고개를 함께 넘는 고마운 먹거리입니다. 탈북자 김춘애씨의 얘깁니다.

“옛날에는 쌀가루에다가 쑥을 조금씩 넣고 해서 냄새만 넣었는데, 요즘은 식량이 긴장하니까 밀가루나 옥수수 가루에 넣고 쑥떡도 해먹고,,, 먹을 께 없잖아요. 보리고개는 식량이 없으니까.. ”

또 북쪽에서 오신 분들에게 쑥 얘기를 물으니, 쑥떡 얘기와 함께 한결같이 모두 송기떡 얘기를 하시더군요. 탈북자 김태산 씨의 말입니다.

“송기떡도 같애요. 송기가 20, 쌀이 80 정도 들어가면 쫄깃쫄깃하고 맛있죠. 근데 쌀이 없으니까 송기가 6-70% 되면 먹기가 고역이지. 먹고 나서도 뒤가 메서는 병원에 가고. 얘가 울고 그러면 그래서 부모들이 같이 울면서 파주고.. 참 기억이 삼삼하네요..”

추억으로 남기기엔 가슴 아픈 얘깁니다.

그래서 그런지..사람은 고향을 떠나면 음식으로 향수를 달랜다는데 남쪽에 온 북쪽 친구들은 고향에서 먹던 쑥떡은 멀리한답니다.

그때 먹었던 그 쓰디쓴 쑥떡의 기억만 남아서 일까요? 남쪽 쑥떡은 쌀도 들어갔고 쑥도 그렇게 많이 안 들어갔는데요.. 본채 만채라고 하네요. 탈북자 김춘애 씨의 얘깁니다.

“ 96.97년도에는 쑥이 너무 들어가서 너무 쓴 걸 먹고 그랬어요. 먹을 께 없잖아요. 쑥을 많이 뜯어다가 알랑미 가루에 넣고 찌면 진짜 맨 숙이야 알랑미 가루는 없어. 얘들한테 주면 엄니 이거 써서 먹겠나..그랬다고. 우리 아들 이제 쑥 떡 안 먹어, 내가 쑥떡 사오면 이게 왜 먹냐고..”

일단 먹는 얘기만 했지만.. 사실 쑥을 어디 먹기만 하는가요?

병원도 가기 수월치 않는 가정에 좋은 상비약이 됩니다. 배 아플 때 쑥 물을 다려먹기도 하고, 피날 때는 짓찧어 상처에 올려놓기도 했고 쑥 뜸도 떴습니다.

“ 이제 뿌리를 파다가 조려서 간염 약으로 쓰고. 일반 참쑥을 불에 닦아서 비벼서 찌를 뽑아 버리고 불 잘붙는 것 가지고 뜸쑥을 하던가..”

또 여름에 마당에 태워서 모기도 쫓던 그 쑻냄새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마당 자욱히 차오던 그 연기며 쑥 냄새며 오랫 동안 기억에 남을 고향의 냄샙니다.

남쪽엔 요즘, 이런 쑥을 태우기 보다는 모기향이나 뿌리는 모기약을 상점에서 파는데요, 이런 모기향엔 쑥이 들어가 있지 않지만 그 때를 생각해서 색깔만 쑥 색입니다. 당연히 냄새는 쑥에 비할 순 없습니다. 대전이 고향인 이해용씨의 말입니다.

“마당이나 이런데 피워놓으면 연기 나고..쑥향 ! 나쁘지 않았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 어려운 시절 우리를 키운 것은 바로 쑥이었다.

누구 하나, 들에 씨 뿌리고 돌봐주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때 되면 잎 나고 자라는 쑥 같은 풀이 어디 있을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기억하기 조차 싫은 어려운 시기를 거쳐왔어도 여전히 쑥을 좋아하고 또 기억하고 고마워합니다.

김춘애씨의 얘깁니다.

“그지 않아도 딸네 밭에 가보니까 쑥이 많더라구요. 쑥을 보면서 고향 생각 많이 했어요. 쑥 많이 뜯어먹고 또 이걸 약으로 쓸려고 열심히 뜯고 할테니. 지금 여기와서는 쑥 뜯을 생각 별로 안 하지만, 지금 한창 고향에서 쑥을 뜯을 때다…”

남북 문화 기행 쑥 편, 양희은의 임진강 들으면서 이 시간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 제작에 이현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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