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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마지막 뒷모습… 20년 이별의 시작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던 2002년 봄 어느 날.

현재 한국 서울에 정착해 살고 있는 탈북 여성 김은희 씨(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는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떠나오던 당시를 또렷이 기억합니다.


밤에 엄마를 찾아갔죠. 엄마가 나오면서 ‘이 밤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자꾸 ‘엄마’라고 부르니까 ‘왜 자꾸 엄마를 부르냐’고 하시는 거예요. 안 하던 애교를 부리자니 눈물이 날 것 같고, 그래서 자꾸 ‘엄마, 엄마’라고 불렀죠. 할 말이 없었어요.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김은희 씨)




김 씨는 어머니에게 ‘만약 자신이 안 보이면 좋은 사람 만나 다른 도시로 시집간 줄 알라’는 말을 건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는 ‘별 싱거운 소리를 다 한다’며 ‘늦은 밤에 사고 나니,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렇게 뒤돌아서 문을 닫고 들어가는 뒷모습이 김 씨가 기억하는 어머니와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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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을 건넌 김 씨는 1년간 중국에 머문 뒤 2004년 베트남을 거쳐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김 씨는 한국에 정착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됐지만, 북한에 남겨 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그러던 중 2010년 브로커를 통해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그때 자신이 한국에 온 것을 어머니가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와 재회한 기쁨도 잠시. 당시 보위부가 가족을 앞세워 김 씨를 중국으로 유인하려고 하자 이번에는 김 씨의 어머니가 먼저 연락을 끊자고 제안했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와 마지막 통화였습니다.






약 10년 만에 전달된 엄마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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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12월.

마지막 통화 이후 약 10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김 씨는 어머니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북한에 있는 중간 브로커가 수소문 끝에 자신의 연락처를 알아냈고, 어머니가 직접 쓴 손편지를 밀반입한 중국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보내준 겁니다. 낡은 종이 위에 꾹꾹 눌러 쓴 어머니의 편지에는 삶의 고단함이 그대로 전해졌고, 딸에 대한 그리움에 흘린 눈물 자국이 편지지 곳곳에 묻어 있었습니다.


엄마 사진부터 보고 싶은 거예요. 엄마 나이가 80이 넘으셨다고 하는데, 제 마음의 억장이 무너지는 겁니다. 사진을 보니, 세상에나 엄마 머리가 완전히 하얗게 됐고, 머리도 다 빠지고, 80세 고령의 할머니가 되셨는데, 그래도 곱게 늙으셨더라고요. (김은희 씨)


편지 속 내용은 더 가슴 아팠습니다. 두 남동생이 나란히 병을 앓고 사고를 당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게 됐고, 고령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돌보고 있다는 사연이었습니다.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 보니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손을 내민 곳이 한국에 있는 딸, 김 씨였습니다. 그동안 수십 차례나 읽어 본 어머니의 편지를 다시 읽어내려가는 김 씨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립니다.

약 10년 만에 편지를 받고 수화기 너머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김 씨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엄마’를 부르는 것 외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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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가 넘은 엄마의 다리가 안 좋아요. 그런데 내 목소리를 듣겠다고 세 시간을 걸어서, 그리고 감청을 당하니까 야산에 올라가야 한대요. 사람이 없는 산 같은 곳에서 해야 하는데, 잘 걷지도 못하시는데, 나 하나 보겠다고 세 시간을 걸어서… 전화 도청 때문에 정치적인 말은 못 하고, 저는 그냥 ‘엄마, 엄마’하고, 엄마는 그냥 ‘은희야, 엄마 걱정하지 마라. 보고 싶다. 아픈 데는 없니. 밥은 잘 먹고 다니니. 건강하니…’. 그 말뿐이에요. (김은희 씨)


오랫동안 곁에서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죄책감이 컸지만, 오히려 어머니는 김 씨에 대한 걱정뿐이었습니다. 몇 달 뒤 어머니의 손편지는 다시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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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 Korean · [뉴스인뎁스] 기적처럼 전해진 엄마 소식

자신이 북한을 떠난 뒤 20년이 다 되도록 만나지 못한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는 소식에, 사진으로나마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음에, 또 형편이 어려운 어머니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건네줄 수 있음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한국에서 홀로 살아가는 본인의 형편도 넉넉지 않지만, 어떻게든 어머니가 필요한 것은 다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제가 어머니에게 돈을 보내고 나니 지갑에 돈 4천 원이 남았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는 거예요. ‘오늘은 엄마가 이밥(쌀밥)에, 고기라도 해서 드시겠구나. 엄마가 오늘은 웃으면서 된장국이라도 끓여 드시겠는지’. 엄마가 좋아하시는 것 드시라고, 엄마가 입는 것, 쓰는 것은 다 보내드릴 테니까 이밥에 고기라도 사서 드시라고 했거든요. 엄마가 그렇게 하시겠다고... 엄마에게 돈을 건네주신 분이 말하기를 엄마가 그렇게 우신대요. (김은희 씨)


돈을 건네받은 어머니는 편지로 못다한 고마움을 전화기 너머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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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게 계속된 시련…, 나에게는 희망”

안타깝게도 북한에 계신 어머니에게 시련은 계속됐습니다.

‘코로나19’의 대유행에 따른 방역 대책으로 북•중 국경이 봉쇄돼 북한의 경기 침체가 악화하면서 생활고에 직면한 데다 김정은 정권이 탈북민 가족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면서 김 씨와 어머니는 한동안 연락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8월 말, 김 씨는 자신과 어머니를 연결해 주던 현지 브로커로부터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지난 8월에 내린 집중 호우로 어머니의 집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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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수해현장. 곳곳의 민가 지붕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거나 주택 여러 채가 침수된 모습이다. (사진 : 연합뉴스)

브로커에 따르면 비에 쓸려내린 토사가 집을 덮치면서 거의 무너질 정도였고, 어머니는 문도 제대로 닫지 못한 채 그곳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브로커가 건네준 전화기 너머 어머니는 또 울기만 했습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어머니의 집이 수해를 입었고, 북한 당국의 복구 지원과 도움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끊은 뒤 서둘러 한국 돈 100만 원(미화 약 840달러)을 마련해 송금했습니다. 당시 어머니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김 씨는 북한에서 홀로 지내고 거동까지 불편한 어머니가 자신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이 됐다고 말합니다.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 내가 다시 박차고 일어나 돈을 벌어 엄마를 도와주고, 동생들도 도와주고... 내 의무는 이것밖에 없다는 거죠. 저는요. 내가 살아야 할 희망이 생겼어요. 내가 살아야 엄마도, 동생들도 살 수 있다는 원동력이 생긴 거죠. (김은희 씨)







어머니에게 보내는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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