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선전선동

김주원∙ 탈북자
2019.04.24
eternal_tower_b 사진은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구의 거리에 있는 영생탑 모습. 이 탑에는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동포여러분, 지난 일주일전인 4월 15일, 김일성의 출생일을 맞으며 청취자여러분들도 다양한 경축축제로 바쁜 일상을 보냈으리라 생각합니다. 김일성을 신처럼 섬기도록 우상화선전에 열을 올리는 북한당국은 그의 생일을 태양절이라고 부르며 신격화, 신조화에 열을 올리고 있죠. 오늘 이 시간에도 지난 시간에 이어 김씨 일가의 우상화를 위한 북한당국의 선전선동의 반동성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북한의 3대세습은 육체적인 독재라고 할 수 있는 고문, 처형 등 공포정치와 정신적인 독재라고 할 수 있는 선전선동, 이 두 가지 독재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 독재인 공포정치는 국가보위부와 보위사령부, 보안성을 비롯한 사법기관을 통하여 감행되는 미행과 감시, 고문과 공개총살 등이라면 정신적인 독재는 사상학습과 혁명전통교양, 사적지참관, 사상투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정신적 독재에서 선전선동은 그 방식이 동상이나 태양상, 영생탑, 모자이크주제화, 사적지건설, 노작학습, 덕성실기학습, 사상투쟁, 강연회, 해설담화 등 너무도 다양합니다. 이러한 선전선동의 기저에는 ‘백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속담대로 부단한 사상교양의 반복이라는 어마어마한 계략이 숨겨져 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잘 아는 사실이지만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소위 ‘무산혁명’이라고 하는 공산주의 혁명으로 사회주의국가를 세웠던 구소련은 70여년 만에 붕괴되어 자유민주주주의 국가 다시 말해 자본주의로 복귀하였습니다. 소련의 공산체제 붕괴에 이어 동유럽의 공산국가들이었던 동부독일, 웽그리아, 벌가리아, 뽈스까, 유고슬라비아, 로므니아, 체스코슬로벤스꼬 등 모든 유럽공산권국가들도 사회주의체제를 포기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하였습니다. 이 국가들을 우상하면서 공산정치를 해오던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서도 결국 사회주의의 모순을 깨닫고 공산독재를 허물고 자유시장경제를 실시하여 빈곤에서 번영을 이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독 북한정권만 3대째 내려오는 김씨 일가의 권력세습과 폐쇄정책에 의해 경제난으로 인민생활이 나이지지 않고 있습니다. 김정은시대에 들어와서 강행된 핵개발과 미사일실험으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더 한층 강화되면서 핵무기가 완성되면 경공업발전에 힘을 넣어 인민생활이 높아질 거라던 기대는 허물어졌습니다. 공산독재의 종주국이었던 소련과 중국마저 경제발전을 위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번영을 이룩하고 있지만 북한정권만 여전히 과거에 집착하면서 핵과 미사일개발에 국가예산을 탕진하여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주민들의 반발이 두려운 북한정권은 선전선동을 국가통치전략으로 삼고 이를 통해 대외적인 고립과 지속적인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3대세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북한의 선전선동의 반동성은 북한주민들에게 어린시절부터 허위와 거짓을 심어주고 복종과 충성을 강요하는 것으로 하여 전 세계에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말하는 해면고무를 한국에서는 스펀지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스펀지가 이미 물을 흠뻑 먹은 상태이면 더 이상 물을 빨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땅바닥에 흘린 물을 빨자면 해면고무의 물을 꽉 쥐어짜고 나서 흡입을 시킵니다. 북한정권은 꽉 짠 해면고무처럼 의식사고가 시작되지 않은 유치원 낮은반 시기부터 ‘따라배우기학습’이라는 이름으로 김씨 일가의 어린시절에 대한 공부를 강제로 시키면서 모든 북한주민들을 세뇌시키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머릿속에 선전선동으로 김씨 우상화 내용물을 꽉 채워넣어 다른 세상을 볼 수 없는 눈뜬 소경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유치원들에는 가장 큰 방이 ‘교양실’입니다. 교양실 벽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어린시절을 따라 배우기’ 명목으로 붙여 놓은 ‘도록판’이 걸려져 있고 유치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김씨 일가를 전설적인 인간으로 교육을 받습니다. 유치원에서 배우는 첫 우리글 문장도 김씨 일가의 고마움을 표현하는 문구인 ‘원수님, 고맙습니다’이고 처음 배우는 노래도 우상화 선전전략에 따라 창작된 김씨 찬양노래입니다.

지금도 어릴 적 기억이 나는데 유치원에 다니던 어느 설날에 어머님이 저에게 웃방의 정면 벽에 걸려 있는 김일성의 초상화에 인사를 하라고 하면서 ‘경애하는 아버지 김일성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당시 제가 어머니에게 “우리 아버지가 있는데 왜 원수님도 아버지라고 해야 하냐?”고 물었는데, 어머님은 “그런 건 물어보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어른이 되어서야 왜 어머님이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당시에 어머님이 원수님은 가짜 아버지라고 말했다면, 그리고 그 얘기를 제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말했다면 부모님들은 정치범으로 처형되고 우리 가족은 정치범관리소에 끌려갈 있는 무시무시한 질문을 내가 했던 것입니다. 유치원기간에는 교양실에서 도록판을 공부하면서 김씨 일가의 ‘위대성’에 세뇌되고 소학교에 입학하여서는 김씨 일가의 ‘혁명력사’과목을 수업 받으면서 또 세뇌됩니다. 대한민국이나 전 세계의 그 어느 나라나 이렇게 국가지도자의 생애에 대해 수업과목으로 지정한 나라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북한에서는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에 가서도 수업과목에 김씨 일가의 혁명역사와 노작과목이 무조건 수강받아야 할 과목으로 지정되어 있어 많은 시간을 이런 허황한 세뇌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죠.

이런 세뇌교육은 북한주민이라면 일생동안 받아야 하는 사상교육, 선전선동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선전선동은 중앙당 선전선동부가 총괄하고 있으며 시군당의 선전선동부서들이 맡아서 집행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이 1960년대에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중앙당 선전선동부 지도원으로 배치되어 예술선동으로 북한주민들에게 김일성의 위대성을 각인시켰던 사실은 그로 인해 만들어진 혁명가극들과 혁명영화들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때부터 김정일은 김일성을 통하여 김씨 일가의 위대성을 강조하기 위해 영화에도 김일성역을 하는 1호배우를 내세우기도 했고 혁명가극에서 김정숙역을 하는 배우도 등장시켰습니다. 김정일이 자신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다지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선전선동의 역할을 극대화하였는데 그때부터 중앙당 조직부 못지않게 중앙당 선전선동부의 파워가 커졌습니다. 북한정권이 1990년대 지구상에 냉전이 허물어지고 공산국가들이 제도적이며 이념적인 모순으로 붕괴될 때에도 살아남았던 이유는 이런 강압적인 세뇌교육, 선전선동의 역할이 큰 몫을 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탈북민들은 대한민국에서 취업하여 놀라는 것 중의 하나가 아침 조회가 없는 직장생활입니다. 북한에서는 학교수업 전에는 ‘독보시간’, 직장생활 근무시작 전에는 ‘조회시간’을 통해 30분간 신문독보와 사상학습을 진행하지만 한국에서는 근무전 사상침투는 어디서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북한체제는 국가지도자의 말씀이 헌법보다 더 권한을 가진 신정체제이면서 권력세습이 대를 이어 계속되는 현대판 왕조국가입니다. 김일성시대에는 일제강점기에 반일을 했다고 주장하는 빨치산파와 소련파, 중국공산당파인 연안파, 국내반일투사들로 이루어진 갑산파 등 여러 파들의 경쟁적인 권력쟁탈전 시대였고 김정일의 시대는 군부를 장악한 김정일이 모든 국가업무를 국방위원회가 장악지도한 군주제도를 방불케한 선군시대였습니다. 선전선동의 주선으로 강조된 선군사상과 사상교양은 김정은시대로 이어져 북한주민들을 정신적인 불구자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시간부터는 북한의 선전선동 방식인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 동상, 태양상, 사상학습, 예술선동 등 다양한 북한 우상화선전방식과 그 반동성에 대해 차례차례 얘기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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