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들의 홍반장, 강영진 씨(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8.12.06
hong_captain_b 서울 종로구는 돈의동 쪽방 이웃에게 필요한 일을 대행해주는 '마을집사 돈의동 홍반장' 사업을 하고 있다. 사진은 '마을집사 돈의동 홍반장'이 마을 조경을 위해 식물을 심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남한 영화 제목인데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동네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디선가 나타나 모두, 해결해주는 홍 반장 같은 분이 남한 탈북민 사회에도 있습니다. 올해 나이 74세. 한국에서 정착한지 이제 10년 된 강영진 씨인데요. 할아버지, 아빠, 삼촌, 형님, 동생, 선생님, 회장님... 이 모든 이름으로 불리는 강영진 씨. 수원시 팔달구의 우만 복지관 관할 지구에서는 모르는 분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홍반장, 강영진 씨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마순희: 네. 그런데 강영진 씨를 부르는 수식어 중에 빠진 게 또 있어요. 동네 보안관, 그리고 탈북민의 정착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사람, 정착도우미 선생님. 그것도 있답니다. 강영진 씨는 2013년부터는 탈북민들의 초기정착도우미로 활동하고 있거든요. 하나센터는 탈북민들의 지역 정착을 지원해주는 곳인데 주로 탈북민들이 사는 주택단지 안에 위치하고 있어요. 남한 전역에 25개가 있습니다. 영진 씨는 경기중부 하나센터에 소속된 정착도우미인데요. 사실 탈북민들이 처음 거주지를 배정받아 오면 그 지역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럴 때 함께 다니면서 하나하나 배워주고 알려주시는 분들이 바로 정착도우미입니다.

저도 대학졸업을 앞두고 반드시 해야 하는 120시간의 사회복지실습을 서울 동부하나센터에서 했습니다. 그때 정착도우미 업무를 직접 체험해 보기도 했거든요.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탈북자 정착 기관인 하나원에 가서 거주지에 전입하는 탈북민들을 지역까지 데려오는 업무부터 시작해서 모든 행정 업무를 대행해 주거든요. 전입 신고도 하고 인감을 등록하고 주민등록등본도 발급하고 임시신분증을 발급하고 또 나라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기초생활수급자 신고까지 다 해드립니다.

김인선: 정말 부모님, 가족같이 해주네요.

마순희: 네. 그리고 매 가정을 방문하여 불만사항이 없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가스 점검, 인터넷이나 집 전화 설치도 할 수 있도록 하고 휴대전화 구입도 도와드리고요. 함께 시장이나 대형 상점을 방문하여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 것도 도와드립니다. 그뿐 아니라 적십자사나 지역의 복지관, 편의시설, 은행, 병원, 대중교통 안내까지 생활의 모든 것을 함께 다니면서 배워준답니다.

김인선: 정말 하나부터 열 가지를 다 함께 해주는 역할을 해주는군요. 그런데 탈북자 정착 기관, 하나원에서도 탈북민들이 남한 생활에서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을 배우긴 하잖아요. 그게 단기간에 배울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실제 생활에 부딪치는 문제들이 꽤 많을 것 같아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초기 정착의 그 어려움을 정착도우미 분들이 도와주시는 겁니다. 그러기에 우리 탈북민들이 정착도우미들에게 많이 의지하게 되고 잊지 못하는데요. 그 역할을 강영진 씨가 하는 거죠. 때로는 아버지로, 때로는 형님으로, 또 삼촌으로 의지하던 영진 씨기에 탈북민 중엔 영진 씨의 모습을 보고 닮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외국에 이민을 갔을 때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이 주유소를 하는 사람이면 그 사람도 주유소를 할 확률이 높고 마트를 하는 사람이면 마트를 하고, 세탁소하는 사람이 마중 나오면 세탁소를 할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정말 그 말처럼 먼저 한국에 정착한 선배들의 삶이 후배들의 정착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강영진 씨가 봉사하고 남을 도와주는 일을 일상처럼 해 나가며 열심히 살아가잖아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정착하는 수원 지역의 많은 탈북민들이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쉬는 날이면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봉사활동은 아무런 대가없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 일로 우리 탈북자들에겐 익숙한 단어는 아닌데요. 영진 씨는 물론이고 영진 씨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봉사가 생활화 됐습니다.

김인선: 강영진 씨는 이렇게 바쁘게 활동하시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봉사단체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고요?

마순희: 네. 강영진 씨는 2015년부터 탈북민들로 조직된 ‘하나로 봉사단’이라는 단체를 직접 만들어서 지역사회의 환경개선과 치안유지를 위한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탈북민들에 대한 인식도 좋아졌다고 합니다. 어르신들은 강영진 씨를 보고 우리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보배 회장님이라고까지 부르고 있다니까 얼마나 인식이 좋은지 알 것 같습니다. 어르신들과 관계가 좋아지면서 통일 강사 역할도 하는데요. 비록 전문 강사는 아니지만 지역의 어르신들에게 편제 없는 강사로서 북한에 대해 전하고 있었습니다. 강영진 씨가 이제는 사회통합에도 기여하는 것 같았습니다.

김인선: 그렇네요. 자기 생활도 있으신데 이렇게 많은 일들을, 그것도 남을 돕는 일을 꾸준히 하는 건 진심이 없으면 힘들 것 같아요.

마순희: 그렇죠. 사실 저는 우리 아파트 단지에 몇 세대가 살고 그 중에 탈북민이 얼마나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 분은 10여 년을 봉사활동을 하고 또 정착도우미로 활동하다 보니 그 모든 것을 손금 보듯이 다 알고 계시더군요. 강영진 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는 모두 2,420 세대가 살고 있대요. 그 중에 탈북민 세대가 280세대라는 겁니다. 누구네 집에 식구가 몇이고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고 있더라고요. 정말 깜짝 놀랐거든요. 매일 점심마다 150여 명 어르신들의 점심식사를 보장하시고는 도시락 배달까지 자진해서 하시다 보니 어르신들이 모두 친자식처럼 반겨 주신답니다. 회사에 출근하는 것도 아니시면서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을 정도로 봉사하지만 늘 얼굴에는 사람 좋은 미소를 잃지 않으시는 그 모습이 너무 존경스러웠습니다.

김인선: 정말 감사한 분이시네요. 그런데요. 이렇게 다른 사람의 일로 워낙 바쁘다 보니까 정작 본인의 생활을 제대로 못 챙기지는 않을까 염려돼요.

마순희: 그런데요, 그렇지 않더라고요. 자신을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오히려 외롭지 않고 삶의 보람을 느낀다고 하시던 걸요.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도와주고 또 도움 받을 것은 받고, 이런 게 오가는 ‘정’이랍니다. 무엇보다도 강영진 씨는 뭐든 열심히 하시는 분입니다. 제가 집에 가 보았더니 사각모를 쓰신 대학졸업사진도 있고 경찰청에서 받은 상장도 주런히 걸려 있었습니다. 처음 정착하면서 컴퓨터 학원을 먼저 다니면서 기초를 배운 후 한양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청소년생활지도사 자격증을 비롯해서 여러 자격증도 취득했고요.

강영진 씨는 아는 것이 힘이라고, 남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내가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마음이랍니다. 그래서 늘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데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 자신이 많이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그분에 비하면 저는 아직 멀었는데도 가끔은 나이 탓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을 때도 있었거든요. 앞으로의 바람을 물었을 때도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강영진 씨의 말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습니다. 영원한 청춘으로 탈북민 후배들에게 솔선 모범을 보이면서 성공적인 정착과 사회통합에 기여해 나가시는 강영진님을 널리 소개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김인선: 탈북민의 자랑거리이자 보배, 강영진 씨. 얼마든지 자랑해도 될 것 같아요. 배우는 자세로 늘 열정적인 삶을 사는 강영진 씨의 모습을 보고 일상에 지쳐 힘겹고 외로워 하던 탈북민들도 힘을 내야겠다는 용기를 낼 것 같습니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행복감에 웃고 사랑을 주는 사람은 만족감에 웃는다고 하더라고요. 강영진 씨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바가 크지 않나 싶습니다. 탈북민들의 홍반장, 강영진 씨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마순희 선생님과는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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