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배우는 자세, 바리스타 이경희 씨(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8-08-23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지난 4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2018 서울커피엑스포'와 함께 열린 월드슈퍼 바리스타 챔피언십(WSBC)에서 참가자들이 경연을 펼치고 있는 모습.
지난 4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2018 서울커피엑스포'와 함께 열린 월드슈퍼 바리스타 챔피언십(WSBC)에서 참가자들이 경연을 펼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김인선: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커피를 만드는 사람, 탈북민 이경희 씨는 올해 나이 54살로 5년차 바리스타입니다. 탈북민을 위한 자활자립센터 ‘더치숲’ 이라는 커피 전문점에서 실력을 쌓아가고 있는데요. ‘더치숲’ 의 실내 장식 하나하나마다 자신의 손을 안 거친 것이 없다는 이경희 씨입니다. 마치 자신의 가게인 것처럼 애정을 쏟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경희 씨가 이렇게까지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마순희: 네. 착한 정착을 하고 싶어서라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착한 사례라고 하는 것이 한국에 잘 정착한 사람들의 이야기잖아요? 잘 정착했다는 것의 기준에 정답이 없다고들 이야기하는데 경희 씨는 한 회사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는 사람은 잘 정착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년 동안을 한 곳에서 근무하려면 모든 것을 참고 견딜 줄 아는 인내심이 필요하고 또 그러는 사이에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고 나름대로 그 분야에서는 전문가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리스타가 된 지 이제 5년 차인 경희 씨는 자신이 생각하는 착한 정착을 하기 위해선 앞으로 최소 5년은 더 열심히 배우고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사실 경희 씨는 바리스타가 되기 전 식당에서도 일했는데요. 한식과 중식 요리사 자격증을 갖추고 일을 했습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을 즐겼던 경희 씨는 피부미용을 배우면서 자격증도 따고 피부 관리실에서도 일을 했는데요. 이때도 10년가량 성실하게 일했으니 경희 씨가 생각하는 착한 정착은 이미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인선: 맞아요. 그런데 피부관리사로 꽤 오랫동안 일을 했다면 거의 전문가 수준일 텐데요. 숙련된 그 일을 그만 둔 이유가 뭐죠?

마순희: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는데요. 우선 경희 씨는 자신의 가게를 갖고 싶은 꿈이 항상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먼 미래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손님들의 피부 미용을 관리하는 피부 관리실을 운영하려면 체력이 받쳐줘야 하는데 경희 씨는 북송으로 인한 구류소 생활로 그 후유증이 남아있어서 지금도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미 40대 후반이 된 경희 씨는 스스로 힘든 일을 더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피부관리사로 일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잠시 쉬다가 탈북민들의 자립지원 사업으로 시작한 곳에 가게 됐는데 그곳에서 일해 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에 선뜻 나서게 됐습니다.

그렇게 바리스타로 두 번째 정착을 시작한 경희 씨의 각오는 남달랐습니다. 바리스타라는 새 업무가 낯설고 힘들었지만 자신의 가게를 가질 수 있는 꿈과 연결되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커피전문점인 ‘더치 숲’은 이경희 씨의 두 번째 집이 된 거죠. 매일 남보다 먼저 나와서 깨끗이 가게 청소를 하고 미리 작업준비를 갖추는 것은 기본이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위해 어머니 마음으로 밑반찬도 만들어서 함께 먹기도 했습니다. 저녁 근무를 마치고도 다음날 아침 근무를 시작하는 직원을 도와서 가게 안팎을 말끔히 청소를 끝낸 후에야 퇴근하는 경희 씨를 직원들은 한 사람 같이 따르고 좋아해주었습니다.

김인선: 쭉 들어보면 경희 씨는 자신에게 맞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잘 선택하는 것 같은데요. 탈북민 중에 상당수는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해 봤지만 짧은 기간이었고 이 일, 저 일 한참 해 본 후에야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았다고 하던데 말이죠.

마순희: 경희 씨 역시 마찬가지였죠. 식당 일부터 시작해서 피부관리사도 해보고 바리스타가 됐으니까요. 하지만 한, 두 달 일해보고 쉽게 그만두거나 조금만 힘든 일이 생겨도 쉽게 다른 일을 찾는다면 자신에게 맞는 일을 어떻게 찾겠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경희 씨는 후배들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고 싶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원을 수료하면 1살이다.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모르는 것은 무조건 물어봐라. 자존심은 성공한 다음에 찾아도 늦지 않다. 무엇이든 낮은 자세로 임해라. 그러면 잘 정착할 수 있다’라고 말이죠.

탈북민들 중에서도 커피 바리스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또 특성화 고등학교나 종교단체, 그리고 민간단체에서도 무료로 바리스타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남북하나재단의 자유게시판에도 2018년 4기 바리스타교육 공지가 나와 있는데요. 한 기수에 교육받을 수 있는 교육생이 15명입니다. 그동안 3기 교육이 끝나고 9-10월 사이에 4기 교육생을 모집하는 공고였습니다. 아마 앞으로는 더 많은 탈북민 바리스타가 배출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저도 시간이 가능하면 한 번 신청해 볼까 생각 중입니다. 가끔 TV에도 보면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커피 바리스타로 즐겁게 일하고 계시는 모습들이 소개되기도 하는데 그런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요. 뭔가 저도 도전해보고 싶기도 하답니다.

김인선: 네. 선생님을 비롯해서 요즘 바리스타에 관심을 갖는 탈북민들이 많다고 했는데요. 남한 토박이들 중에서도 바리스타에 대한 관심이 참 높거든요. 그런데 경희 씨가 50대이다 보니까 이런 현실이 좀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마순희: 그렇죠. 100세 시대를 맞아 자신의 안정된 일자리인 커피숍을 내는 것이 당면한 목적인 경희 씨에겐 부담이 되죠. 하지만 경희 씨 특유의 노력하는 자세로 이겨낼 것 같더라고요. 현실적인 부분에서 이미 경희 씨는 은행에 차곡차곡 적금을 하면서 창업자금을 마련 중이었습니다. 경희 씨는 탈북민들의 창업자금 마련에 큰 도움이 되는 통장을 만들었다는데요. 남북하나재단에서 탈북민들이 창업할 때에 탈북민이 저축한 금액만큼을 똑같이 지원해주는 제도입니다.

김인선: 50만원을 적금하면 50만원을 더 보태 준다는 얘기죠?

마순희: 그렇죠. 경희 씨의 경우 매월 50만원, 450달러를 저축하고 있기 때문에 훗날 창업기반 마련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경희 씨는 자신의 가게를 차리기 위해서는 자금도 준비해야 하지만 커피 바리스타로 아직은 더 많이 배우고 가게 운영을 익히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면서 오늘도 주인다운 마음으로 열심히 근무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경희 씨는 지금도 모르는 것이 있을 경우 자신보다 훨씬 어린 사람에게라도 부끄러움 없이 물어보고 배운다고 하더라고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50이 넘은 나이지만 앞으로도 배우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이경희 씨입니다.

김인선: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고 싶다는 그 꿈이었죠?

마순희: 네. 물론 가게를 내고 싶다는 꿈도 있지만 또 다른 꿈이 하나 더 있다고 합니다. 중앙대학교 사범대학교 4학년 졸업반인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임용되면 자신이 열심히 모은 돈으로 멋진 차를 사주고 싶다는 꿈인데요. 그 꿈들을 이루기 위해 경희 씨는 무엇이든 열심히 하게 된다고 하더군요. 봉사에도 열심히 참여하는데요. 경희 씨는 강서구에서 자율방범대 회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자율방범대는 북한의 규찰대 같은 역할인데 모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지역의 안전과 범죄예방을 위해서 순찰을 도는 일들을 하는 겁니다. 누군가에게 나누며 살수록 자신의 아들이 더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하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부모의 마음이니까요.

특히 우리 탈북민들은 자신이 경험한 힘든 생활을 자식에게까지 이어지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고향을 등지고 탈북민이 된 거고 북쪽 혹은 중국에 남아있는 자식들을 엄청난 대가를 치르면서도 한국으로 데려오는 겁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거죠. 경희 씨도 아들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이라도 할 겁니다. 지금 경희 씨의 아들은 교원이 되기 위한 시험, 임용고시를 준비 중입니다. 북한에선 사범대학이나 교원대학을 졸업하면 무조건 선생님이 되지만 남한에선 임용고시라는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 선생님이 되더군요. 그래서 경희 씨는 아들이 시험에 합격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경희 씨의 선행이 아들의 임용고시 합격으로 이어지기를 저도 간절히 바래봅니다.

김인선: 세상은 꿈꾸는 대로 열린다고 하더라고요. 청취자 여러분의 꿈은 뭔가요? 그것이 작은 꿈이던 큰 꿈이던 꿈꾸는 대로 이루어 갈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경희 씨처럼 말이죠. 오늘은 언제나 배우는 자세, 바리스타 이경희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