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망명은 김정은 정권 말기적 현상

워싱턴-전수일, 강철환 chuns@rfa.org
2016.08.22
jang_arrest_b 장성택이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체포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매주 화요일 북조선 내부의 소식과 정보를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사건, 사고, 동태, 동향에 관한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청취자 여러분에게 전달하고 설명할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와 이 시간 함께 합니다. 북한전략센터는 북한 내부의 민주화 확산사업과 한반도 통일전략을 연구하는 탈북자 단체입니다.

전수일: 지난 1년간 북한 김씨 왕조의 측근들인 조선노동당 39호실 간부들과 최근에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인 태영호 가족의 망명은 북한 김정은 체제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라는 얘기가 전문가들과 주요 언론 사설에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철환: 한반도 분단 70년간 북한 주요 직책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떠나 대한민국에 정착해왔습니다. 이웅평씨의 미그기 탈취사건이나 황장엽 노동당 비서의 망명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김일성대학교 교수였던 조명철, 전 북한 총리 강산성의 사위였던 강명도씨와 같은 상류계층의 자제들이 망명해온 사례도 있지만 지금처럼 김씨 일가의 최측근층에서 잇따라 망명하는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 태영호와 가족의 망명은 실제로 김정은 북한체제의 균열이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전: 김정은의 비밀자금을 관리하는 39호실 간부들이나 이번 태 공사의 경우 북한에서는 상위 0.1%의 최측근 권력층에 속한다던 데요, 권력이나 돈에서 아쉬운 것이 없는 사람들이 왜 망명길을 택하는 지 궁금합니다. 단순히 개인의 자금난이나 국가안전보위부의 과도한 개입 등에 따른 신상문제만으로는 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강: 그렇습니다. 사실 지난해 망명한 39호실 최고위 간부도 신분상에 큰 문제가 있어서 온 케이스는 아닙니다. 신변상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그가 북한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기획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탈출에 마음을 먹게 된 것은 김정은의 인간성과 그로 인한 폐해가 나라를 망하게 하고 자신과 같은 개인들을 파멸로 내몰 수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전: 김정은 개인과 통치방식에 불만이 있다는 얘긴데요, 하지만 망명을 결심하려면 좀 더 어떤 구체적인 충격적인 동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 장성택 처형 사건이 아주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장성택의 부인 김경희가 김정은의 패악 무도한 패륜행각에 제동을 걸고 그의 처형을 막으려고 했지만 김정은은 고모의 간절한 청원을 무시하고 고모부 장성택을 죽였습니다. 노동당 조직부도 내부 의견을 거쳐 김경희의 의견이 합당함을 김정은에게 보고했는데 그것이 무시되고 장성택은 물론 그 수하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한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노동당 핵심간부들은 장성택과 그 수하들이 고사총에 맞아 시체가 산산조각 나는 걸 지켜보면서 김정은이라는 인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은 인민들은 잔인하게 많이 죽였지만 최측근 간부들을 그렇게 비인간적으로 무더기로 죽인 전례는 없다고 합니다. 서관히 노동당 농업담당비서가 식량난 책임을 지고 주민들 앞에서 공개처형 당할 때에도 AK소총에 의한 표준 처형방식으로 처형됐습니다.
하지만 장성택의 부하인 리영호, 장수길은 장성택이 보는 앞에서 시체가 갈기갈기 찢어지고 장성택의 얼굴에 그들의 피와 살이 튀는 것을 본 간부들이 김정은의 살인마 기질에 몸서리 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에 대한 충성심도 사라지게 됐다는 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전: 그러니까 김정은 개인 비자금을 관리하는 노동당 39호실 고위 간부들의 망명도 본인들이 처한 위험보다는 근본적으로 김정은에 대한 마음이 떠났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강: 그렇습니다. 보통 해외에 파견되는 외교관들은 3년에 한 번씩 교체됩니다. 북한으로 송환돼 사상교육을 다시 받고 해외에 나갈 때에는 자녀 가운데 한 두 사람은 인질로 북한에 놔두게 됩니다. 하지만 39호실 최측근들이나 태영호 공사와 같은 핵심들은 김씨 지도자의 신임에 따라 가족을 모두 보내줍니다. 그들이 도망가면 북한에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냐는 최고신임의 표시인 것입니다. 그래서 최근 망명한 측근들은 대부분 직계가족들과 함께 망명하는 사례가 많은 것입니다.

전: 김정은의 잔인한 성격과 행태가 결국 자기를 떠 받들고 있는 측근들의 등을 돌리게 한 셈이군요. 아무리 충성스런 부하라도 언제 그렇게 잔혹하게 처형당할지 모르는데 어찌 마음이 편할 리 있겠습니까?

강: 그렇습니다. 북한 같은 모든 권력이 한 통치자에게 집중된 국가에서는 그 만큼 지도자의 책임이 막중합니다. 일거수 일투족 그 어떤 결정도 전체 국민을 생각하면서 신중해야 합니다.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이나 할아버지 김일성 시대에는 통치자의 독단적인 결정보다 측근의 의견을 상당수 반영했고 그에 따라 처벌될 때에도 그만한 명분이 내세워 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에는 측근의 조언보다 김정은의 즉흥적 감정이나 결정에 의해 이뤄진 것이 많기 때문에 그에 대한 후과는 측근이 아니라 김정은 본인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김정은은 자신의 잘못된 결정으로 빚어지는 모든 후과에 대해서도 측근과 부하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전: 김정은 개인의 인간성 문제는 그렇다고 치고, 강 대표 보시기에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정책적으로 가장 큰 실책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강: 오늘의 유엔 대북제재를 불러온 올해 초 4차 핵실험과 잇따른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입니다. 사실 북한은 3차 핵실험까지는 이미 정해진 순서였지만 4차부터는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장성택은 3차 핵실험 자체도 반대했습니다. 대내외적 환경이 김정일 시대와는 너무나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정부가 이미 보수성향의 정부로 바뀌어 있었고 중국도 북한의 핵실험을 극렬 반대하는 상황에서 무모한 핵실험은 자칫 북한정권을 위태롭게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성택이 처형당한 이후에는 그 누구도 김정은에게 4차 핵실험을 해선 안 된다는 제언을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최룡해 조차도 그에게 함부로 조언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미 대다수 핵심 간부들은 4차핵실험의 파국적 결과를 예견했지만 그 누구도 김정은에게 그 사실을 바로 말하지 못했습니다. 괜히 바른 소리해서 목숨을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전: 핵실험 이후에도 김정은은 어려워진 나라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모한 아파트 건설로 간부들에게 외화벌이를 강요하지 않았습니까? 외화 상납 할당을 채우지 못하는 해외 파견 요원들의 심적 부담과 나중에 처벌당할 공포가 결국 집단 탈북의 도미노 현상, 즉 연쇄파급을 촉발했다는 전문가 분석이 많습니다.

강: 그렇습니다. 나라사정이 궁핍해졌는데도 김정은의 사치성 건물 건축 사업은 더욱 확대됐습니다. 나라의 돈이 고갈되어 예산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김정은은 평양 ‘여명거리’ 건설은 각 성과 기관별로 자체 조달해서 지으라는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미래과학자 거리’도 그런 식의 자체조달로 건설돼 간부들 상당수가 빚더미에 앉아있는 상태인데 또다시 사치성 건축 사업이 시작되자 해외 공관, 기업들은 엄청난 부담과 긴장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해외에 나가있는 간부들은 하루가 멀다 하게 본국에서 날아오는 외화청구서에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 됐고 결국은 그런 압박을 견디지 못한 많은 간부들이 탈북을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김정은 한 사람의 잘못된 정책과 판단으로 이런 고위층의 탈북 연쇄파급이 벌어지고 있지만 정작 김정은 본인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 보위부의 과도한 검열과 처벌도 간부들의 이탈을 더욱 부추기고 있습니다. 태영호 주영국 북조선 공사와 그 가족의 망명은 김정은 정권의 말기적 현상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내부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여러분께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지금까지 탈북자단체 '북한전략센터'의 강철환 대표와 함께 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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