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국제인권대회 탈북자 포럼

2005-07-19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인권대회에서 있었던 ‘탈북자 포럼’ 시간에서는 탈북자들의 사연과 중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탈북자들의 인신매매 실태가 소개됐습니다.

인권대회 탈북자 포럼에 참석중인 김성민, 김영순씨

사진 -RFA/워싱턴

증언자로 나선 김성민씨는 탈북 여성들이 돼지 한 마리 값인 2천원에 장가못간 중국인들에게 팔려간다며 참담한 인권상황을 고발했습니다.

첫 번째 증언자로 나선 김성민씨는 중국에서 4년 반을 살다가 남한으로 가는 밀선을 탔습니다. 그러나 중국 공안에 발각돼 북한으로 강제 송환됐습니다.

족쇄를 차고 함경북도 온성군 보위부로 끌려가 취조를 받던 중에 북한군 장교출신이라는 사실이 발각된 김씨는 평양 인민무력부로 다시 압송됐습니다.

압송 도중 김씨는 열차에서 뛰어 내려서 다시 북한을 탈출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남한에 입국한 김씨는 자신이 누구보다 심한 고생을 한 줄 알았습니다.

김성민: 제가 만나본 많은 탈북자들 대다수가 저처럼 북한에 잡혀갔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해서 다시 온 친구들이구요. 제가 아는 친구들은 네 번씩 잡혀갔다 왔습니다.

한 번씩 잡혀갈 때마다 겪는 고통, 모진 매라고 합니까. 저 같은 경우는 손가락 두 개가 꺾여졌는데요, 아직도 바로 못 펴고 있습니다. 이거 보다 너무 고통스러운 일화들이 많아서 저는 감히 “제가 고생을 한 탈북자중의 한 사람입니다” 라고 말을 못합니다.

두 번째 증언자로 나선 김영순씨는 김일성의 권위와 위신을 훼손했다는 죄목으로 요덕 수용소에 수감됐었습니다. 김씨는 혁명화 구역에서 만 8년 1개월을 살았습니다.

김영순: 저도 엄마 아빠를 굶겨 죽이고 아들 하나를 물에 빠져 죽이고, 남편은 영원히 못나오는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서 현재까지 생사여부를 모르거든요. 또 88년도에 아들 하나가 탈북하다가 총살당하고, 이렇게 다섯 식구를 잃고 대한민국 품에 안겼습니다.

잡힐때마다 손가락 두 개가 꺾여졌는데요... 너무 고통스러운 일화들이 많아서 저는 감히 “제가 고생을 한 탈북자중의 한 사람입니다” 라고 말을 못합니다.

김 씨는 요덕 수용소 수감자들이 짐승만도 못한 생활을 했다면서, 특히 어린이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항문이 열려 죽어갔다고 증언했습니다.

또 재판도 없이 수용소에 끌려온 사람들의 죄목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고 고발했습니다.

김영순: 김일성 목에 혹이 났다고 해서, 김일성 초상화를 깨서 온 사람. 석고상을 깨서 온 사람. 김일성 가계, 즉 1호 가문에 대한 말을 해서 사람.

성혜림 문제로 온 사람. 남한 방송을 들었다고 해서 온 사람. 그다음에 비디오를 봤다고 해서 온 사람. 또 일제시대 때 일본 영화에 출연했다고 해서 온 사람. 이렇게 각양각색의 옛날에 충신이던 사람들이 요덕 수용소에 와서, 장군으로부터 당 중앙위원회 요인들까지, 대사급까지 모든 사람들이 옛날의 충신이 오늘날의 배신자로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김영순씨는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하는 탈북자들의 얘기도 증언했습니다. 중국 하남성에서는 17살짜리 탈북여성 열 명이 중국 돈으로 4천원에서 만원에 팔려가는 것을 봤다고 김씨는 말했습니다.

이들은 정신병을 앓고 있거나 몸이 불구인 중국남성들에게 팔려갔습니다. 또다른 여성은 하남성에 있는 목장에 팔려갔습니다.

김영순: 애들을 둘 데리고 갔는데, 오누이를 데리고 갔는데, 따로 떼어서 팔려갔습니다. 그래서 애들만 후에 북송돼가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회의장에는 실제로 딸들이 인신매매된 경험이 있는 탈북자들도 참석했습니다. 이들은 신분노출을 꺼려해서 김성민씨가 대신 증언에 나섰습니다.

이 두 여성은 각각 딸이 둘씩 있었는데, 자기들이 보는 앞에서 딸들이 모두 장가못간 중국인들에게 팔려갔습니다.

김성민: 한 사람당 2천원에도 사가구요 3천원에도 사갑니다. 중국에서 돼지 한 마리 값이 지금 2천원입니다.

한 어머니는 자식들이 팔려 가는데 나도 같이 사달라고 애절하게 호소했는데, 늙어서 안된다고 그래서 그냥 따라가게라도 해달라고 호소하던 어머니가 여기 앉아계시구요.

또 한 어머니는 2년동안 애타게 모은 돈으로 두 딸을 사겠다고 중국 요녕성 잡지에 요만하게 광고를 내서 3년만에 팔려갔던 딸들을 다시 찾아가지고 대한민국으로 온 분들입니다.

남한에서 인터넷 방송 자유북한방송을 운영하고 있는 김성민씨는 얼마 전 남한내 탈북자 단체 대표인 강철환씨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면담했을 때 탈북자들이 환호했다고 전했습니다.

김성민: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도 물론 환호를 했구요. 그리고 북한 사람들도 희망을 가지게 됐다고 저희 자유북한방송을 통해서 연락도 왔습니다.

김씨는 그러나 남한내 친북세력들에 의해 자유북한방송이 핍박을 받고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매일 100여 통의 협박 전화가 걸려오고 친북학생단체들이 찾아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겁니다.

이들은 자유북한방송이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면서 방송중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씨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방송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김성민: 저희들은 죽어도 방송을 합니다. 이 자리에 함께 오지 못한 탈북 친구 두 명이 북한 정치보위부에 자기가 여기서 방송을 한다고 어머님 아버님이 끌려 다니며 조사를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이 자리에 못 왔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의 몫을 더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 자리에 참가해서 하고 싶은 그 많은 이야기들을 못하는 탈북자들의 마음을 담아서, 그리고 북한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을 통제하려고 하는 김정일에게 경고하기 위해서 죽어도 방송을 하겠다는 것을 이 자리를 통해서 결의합니다.

한편 이번 포럼에는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교포들도 많이 참석했습니다. 대학생 정윤교씨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듣고 그저 놀랄 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정윤교: 정말 믿기지가 않죠. 여기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 진짜 일어나고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죠. 돼지 한 마리 사는 값에 사람이 팔려간다는 게 말도 안돼요.

미국 대학생 데릴 쿠쿠도 탈북자들이 온갖 핍박을 이겨내고 탈북해서 결국 오늘 이 자리에까지 와 증언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Cucu: I think it's pretty amazing how they were able to deal with all the oppression they have to deal with when they escaped then come over here to be able to share that.

쿠쿠씨는 오늘과 같은 자리를 통해 북한의 인권유린 실상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면 머지않아 북한에도 눈에 보이는 영향이 미치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김연호기자

하고 싶은 말 (0)
Share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