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태권도연맹 창립 최홍희 총재 100돌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8.10.11
ITF_Founding_b 국제태권도연맹 창립식.
사진-송광호 씨 제공

국제태권도연맹 창립자 최홍희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한민족의 대표적 무술로 세계에 널리 보급된 투기운동이 있습니다. 바로 태권도인데요. 이 태권도는 현재

북한의 국제태권도연명( ITF)와 남한의 세계태권도연맹 (WTF) 이 둘로 갈라져 있습니다. 올해는 고인이 된 국제태권도연맹 최홍희 총재의 100돌이 되는 해입니다. 최 총재와 가까운 사이었던 캐나다 교포언론인 송광호 씨를 통해 최 총재의 이모저모에 대해 알아봅니다.

기자: 안녕하십니까

송광호: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기자: 최홍희 총재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신 겁니까?

송광호: 제가 1987년 조선일보 여기 지사 발행인을 할 때 최홍희 총재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때는 최  총재께서 캐나다에 망명을 해서 캐나다 시민이 된지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교포사회에 소위 빨갱이라고  소문이 나서 전부 외면하고 가까이 하질 않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가 조선일보를 시작하면서  수소문을 해서 인터뷰를 하게 됐습니다. 첫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죠.

기자: 최 총재가 비운의 태권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유가 1972년 한국에서 캐나다로 망명하고 그후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시킨 일로 해서 태권도에 큰 족적을 남겼음에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면이있습니다. 최 총재는 살아생전 이런 부분에 대해 지인들에게 어떤 말을 하셨습니까.

송광호: 최 총재께서는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는 태권도는 누구나 배울 수 있고 사상, 인종, 종교 국경을 초월해 전세계에 보급하는 것이 내 꿈이다. 그 꿈을 위해 자기는 끝까지 노력하고 전파할 것이라고 항상 얘기를 하셨죠.

기자: 캐나다에서 태권도의 위상은 어느 정도입니까?

송광호: 최홍희 총재가 토론토 근교에 오래 사셨는데 그렇다고 캐나다에 특별히 태권도가 많아진다거나  그런 것은 없습니다. 토론토에 제자가 박종수 사범이라고 나중에 부총재도 하고 했는데 북한에서 주도권을 잡게되자 부총재도 그만 두고 했는데 그분을 비롯해서 몇 사람 제자가 도와주고 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세계태권도연맹 사범들이 많이 들어왔죠. 지금은 세계태권도연맹이 90퍼센트 차지하고 있습니다.

기자: 최 총재가 캐나다에서 여러 차례 북한을 다녀와서 주변사람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어떤 것입니까?

송광호: 갔다와서 한 이야기는 최홍희 총재가 북한에 가게된 동기부터가 태권도가 북한 전역에 퍼지다 보니까 청소년 대회다 국제대회다 이런 시합이 있을 때마다 자주 갔습니다만 그분 말씀이 나는 북한에 가도 한 열흘이고 대회가 있을 때마다 잠깐 갔다올 뿐인데 자꾸만 오해를 하고 빨갱이로 몰고 있다. 나는  남이고 북이고 없다. 그분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누가 너는 고향이 어디냐? 남한에서 왔나, 북한에서 왔나 물어보면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에게 핀잔을 주고 하는 것을 제가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자기는 통일된 나라가 자기의 조국이고 태권도는 국적, 사상, 인종을 떠나 무도인으로서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북한에 갔을 때 들어보면 북한 들어갈 때 가능하면 옷차림도 그렇고 머리 염색을 해도 자유분방하게 하고 가라. 북한은 경직된 나라니까 자유바람을 좀 넣어야 겠다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기자: 캐나다 망명에 대해서는 최 홍희 총재가 어떻게 설명을 하던가요?

송광호: 총재가 캐나다 망명에 대한 이유에 대해 최홍희 총재 말씀은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육군 소장이었어요. 또 5.16에도 반대도 하지 않았고요. 그런데 서열은 높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박정희 소장이 최홍희 소장한테 각하라고 하고 선배 대접을 했고요. 그런데 정권을 잡고 나서 3선개헌도 하게되고 정치적 압력이 들어오자 대부분의 군인이 그렇겠습니다만 아주 강직한 면이 있고 해서 반대를 하다보니까 압력을 받았고 캐나다로 망명을 하게 된거죠. 아주 몰래 망명을 하게됐습니다. 나중에 식구들이 빠져 나오고 했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박정희 소장은 최홍희 소장의 태권도를 선거에 이용하고 어떻게든 당시 장기집권을 하고자 하는 야욕이 있었는데 자신은 승락을 못하고 캐나다로 왔다.

기자: 선생님이 북한에 가서 태권도 취재를 했을 때 태권도의 열기는 어땠습니까?

송광호: 대단하죠. 1980년대부터 갔다왔는데 한 8번은 갔다왔습니다. 태권도가 완전히 국민운동으로 됐고 어릴때부터 꼭 배워야 하는 것이 태권도와 수영이다. 이 두가지는 필수고 특히 태권도는 어느 경기에 수상을 하거나 몇 단 이상이 되면 군대가 면제된다. 이 얘기는 직접 최홍희 총재에게 들었습니다.

기자: 고인이 된 최홍희 총재가 1918년 11월 9일 생이시니 올해가 딱 100년이 되는 해인데요. 최 총재의 가족은 현재 캐나다에 살고 있는데 어떤 행사가 준비 되고 있는지요.

송광호: 네, 여기 토론토에 부인이 있습니다. 연세가 90세가 넘었는데요. 자녀가 외아들과 딸 둘이 있고요.  아들이 이곳 국제태권도연맹 총재로 있는데 기념행사를 11월 3일 토론토에서 정식으로 연다고 합니다. 듣기로는 북한에서도 최홍희 총재 탄생 100주년 소규모 대회를 갖는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습니다.

기자: 송광호 선생께서는 오랜 기간 최 총재 곁에서 취재도 하시고 생활모습을 지켜 보셨는데요. 마무리를 좀 해주시죠.

송광호: 마무리 이전에 제가 아주 중요한 한가지 얘기를 빼놨는데요. 지금 국제태권도연맹이 최홍희 총재가 2002년에 돌아가시고 벌써 16년이 됐네요. 최 총재가 돌아가시고 나서 장웅 IOC위원에게 자릴 넘겼고 지금은 3대 리용선 총재인데 지금은 거의 국제태권도연맹이 죽어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활동이  너무 미미하고 약해졌습니다. 그 이유가 전부 기술위원장들이 북한사람이고 오스트리아 빈 사무실에 전화를 해도 한국사람 전화는 받지도 않아요. 그렇게 아주 폐쇄적으로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폐쇄적으로 하다보니까 점점 위축되고 있고 반면 세계태권도연맹은 얼마나 위상이 전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습니까?

누구보다도 가슴아파 하는 것이 여기 최홍희 총재 부인인 한춘희 여사님입니다. 너무 가슴 아파서 다시는 북한에 안간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최 총재 성지를 태어난 나진선봉에 만든다고 청사진도 만들고 아주 굉장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것은 아예 없어지고 이제는 최홍희 총재 이름조차 거론을 안하는 것에 총재 부인 입장에서는 정말 가슴이 찢어지죠. 남편이 빨갱이 소릴 들으면서 가서 보급하고 전파를 했으면 북한에서는 그러면 안되는 겁니다. 총재 부인은 내가 죽어도 남편이 거기 있어도 가지 않겠다면서 얼마전에 토론토에 묘소를 샀습니다. 그럴 정도로 섭섭해 하고 계십니다.

기자: 선생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송광호: 네, 감사합니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최홍희 국제태권도연맹 초대 총재에 관한 이모저모를 캐나다 교포언론인 송광호 씨를 통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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