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일가 건강을 위한 연구기관들

김주원∙ 탈북자
2015-02-03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평양남새과학연구소 종업원.
평양남새과학연구소 종업원.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자 김주원입니다. 이 시간에는 김일성 일가의 건강장수를 위해 만들어진 ‘만수무강연구소’의 실체에 대하여 이야기하려 합니다. 만수무강연구소는 북한에서 특별히 지어놓은 이름이 아닙니다. 북한에는 김일성 일가의 건강을 위한 여러 연구기관들이 있습니다.

김일성 일가의 건강과 관련된 연구를 ‘호위과학연구’라고 하는데 간부들속에서는 ‘만수무강연구소’라고도 불리게 된 것입니다. ‘만수무강연구소’는 기초과학원과 만청산연구원, 청암산연구소로 구성돼있습니다.

‘만수무강연구소’라는 가상적인 이름 속에 이렇게 여러 산하 연구기관들이 존재하게 된 배경 속엔 김일성과 김정일의 보이지 않는 권력암투와 자신을 내세우기 위한 북한 고위층들의 지나친 충성경쟁이 놓여 있습니다.

‘만수무강연구소’에서 최초로 신설되고 규모도 가장 큰 것은 ‘기초과학원’입니다. 지금의 금수산태양궁전은 김일성이 죽기 전까지는 금수산의사당이라는 명칭으로, 민간에서는 주석 궁이라고 불리었습니다.

김일성은 중년기에 벗어나 노년에 들어서면서 평양시 대성구역 미산동에 위치한 이 주석궁에서 일도 보고 잠도 자면서 죽는 날까지 살았습니다. 김일성의 먹고 쓰는 일체의 생활필수품은 금수산의사당경리부에서 책임지고 보장하였습니다.

김일성의 건강장수를 위해 최고의 생활필수품만을 보장해야 하는 금수산의사당경리부의 부담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부담을 덜기위해 당시 금수산의사당 경리부 부장 신상균이 설립한 연구기관이 ‘기초과학원’이었습니다.

‘기초과학원’은 김일성의 생일 70돌이 되는 1982년에 설립되었습니다. 김일성의 만년장수를 연구한다는 의미에서 처음 설립된 ‘기초과학연구원’은 일명 ‘호위과학원’이라고 불렀고 이 분야를 가리켜 ‘호위과학사업’이라고도 이야기됐습니다.

평양시 대성구역 룡북동에 위치한 ‘기초과학원’은 설립초기부터 금수산의사당경리부에 소속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금수산경리부장 신상균이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됐습니다.

그 사이 ‘기조과학연구원’은 금수산의사당재정경리부 산하에서 중앙당 재정경리부 소속으로 이전됐습니다. ‘기초과학연구원’을 중앙당 재정경리부로 옮길 데 대한 지시는 김정일이 직접 내린 것이었습니다.

신상균이 왜 교통사고를 당했는지, 그리고 그 사이 금수산의사당경리부 소속이었던 ‘기초과학원’을 중앙당 재정경리부로 이관시킨 김정일의 속심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1970년대 후계자의 지위를 얻기 위해 ‘당의 유일령도체제’를 내놓고 경쟁자들을 모조리 숙청한 김정일은 1980년대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를 내세워 배다른 동생들인 김평일, 김성갑과 김성호까지 가택에 연금시켰습니다.

당시까지 신상균 금수산 의사당경리부장은 김일성에 대해서는 무한한 충성심을 가졌지만 후계자였던 김정일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신상균의 자동차 사고가 자신을 무시하지 말라는 김정일의 경고라는 추론도 있었습니다.

‘기초과학원’도 김정일의 이런 야심에서 결국 중앙당재정경리부로 옮겨졌습니다. 기초과학원을 빼앗긴 신상균 부장은 김일성에게 의미심장한 사연을 하소했으나 이미 김정일이 저지른 일을 돌이킬 수가 없었습니다.

애지중지 만들고 키워놓은 기초과학원을 빼앗긴 신상균은 가슴에 쌓인 한을 풀기 위해 김일성에게 새롭게 연구소를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생겨 난 것이 금수산의사당경리부 소속의 ‘만청산연구원’이었습니다.

이에 대응해 김정일은 1978년에 조직된 호위사령부 1국 식품조리과를 확장해 호위사령부 2국 산하에 ‘청암산연구소’를 내왔습니다. 자신을 후계자로 내세워 준 김일성에 대한 김정일의 배신행위는 사실 ‘만수무강연구소’를 둘러싸고 시작됐습니다.

같은 목적의 연구소가 세 개씩이나 되고 이를 통한 재정손실이 커지자 김일성은 연구소들을 모두 합칠 것을 김정일에게 조언했습니다. 하지만 김정일은 ‘호위과학연구’ 사업도 서로 경쟁을 시켜야 성과를 더 낼 수 있다고 고집했습니다.

김일성 일가의 건강을 연구하는 ‘호위과학연구소’가 세 개씩이나 나오면서 이들을 통틀어 ‘만수무강연구소’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연구소에서는 “수령님의 만년장수와 지도자 동지의 건강은 40대 이후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항상 강조했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사망한 오늘날까지 이들 3개의 연구소는 여전히 건재해 있습니다. 과거 김일성, 김정일의 만년장수를 위해 존재하던 ‘만수무강연구소’가 이제는 오직 김정은 한 사람을 위해 나라의 재정을 마구 탕진하고 있습니다.

금수산태양궁전 방향으로 평양 제2병원을 지나는 아비산 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무장경비를 서고 있는 십여 동이 넘는 건물들이 나타납니다. 여기가 바로 ‘만수무강연구소’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기초과학연구원'입니다.

그곳이 기초과학원인데 기본 인력은 연구사, 연구조수, 실험공 등으로 분류돼있습니다. 대략 2천여 명 정도의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는데 김정은의 건강장수를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 사업에 몰두해야 합니다.

근무자들은 우선 출신성분이 좋아야 하고 우수한 실력을 평가받아야 합니다. 보통 김일성종합대학 생명과학대학과 의학과학대학(평양의학대학), 평양경공업대학, 평양외국어대학 등의 대학들에서 연구인원들을 선발했습니다.

선발된 연구인원들은 생리학과 미생물학, 식품공학, 유전자공학, 어학을 전공하고 박사, 준박사(석사)의 학위를 소지해야 했습니다. 연구조수들 역시 관련분야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2년 이상의 실무경력을 쌓아야 했습니다.

기초과학원은 크게 8개의 연구팀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식료품연구팀은 제1연구실이라고 불리는데 맛이 좋고 영양가가 높은 식료품과 술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음료수를 개발하는 ‘연구조’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 중 ‘술 연구조’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애주가였고 김정은도 술을 좋아하는 탓에 제1연구실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조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제1연구실에는 장수효과가 있으면서도 마시기 좋은 술을 만드는 ‘술 연구조’ 외에도 ‘곡물 연구조’, 식품의 향을 내기 위한 ‘향료 연구조’가 따로 있습니다.

천연식물연구팀인 제2연구실에서는 무공해 천연식물을 식 자재로 사용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국내 희귀 약초들과 외국의 약초들을 연구하고 있는 ‘효소 연구조’와 ‘기름 연구조’, ‘약재 연구조’가 있습니다.

축산제품을 연구하는 제3연구실은 영양가가 높고 콜레스테롤 함량이 적으며 맛 좋은 고기연구가 과제입니다. 이 연구실 안에는 ‘소 연구조’와 ‘돼지 연구조’, ‘가금류 연구조’가 있으며 황해북도 황주에 연구용 목장을 두고 있습니다.

남새제품을 연구하는 제4연구실은 김정은이 먹는 남새와 과실들의 맛과 향을 최고로 살리면서도 비료나 살충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무해재배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황해남도 과일군에 전용 온실이 있으며 남방과일도 재배하고 있습니다.

수산제품을 연구하는 제5연구실은 ‘민물고기 연구조’와 ‘바다물고기 연구조’, ‘해조류 연구조’로 나뉘어져 있으며 물고기의 비린내를 제거하고 맛을 개선하며 건강에 좋은 영양성분을 추출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의 담배사랑도 여전합니다. 그래서 폐암과 고혈압 등 성인병의 예방을 위해 담배연구팀인 제6연구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국내산 담배연구조’와 ‘외국산 담배연구조’가 있는데 니코틴과 타르가 적게 들어있는 담배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질병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제7연구실 안에는 ‘비만연구조’와 ‘동맥경화연구조’, ‘고혈압연구조’가 있습니다. 식자재의 원료와 생산된 특제품의 성분을 종합 분석하는 제8연구실의 분석지표만 수십 여종으로 다양합니다.

이렇게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면서도 ‘쪽잠에 줴기밥’으로 ‘고난의 강행군’을 이어 간다고 선전하는 김일성, 김정일 일가가 우리 인민들을 향해 내뱉은 거짓말은 과연 얼마나 많겠습니까?

‘만수무강연구소’까지 차려놓고 수천명의 연구원들이 만든 온갖 식료품들을 먹으며 호화사치를 다 즐기는 김정은은 지금 초고도 비만 상태입니다. 살아 온 나이는 어리지만 건강생물학적 나이는 벌써 노년에 접근하고 있다는 정보도 있습니다. 인민을 등진 자들에게 완전한 건강이라는 게 과연 있겠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입니다.

다음시간에는 만청산연구원과 청암산연구소의 실태와 구체적인 연구사례들에 대하여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