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한의대 졸업자 김지은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7.02.02
graduation_pic_305 김지은 씨의 한의대 졸업사진.
사진-김지은 씨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위기는 찬스다”란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힘들고 시련의 시간이 있는데 그 어려움을 역으로 생각해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만드는 사람이 대개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됩니다. 탈북민 동의사 김지은 씨는 자살이란 단어를  떠올릴 정도로 극한 상황까지 몰리지만 이것이 현재 한의사 김지은을 탄생시킵니다.  어떻게 그는 어려움을 극복했는지 알아봅니다.

김지은: 왜 뭣 때문에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그때보다 훨씬 좋은 환경인데 이런생각을 하니까 내가 죽으려고 하는 것은 한의사를 하려는데 그것이 잘 안되니까 내가 지금 이러고 있는구나 딱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청진의학대학 동의학부를 졸업하고 8년간 의사로 일하다 1999년 탈북한 김지은 씨 남한에서는 자격증이 없어 한의사로 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됐고 극단적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독한 마음을 먹은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되는 데요. 이런 우수개 말이 있죠? 자살하자 생각하고 그 말을 연이어 되네이다 보니 뒷말과 앞말이 붙으면서 “살자”라는 말이 되더라. 주마등처럼  스치는 생각들을 정리하다 보니 생각이 변한 겁니다.

김지은: 반드시 한의사가 되겠다고 하는 것도 욕심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정말 북한에서 쌀일 옥수수알 40알 가지고 나눠 먹던 시절 생각도 났고 한국에 오고 싶어하는 많은 탈북자들을 생각할 때 과연 나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아들이었습니다. 아이를 놔두고 잠깐 다녀올께 하고 북한을 떠났는데 …한번도 잊은 적은 없지만 정말 힘들다보니까 이런 결심까지 했는데 그 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어요. 그 아버지는 사망했고 아이는 혼자 있는데 그 아이에게 두번 죄를 짓는 생각을 했고 이런 복합적인 생각을 했어요. 최종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한의사이지만 지금 당장 한의사가 아니라도 나는 지금 내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었죠.

생각을 고쳐먹으니 이전에 보지 못했던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지며 기회가 찾아옵니다.

김지은: 내가 욕심을 버리고 나니까 만물이 아름다워 보여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걸요? 주변상황이 아름답게 보이고 그러면서 컴퓨터를 배우게 됩니다. 그러면서 어떤 회사하고 인연이 닿게 됩니다. 그 회사가 포털 싸이트였는데 거기에 북한관련 글이 올라오면 틀린 점을 고쳐서 내 생각에 잠깐잠깐 올렸던 것을 눈여겨 봤나봐요. 한 번은 그 회사 사장님이 한 번 만나자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취직이 된 거예요.

김 씨가 일하게 되는 첫 번째 직장은 이 세상 모든 관심사를 모아 가상공간 즉 인터넷에 올리는 컴퓨터 관련 직종.

김지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업무상 내가 했던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쉽지 않았고 다만 내 관점이 내가 할 수 있는만큼 나만 잘하면되겠지 했는데 한국 회사생활은 사장과의 관계 주변 동료들과의 관계 그리고 내생각만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틀안에서 업무수행을 해야하는 거예요. 내생각으로 이게 맞는 것같다 해서 하면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겠더라고요.

이런 일들이 아직 남한사회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벌어졌던 지라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루는 맘을 먹고 직장 상사를 찾아가 고백을 하는데요.

김지은: 그만 둘거예요. 힘들어요 그랬더니 뭐가 힘들어요 묻더라고요. 그래서 사장님과의 관계 직원들과의 관계 업무를 잘 파악 못하는 것도 힘들어서 관둘거예요. 이랬더니 홍보이사님이 얼마나 노력을 해봤어요 김지은 씨 그러더라고요. 다시 한번 생각해봤어요. 힘든 것만 생각했지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연 어떤 노력을 했던가 생각해보니까 노력을 안했던거예요. 제가 자기 힘든거만 생각한거죠. 회사 책임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런 것이 안좋게 보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때 언론을 보면 누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자기들이 와서 한국에 와서 적응도 못하고 혼란스럽게 한다 이런 보도가 많았거든요. 나는 그런 보도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굉장이 마음이 아팠고 나는 저 대열에 들어가지 말아야겠다 다짐하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 대열에 들어가고 있더라고요.

보통 탈북민은 남한에 가서 3년 정도 자본주의 사회를 이해라는 적응기를 거친다고 합니다. 무엇에 대한 적응인지 여기서 한 번 김지은 씨의 경우를 들어보죠.

기자: 말은 같은 말인데 문화의 차이가 이렇게 많이 나는가 이런 경험이 있습니까?

김지은: 당연히 있죠. 처음에 와서 직장을 얻어야겠다고 전화를 하면 첫번째 질문이 묻는 질문이 악센트도 있고 하니까 교포세요 이래요. 예, 하고 탈북자라고 하기 싫어서 답을 하면 두번째가 컴퓨터 할줄 압니까 자동차 운전할 줄 아세요. 이러면 잘 모르는데요 이렇게 하면 그쪽에서 네 알겠습니다. 다시 연락드릴께요. 그러면 저는 다시 연락이 올줄 알고 계속 기다리죠. 하지만 한국에서 다시 연락준다고 하면 일종의 거절의 표현이더라고요. 그걸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연락이 오길 기다리는 중에 연락이 안 오면 한국 사람들과 한국 사회에 대해 나쁜 오해를 갖게 되요. 이 사람들은 거짓말쟁이구나 하면서 점차 여기서부터 탈북자들이 이 나라와 사회에 마음을 조금 멀리하게되는 시점인 것 같아요.

또 한국 문화 중에 명함문화가 있잖아요. 처음 만나면 명함을 주고받고 언제 시간되면 차 한잔 하시죠 식사한 번 하시죠 이러면서 명함을 주고 받는데 저는 언제 전화를 줄지 계속 기다렸거든요. 저는 그때 이사람들은 거짓말을 굉장히 많이 하는 사람들이구나 믿지 말아야지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는 거죠. 한 2년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명함문화는 한국의 인사문화이고 전화가 올 수도 안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다시 면접볼 때 전화드릴께요 이것은 거절의 뜻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되죠.

마음을 고쳐먹으니 일이 수월해 집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 자체가 쉬워진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 문제 해결을 위한 자세가 틀려진 것이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수첩에 적었다가 시간이 날 때 알아보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했고 그런 모습을 접한 동료들은 김 씨에 적극 돕기를 자청하게 만들었습니다.

김지은: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니까 인정해주면서 나에게 많은 관심을 갖게 됐죠. 그러면서 저를 다시 보게됐고 이 사람은 한의사인데 왜 못하고 있는 걸까? 자기 직업을 하게되면 더 잘하겠다는 생각을 하게됐데요. 그러면서 이 사람을 한의사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됐고 홍보이사가 저를 데리고 국회에 갔고 국회의원에게 가서 쭉 설명을 했더니 북한에 가서 자격증을 가져오라는 것은 불합리 하다 이것을 상정하자 해서 저를 국정감사 참고인 자격으로 저를 부른거예요. 그게 2004년 10월4일 국무조정실 국정감사에 탈북자로는 처음 참고인 자격으로 제가 참가를 했죠.

기자: 바뀐게 뭔가요?

김지은: 전에는 북한에 가서 당신이 의사였던 서류를 가져오시요 이것이었는데 바뀐 뒤에는 서류를 가져오지 않아도 면접을 통해 어느정도 확인이 되면 국가자격 시험을 칠수 있는 자격을 준거죠.

김 지은 씨는 북한에서의 학력을 인정받아 남한 세명대학교 한의대 6년과정에 2학년으로 편입을 했고 입학 당시 나이가 만 35세를 넘어서 탈북자에게 주는 대학등록금 지원을 못 받게 됩니다. 즉 자기가 학비를 마련해야했습니다.

기자: 회사에서 번돈으로 등록금을 낸 것이군요.

김지은: 네. 회사에서 벌 때 내가 많이 쓸때는 한달에 10만원 정도 쓰고 안 쓸때는 2만원 썼거든요. 그정도로 걸어다니면서 안썼죠.

전에도 그 예가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남북한 한의대를 모두 졸업한 김지은 씨 그는 이렇게  남한 한의과 대학 생활을 합니다.

김지은: 설랬죠. 왜냐하면 이 나이에 대학을 두 번 다닌다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10대에 대학을 다녀서  저도 20대 초에 대학을 졸업했고 지금 30대 후반에 다시 이렇게 쌩쌩한 친구들과 대학 을 다닌 다는 것이 아무나 가질 수 있는 행운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굉장히 설랬습니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탈북한의사 김지은 씨의 한의대 입학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한의사 김지은 남한에서 오늘”  편입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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