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찾아 삼만리, 쿠켄 치킨대표 마인희 씨(1)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8-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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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식당에서 판매되는 한국 스타일 치킨 요리의 모습.
미국의 한 식당에서 판매되는 한국 스타일 치킨 요리의 모습.
ASSOCIATED PRESS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김인선: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지난 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었는데요. 사실 세계 최초로 남한에서 시작된 기념일이에요. 가정의 달인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으로 부부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자는 것이 가장 큰 취지인데요. 왠지 오늘의 주인공이 부부의 날과 참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순희: 맞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남편과 함께 튀긴 닭을 파는 가게, 그러니까 치킨 집을 운영하고 있는 마인희 씨 인데요. 인희 씨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정말 부부관계의 소중함을 알 수 있을 거예요. 한 마디로 ‘사랑 찾아 삼만리’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까요? 함경남도 출신의 인희 씨는 강원도 남자와 결혼하면서 탈북하기 전인 2004년까지는 강원도에 살았습니다. 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생활이 어려워지기는 어디나 마찬가지였지만 강원도는 국경과 멀다 보니 생활이 더 어려웠다고 해요. 그래서 여성들이 시장에서 장사를 해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집이 많았는데 인희 씨 가정 역시 마찬가지였답니다. 그런데 남편은 집안일을 도와주기는커녕 매일이다시피 술을 마셨다는데요. 그것도 모자라서 술만 마시면 술주정이 심했다고 해요. 혹시라도 술이 떨어지면 어렵게 벌어들인 쌀이라도 퍼서 술을 바꾸어 마셔야 했다고 하니 인희 씨의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친정집에서는 인희 씨가 그렇게 힘들게 사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요. 그러다 중국에 가서 살아보았던 언니가 인희 씨네 집에 와보고 너무 힘들게 사는 동생이 안쓰러워서 돈도 벌고 바람도 쐬고 오자며 함께 중국으로 갔다 오자고 하더랍니다. 너무나도 생활이 힘들었던 인희 씨는 언니를 따라서 중국으로 가서 돈을 벌어 오기로 하고 두만강을 건너게 됐는데요. 무사히 중국에 갔지만 짧은 기간에 돈을 벌어 돌아갈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단속을 피하며 식당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매일매일 품삯을 주는 게 아니었고 무사히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아는 사람이 없었더라면 북송의 위험이 컸을 겁니다. 하지만 다행히 중국에 지인들이 있었고 단속에 걸려 위험에 처했을 때 숨어 지낼 수 있는 곳을 알선해 주었는데 그곳이 바로 조선족 교회였습니다. 조선족 교회에서 집사로 일하던 한 청년의 도움으로 인희 씨는 중국 공안의 단속을 피할 수 있었는데요. 그는 늘 진심으로 인희 씨를 보호해주고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보살펴주더랍니다. 늘 식구들을 챙기고 보살피는 데에만 익숙했지, 단 한 번도 보호를 받거나 보살핌을 받아 본 적이 없던 인희 씨에게는 집사 청년의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도 충격적인 모습이었다고 해요. 중국에서 만났던 그 청년은 현재 마인희 씨의 남편이 됐습니다. 물론 인희 씨가 처음에는 집사 청년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데요. 하지만 돈을 모아보겠다는 생각에 중국에서 지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점차 북한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어졌던 것 같아요. 이때 인희 씨는 난생 처음으로 ‘여자로서 행복한 생활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 행복한 생활을 해보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김인선: 그런데 그런 행복한 시간도 오래 가지 못했다면서요?

마순희: 그러게나 말입니다. 인희 씨의 행복을 시기했는지 누군가 고자질을 하는 바람에 북한에 잡혀가게 된 거죠. 난생 처음으로 행복을 느끼면서 3개월 정도 살아가고 있을 때 중국공안에 체포돼서 손쓸 사이도 없이 북송되게 되었던 겁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북한에서 인희 씨가 사회 노동도 열심히 참가하면서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당시 생활고 때문에 어쩔 수없이 중국으로 갔다는 것이 밝혀져 선처를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희 씨는 집결소도 거치지 않고 풀려나서 강원도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집안 꼴은 말이 아니었고 두 딸이 불쌍해서 인희 씨는 ‘내가 다시 예전처럼 살아야 하나’ 싶었다는데요. 북한의 남편마저 북송된 그녀에게 집안 망신을 시켰다고 당장 나가라고 소리소리 질렀답니다. 변함없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집에 온지 3일 만에 다시 중국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다시 찾아 온 인희 씨를 본 중국의 남편은 너무나 꿈같아서 할 말을 잇지 못했다는데요. 그러나 북송의 위험을 실감한 남편은 자신이 행복하자고 인희 씨를 자신의 옆에 둘 정도로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인희 씨의 안전이 최우선이었기에 집 보증서를 담보로 돈을 대출해서 지체하지 않고 인희 씨를 한국으로 보내주었답니다. 그렇게 인희 씨는 2006년 대한민국 땅을 밟게 됐습니다.

김인선: 중국의 남편 덕분에 인희 씨가 한국으로 올 수 있었군요. 아마도 그 모든 것은 사랑의 힘이겠죠?

마순희: 맞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우리 탈북 여성들 중에는 한국행만 도움을 받고 중국 남편을 외면하는 경우도 간혹 있거든요. 반대로 탈북 여성들이 중국에 있을 때에는 성 노리개, 혹은 일손으로 여겨서 북송시키겠다는 압박을 해가면서 곁에 두려고 하는 남자들도 많습니다. 같이 살면서도 호구를 요구하거나 돈이 들어가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같이 살아만 주면 된다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 그런 남성들도 많아요. 그런 사례들에 비추어볼 때 집문서까지 저당 잡히면서 인희 씨를 한국으로 보내준 남편은 참 대단한 거죠. 그 마음을 잘 알기에 한국에 도착한 인희 씨 역시 국제결혼 수속으로 남편을 한국으로 데려올 수가 있었다는데요. 제 입장에서는 두 사람 모두 대단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김인선: 제가 봐도 두 분 모두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 두 사람이 다시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한국에서 정착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는데요?

마순희: 그런데 두 사람의 사랑의 힘이 있잖아요. 두 사람은 함께여서 한국에 정착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처음 인희 씨 혼자 한국에 왔을 때에는 일용직으로 핸드폰 조립회사에서 일했는데 야근까지 해야 160만원(1천4백달러) 정도 벌 수 있었답니다. 남편도 데려오고 또 북한에 있는 딸도 데려오기 위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했던 인희 씨는 일은 좀 힘들어도 급여가 많은 회사로 일자리를 옮겼습니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였는데 일은 힘들어도 급여가 많았다고 해요. 그래서 인희 씨는 열심히 일하며 돈을 모았고 중국에 있던 남편을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게 됐는데요. 시간이 흐르면서 인희 씨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허리통증이 극심한 허리디스크가 발병했는데요. 인희 씨의 경우 상태가 심해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보통 허리수술을 받으면 재활도 잘해야 하고 무리하면 안 되는데 살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결국 허리 통증이 재발해서 6개월 후에 개복하지 않고 하는 시술을 받았는데요. 그런데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아서 결국은 큰 병원에서 다시 수술을 받고서야 겨우 회복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김인선: 아무래도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 너무 몸을 혹사시켰던 것 같은데요. 수술비도 그렇고, 당장 일을 못하면 또 그만큼 경제적으로도 더 어려워지지 않았을까 걱정이네요.

마순희: 맞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비켜갈 수 없는데요. 다행히 우리 탈북민들이 처음 하나원을 나오면 의료 혜택을 받기 때문에 수술비용 같은 것은 크게 걱정을 안 해도 된답니다. 하지만 그동안 일을 못 하니 생활에서는 어려움이 많은 것만은 사실이죠. 특히 인희 씨의 경우에는 곤란한 상황이 또 하나 있었는데요. 중국 남편과 인희 씨 사이에 태어난 4개월 된 아들 때문입니다. 그래도 언니처럼 믿고 따르던 탈북 여성이 아들을 봐 주어서 그나마 마음 놓고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현재 인희 씨는 남편과 함께 인천 연수동에서 치킨 가게를 운영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김인선: 마인희 씨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의 힘이 정말 대단하구나 라는 걸 느끼게 되는데요. 어렵게 살다 만난 두 사람이 서로 인연이라 여기고 한국에 정착해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아가는 마인희 씨 부부의 못다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듣기로 하겠습니다. 마순희 선생님! 다음 시간에도 마인희 씨 사연으로 만나 뵐게요.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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