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우상화-대학명칭(2)

김주원∙ 탈북자
201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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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이 백팩을 메고 등교하는 모습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이 백팩을 메고 등교하는 모습
사진 - 연합뉴스

북녘 동포 여러분! 지난 시간에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강건군관학교 등 김일성시대에 사람의 이름을 붙인 대학들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김일성시대와 달리 김정일시대에는 더 많은 대학들에 사람의 이름이 붙여지기 시작하였고 이를 통해 김씨 일가의 우상화는 고조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김정일시대에 생겨난 명칭대학들에 대해 얘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946 7 8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결정 제40 <북조선에 종합대학을 설치할 데 관한 결정>으로 당시 평양에 있던 평양의학전문학교와 대동공업전문학교를 모체로 하여 1946 10 1일에 설립된 김일성종합대학이 북한에서는 처음으로 생긴 대학입니다. 김일성종합대학 교가의 후렴부에 ‘자랑차다 종합대학 학원의 맏아들’이라는 가사내용이 이를 잘 말해줍니다. 김일성종합대학과 같은 날 동시에 평양사범대학과 청진교원대학이 설립되었지만 여전히 김일성종합대학은 북한 대학의 맏아들로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설립 당시 김일성종합대학의 명칭은 김일성대학이었습니다. 1950 6.25남침전쟁 이전까지 북한에 설립된 대학은 15개뿐이었습니다. 1946년에 김대와 평양사대, 청진교대, 함흥의대가, 1947년에 흥남공업대학, 신의주교원대학, 1948년에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떨어져 나와 지금은 김책공업종합대학으로 불리던 평양공업대학과 원산농업대학, 평양의학대학, 청진의학대학, 해주교원대학이, 1949년에 원산교원대학, 평양로어대학, 국립음악학교, 국립미술학교가 전부였습니다. 알 수 있는 것처럼 당시까지만 해도 이름을 붙인 대학은 김일성종합대학이 유일했습니다.

1980 10월에 진행된 6차당대회에서 김정일이 주석단에도 등장하는 등 후계자로서의 위상이 높아지고 북한전역에서 김일성의 후처였던 김성애와 그녀의 아들인 김평일이 ‘곁가지’로 배격당하면서 김정숙의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김정일의 지시로 김정숙사범대학이 생겨났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김일성의 본처이자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보다 후처인 김성애가 북한주민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김정일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김정숙을 ‘조선의 어머니’라는 대명사를 붙여 부르도록 하였고 양강도 도소재지에 있던 혜산제2사범대학을 김정숙사범대학으로 개명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대학 이름에 이름을 붙이니 언론들에도 그 이름이 자주 오르고 대학생들 속에서도 자기 대학의 명칭에 있는 사람의 이름에 대한 우상이 생겨났습니다. 김정일은 여기에서 나아가 더 많은 대학들에 사람의 이름을 붙여 대학생들과 북한주민들의 충성심을 불러일으킬 생각으로 그 방안을 지시하였고 1990 10월에는 한꺼번에 60여 개의 대학 명칭이 개명되었습니다. 당시 중앙인민위원회는 대학의 명칭을 변경하면서 “대학의 이름을 뜻 깊게 지어 부르는 것은 청년학생들을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의 믿음직한 주체혁명위업 계승자로 키우는 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바뀐 대학 명칭들 가운데서 절반가량인 약 30여개 대학은 김정숙, 김형권, 김철주 등 김씨 일가의 가족들이 이름입니다. 당연히 김일성의 이름이 들어간 대학이 가장 많았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 외에 김일성군사종합대학, 김일성정치대학, 김일성방송대학, 김일성고급당학교, 금성정치대학 등 대학뿐 아니라 김일성고등물리학교, 김성주인민학교, 김성주학생소년궁전, 금성제1고등중학교 등 고등중학교들과 소학교들에도 김일성의 이름을 붙였던 것입니다. 김성주는 김일성의 본명이고 금성은 김일성이 한때 사용했다며 북한의 혁명소설들에 등장했던 이름입니다.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의 이름을 붙인 김정숙사범대학 이외에도 김정숙해군대학, 김정숙교원대학, 김정숙여자고등중학교, 김정숙 제1고등중학교, 김정숙탁아소 등이 생겨났습니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붙인 김형직사범대학, 김형직군의대학, 그리고 할머니의 이름을 붙인 강반석혁명학원, 강반석고등중학교, 강반석탁아소 등이 생기면서 혁명가 가족, 백두혈통교양의 거점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김정일의 욕심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김일성의 할아버지이자 자기의 증조할아버지인 김보현의 이름을 붙인 김보현대학이 생겨났으며 작은 할아버지인 김형권의 이름을 붙인 김형권고등중학교, 김일성의 동생이자 자기의 삼촌이름을 붙인 김철주사범대학도 새로 등장하였습니다.

자기의 가족들의 이름으로만 대학명칭을 바꾸자니 마음 한구석이 걸렸는지 김정일은 김씨 일가에게 충성했던 사람들의 이름도 대학명칭에 박아 넣어 전 사회적인 충성경쟁을 유발하도록 꾀하였습니다. 결국 항일투사, 전쟁영웅, 전후 사회주의 건설에서 모범을 보였던 사람들의 이름들도 대학 명칭에 등장하였습니다. 김책공업종합대학, 강건군관학교 이외에도 사리원강건의학대학, 조옥희해주교원대학, 리수덕원산교원대학이 생겨났습니다. 황해남도 벽성군 여맹위원장이었던 조옥희는 6,25남침전쟁시기에 개성의 자남산에서 빨찌산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처형된 여성입니다.

북한당국은 회령교원대학을 김정숙교원대학, 함남제1사범대학을 김형권사범대학, 평양사범대학을 김철주사범대학, 신의주제1사범대학을 차광수대학, 평양상업대학을 장철구대학, 함흥제1교원대학을 최희숙대학, 청진교원대학을 마동희대학, 청진제1사범대학을 오중흡대학으로 개명하였습니다. 차광수는 김일성과 유년시절 함께 했던 투사이고 장철구는 일제강점기에 항일빨치산에서 작식대원(식당조리)을 하였던 여성이며 최희숙, 마동희, 오중흡은 청취자여러분들이 잘 아는 항일투사들입니다.

사회주의 건설에 기여한 인물들의 이름을 붙인 대학들로는 재일본조선인총연맹 의장이었던 한덕수의 이름을 붙인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 광복 후 선참으로 애국미를 헌납한 김제원농민의 이름을 붙인 김제원해주농업대학, 누에고치박사인 계응상 박사의 이름을 붙인 계응상사리원농업대학, 북한 계획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정준택의 이름을 붙인 정준택원산경제대학 등입니다.

사람의 이름을 붙인 해당 대학들에는 그 사람의 동상이나 석고상들이 세워졌고 대학 건물의 외부와 내부에서 그 사람의 충성심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전시되었습니다. 중앙당 과학교육부와 내각 사무국, 각도 도인민위원회 교육국과 시군인민위원회 교육부 등 당과 정부기관들에서는 명칭대학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대학 꾸리기에 필요한 자재도 우선적으로 공급되었으며 대학 사업에 대한 소개도 북한언론들을 통해 더 많이 보도되었습니다. 김정일은 대학 명칭에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것에 더해서 우상화선전에 필요한 사적지와 전적지 지역 명칭도 넣도록 하였습니다. 혜산광업대학이 보천보공업대학으로, 강계제1사범대학이 장자산대학 등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김정일은 김씨 일가의 이름을 대학 명칭에 붙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대학에 이어 고등중학교, 심지어 소학교들에도 붙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김정일의 지시로 젊은 나이에 김씨 우상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들과 청년들의 이름을 학교 명칭에 붙여 충성경쟁을 한층 가열시켰습니다. 군사훈련 도중에 실수로 터지는 수류탄을 몸으로 막아 전우들을 구원하였다며 평안북도 구장군 룡문고등중학교를 김광철고등중학교로, 근무 중에 열차탈선사고로 김일성의 초상화가 깨지는 것을 막으려다가 숨진 열차승무원 리복재의 이름을 붙여 평양 서포고등중학교를 리복재고등중학교로 개칭하였습니다.

북한에는 김정일의 이름이 붙은 고등중학교도 생겨났는데 그것이 바로 양강도 삼지연군 백두산밀영노동자구에 신설한 정일봉고등중학교입니다. 러시아 시비리의 하바롭스크의 소련군 병영마을인 바츠코예에서 출생한 김정일의 본명은 유라였습니다. 김일성이 소련군 대위로 복무한 사실을 지금도 숨기고 있는 북한정권은 남산중학교를 졸업하고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하면서 개명한 김정일이라는 이름을 붙인 가짜 밀영인 백두밀영 뒷산의 장수봉을 정일봉이라고 고치고 학교 이름도 정일봉고등중학교라고 붙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향도 바꾸고 대학이나 중학교, 심지어 소학교들에도 사람이름을 붙여 우상화선전을 하려고 해도 숨겨진 모략과 궤변은 감출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인터넷을 막고 외부 정보를 차단하려고 하여도 정보세상에 공간에 무수히 떠다니는 진실은 막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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