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재건축물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9.07.15
daesung_department-620.jpg 리모델링을 끝낸 평양 대성백화점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올해 북한 태양절에 즈음하여 북한매체는 새롭게 단장하고 다시 문을 연 대성백화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바 있습니다. 분명 기존의 모습과는 달라졌는데요. 오늘은 북한의 건축물에 대해 남한 아이 에프 건축사 사무소 차상욱 대표를 통해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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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이번에 재공사를 마친 평양 건축물에 대해서 어떻게 보셨는지요?

차상욱 건축사: 일단 사진과 영상으로 접할 수 있는 대성백화점의 모습은 개보수 이전의 옛모습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더라도 대단히 현대적인 건축물의 등장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비록 이목을 끌만한 선도적인 디자인을 건축으로 구현해낸 것은 아니지만, 남한에서 흔하게 봐왔던 건축구성 요소들이 드디어 평양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반갑기까지 했습니다.

기자: 우리눈에 익숙한 모습은 어떤 것을 말씀하는 겁니까?

차상욱 건축사: 먼저 눈에 띄는 것을 말씀드리자면 내부공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상점이 위치한 2층과 3층의 분위기를 보면 그동안 간판에 한글 기호만으로 돼있었는데 이젠 해외명품 제품의 영문표기가 그대로 보이는가 하면 상품진열 공간도 이전보다 여유롭게 배치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색채구성도 수 년 전에 비하면 훨씬 차분하고 조화롭게 구현된 것 같은데요. 이는 해외명품 공급자들의 입김을 무시하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어찌되었건 결과적으로는 북한 상업공간의 진화로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건축전문가의 눈으로는 외부형태에 가해지는 변화의 양상과 외부 마감자재에 더욱 주목하게 됩니다.

기자: 외부 마감재의 변화 이유는 뭐라고 보시는 겁니까?

차상욱 건축사: 먼저 형태의 변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어떤 사회의 수준과 성격이 건축을 통해서 고스란히 투영되기 때문이죠. 과거 북한의 상점 또는 상업시설은 배급소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따라서 그런 역할을 하는 시설들은 건물의 기능을 알리는 작은 간판 하나만 붙여놓으면 그만이었습니다. 상품을 선택하는 자의 편의라든지 상품을 돋보이게 하는 기술 따위는 필요치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도난으로부터 물품과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서 더욱 폐쇄적인 형태를 취하는 것이 북한상업 건축의 설계원칙처럼 작용해 왔을 것입니다.

현재, 서평양 지역에서 성업중인 ‘광복지구상업중심’ 도 외부에 붙여놓은 중국풍 글자가 없다면 외견상 그 기능을 알 수 없을 만큼 경직되고 폐쇄적인 형태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김일성 광장 인근에 있는 ‘평양 제1백화점’ 역시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예외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새단장을 하고 등장한 ‘대성백화점’은 기존시설에 없던 ‘아트리움(투명한 유리로 조성된 대형공간)’을 건축물의 전면에 과감하게 설치했습니다. 저는 이 점을 흥미롭게 보게 됩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조선신보가 공개한 평양 대성백화점.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조선신보가 공개한 평양 대성백화점.
/연합뉴스

유리로 만들어진 대형공간을 건물의 전면에 두는 것은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의 성격을 관념적으로 또는 시각적으로 이어주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는 소비자로 하여금 그 시설로 쉽게 다가오게 만드는 장치가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소비자를 향해 먼저 두 팔을 펼쳐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상업시설들은 아트리움을 보편적인 건축요소로 활용해 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대성백화점에 등장한 아트리움은 북한의 상업시설도 이제 소비자를 향해 적극적으로 ‘열린공간’임을 알려야 할 만큼 자유시장경제의 생리에 길들여져 가고 있는 상징과도 같아서 저는 고무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기자: 구체적으로 어떤 마감 자제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부연 설명이 필요하겠습니다.

차상욱 건축사: 대성백화점의 외벽에 사용된 자재는 일명 ‘알미늄 복합판넬’로 불리는 ‘건식자재’로 보입니다. ‘건식자재’라는 것은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페인트 또는 회반죽을 발라 놓거나  시멘트 몰탈을 사용해서 어떤 자재를 붙여두고 나서 그것이 마르기를 기다려야하는 ‘습식자재’와 구별되는 말입니다.

이 자재의 장점은 무엇보다 빠른 마감공사가 가능하다는 점과 다채로운 색상을 선택하여 균일한 마감면을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높은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도 말씀드리고 싶지만 북한에서는 그 점에 매력을 느끼고 사용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런 유형의 외장재는 우리가 1980년대부터 흔히 사용해왔던 것입니다만 북한건축에서 이와 유사한 자재가 등장한 것을 제가 처음 본 사례는 2012년에 만수대지구에 신축된 ‘은하수 인민극장’에서 였습니다. 그 후 김정은 시대의 치적으로 홍보되는 주요 신축건물에 부분적으로 사용된 것을 본적은 있습니다만 낡은 건축물을 전체적으로 개보수하는데 이 건식자재가 활용된 사례는 최근 북한매체가 홍보하고 있는 평양 ‘개선역’에 이어 ‘대성백화점’이 처음이 아닐까라고 생각됩니다.

기자: 새로 단장한 건물에는 알미늄 복합판넬의 등장이 주목할만 한데 앞으로 다른 건물에서도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차상욱 건축사: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자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세계적인 대북제제 국면에서도 북한은 그동안 단조로운 건축자재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건식공법에 사용되는 자재들은 고도로 지능화된 생산공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산업기반이 조성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자재들을 결합하고 마무리하는데 필요한 부속자재들의 동반 생산과 유통이 가능하도록 건설시장이 조성되어야 자재로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많은 분야에서 여건이 갖춰지지 못한 북한은 지금껏 이 건식자재의 생산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태양절을 기념하기위한 특명을 받고 개보수에 돌입한 두 건축물은 건식공법에 따라 건식자재를 뒤집어쓰고 새롭게 났기 때문에 향후 평양의 모습과 건축산업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 지 흥미롭게  생각됩니다.

기자: 그렇다면 전문가의 시각으로 보는 앞으로 평양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차상욱 건축사: 지난 2016년 7차 당대회를 앞두고 평양은 외견상 대대적인 변모를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북한은 미래과학자 거리를 위시한 주요 거점에 고층살림집을 비롯해서 각종 상징 시설들을 몇개 신축했습니다. 이때 한 가지 딱한 사실은 외부세계의 대북제재 무용론을 시각화하기 위해 급히 세워야 하는 건축물에 ‘타일’ 말고는 투입할 자재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자유시장 경제와 거리가 먼 북한은 다양한 건축자재를 생산해낼 기반이나 동기가 없으니 그나마 석재보다 값싼 타일을 가져다가 고층 살림집의 외부를 마감하게 되었는데 이 일을 인민군 돌격대가 매달려 손으로 일일이 낱장의 타일을 붙여나가는 노고를 통해 이뤄내게 됩니다.

그런데 어렵사리 상징적인 건축물 몇 개를 세워놓았는데도 본바탕이 회색이었던 평양의 채도를 끌어올릴 수가 없게 되자 북한 당국은 페인트에서 그 해법을 찾습니다. 삽시간에 평양은 무채색의 탈을 벗고 알록달록한 레고랜드, 다시말해서 ‘장난감 블럭으로 만든 도시’처럼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문제는 곧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속도전에 내몰린 불량시공과 사용된 페인트의 낮은 품질 때문이죠. 멀리서 보면 그나마 깔끔하게 변모된 듯 보이던 평양은 가까이서 볼 때 새로 칠했다는 사실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엉성한 도장면을 드러내고 있는가 하면 비만 오면 흠뻑 젖어 버리는 페인트의 품질 때문에 더욱 우중충한 전경을 펼쳐놓게 되면서 오히려 외국인 관광객들의 조롱거리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모를 리 없는 북한당국은 ‘대성백화점’과 ‘개선역’에서의 경험을 살려 오래된 건축물 가운데 중요도가 높은 순서대로 빠르게 건식공법을 적용해 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자: 알미늄 복합판넬 그러니까 간판이 어떤 문제라도 있다는 말인가요?

차상욱 건축사: 이 건식자재에 특별한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한 가지 공법과 자재가 수뇌부의 의지에 따라 삽시간에 도시를 뒤덮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상세히 들여다보면 ‘알미늄 복합판넬’이라는 건식자재에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판넬과 판넬이 만나는 지점에 생기는 줄눈을 마감할 때, 네오프렌(합성고무)계열의 자재가 사용되기도 했는데, 초기에는 이것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었으니까요.

좀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완공 시점에는 깔끔했던 줄눈 자재가 얼마 지나지 않아 풍화로 되면서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기름성분이 판넬을 심각하게 오염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여러 기업들이 수 십 년의 경험치를 바탕으로 연구개발을 거듭해온 덕분에 그런 문제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건식공법이 유지되는 가운데 판넬에 사용하는 재질이 더욱 다양하게 진화해 있기 때문에 어떤 재료를 골라 설계의도를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큽니다.

기자: 보통 백화점과 같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설에 대한 안전규정이 까다롭게 적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성백화점은 어떨까요?

차상욱 건축사: 바로 그 부분에 대한 관심은 건축 전문가로서 빠트릴 수 없는 항목이겠지요. 그러나 북한이 홍보하고 싶어하는 제한적인 자료들을 통해서 그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는 것이 솔직한 답변입니다. 더욱이 앞서 말씀드린 건식공법으로 기존 구조체를 완전히 감싸버릴 경우 옛 건축물의 구조적 안전을 판단해 볼 단서 조차 없으니 대성백화점이 지진에 대한 안전대책을 어떻게 수립했는지 화재예방을 위해 어떤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 알 방법은 없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차차 파악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그렇다고 궁금증을 묻어놓고 있을 수는 없어서 북한의 법규를 뒤져봤습니다. 우리처럼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안전규정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조항은 찾을 수 없었지만, ‘인민대학습당’의 장서보존관리 규정을 보면 거기에 ‘화재수감장치’나 ‘자동소화장치’를 갖춰야 한다고 적어 놓은 것으로 보아 대성백화점에도 그런 장치에 대한 고려가 어느 정도 되어 있을 것으로 믿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우려하는 바는 따로 있습니다.

기자: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차상욱 건축사: 바로 전기입니다. 어떤 이들은 북한식 표현으로 불장식(경관조명)을 한 건축물이 평양의 야경에 더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대어 최근 북한의 전기사정이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지만  불장식에 사용되는 LED조명은 소모전력이 작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북한의 전기 사정이 호전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봅니다.

전기에도 품질이 있는데 동일한 전압을 유지한 상태에서 상시적이고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하고 있느냐를 보아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만약 지진이나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이를 감지하고 경보기를 작동하려면 전기는 항상 살아있어야 하고 즉각적인 화재진압을 위해 스프링클러에 많은 양의 물을 공급하려면 모터 펌프에 안정적인 전압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고품질의 전기공급을 하지 못하는 평양에서 과연 화재경보기 조차 필요한 시점에 제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으로 남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아트리움 공간은 상업유통 건축에 많은 장점을 제공하는 장치이지만 그 장점을 충분히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단점도 따라 다닙니다. 즉, 여름의 냉방부하와 겨울의 난방부하를 적절히 해소할 수 있어야 제 기능을 한다는 뜻입니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평양 건축물의 재건축과 관련해 아이 에프 건축사 사무소 차상욱 건축사의 견해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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