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제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나서야 할 때

어제 9·9절 이른바 ‘인민공화국 창건 70주년 기념일’이 평양에서 개최된 행사를 보았습니다.

지난 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에서 열린 정권수립 70주년(9·9절) 열병식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 오른쪽에는 리잔수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오른쪽 첫번째)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오른쪽 두번째)의 모습.

당 간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 9·9절 이른바 ‘인민공화국 창건 70주년 기념일’이 평양에서 개최된 행사를 보았습니다. 외신기자들이 전하는 보도였기에 자세한 현장 중계는 보지 못했지만 주석단에 등장한 김정은, 김영남을 비롯한 여러분 당의 수뇌부와 내각 중요인사 그리고 외국 사절의 모습, 몇 일간의 연습으로 지친 군중과 인민군의 시위 광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본 방송자는 북한정권의 수립과 지금까지 걸어온 70년간의 역사를 회상해 보았습니다.

당 간부 여러분! 역사는 속일 수 없습니다. 북한 정권이 세워지던 당시를 직접 눈으로 본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 증언합니다. 거짓말로 지난날을 덮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당의 역사, 정권사를 보면 여러분도 날조된 부분을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과연 북한정권이 김일성이라는 ‘영원한 수령’이 영도한, 치열한 항일무장투쟁에서 승리한 결과 세워진 자주의 나라인가? 과연 영원히 존엄 높은 김일성이 세운 주체의 조국인가? 진실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북한정권은 김일성 항일투쟁의 승리로 김일성이 조직했다는 조선인민혁명군이 일본제국주의자들을 물리치고 조선을 해방시켜 세운 나라가 아닙니다. 당 간부 여러분은 대강 알고 있을 줄 압니다만 김일성, 김책, 최용건, 최현, 김일 등 북한정권을 창건했다는 이른바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이 조선 땅을 밟은 날은 소련군이 일본에 선전포고 하고 공격을 시작했던 1945 8 9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본군이 항복하여 해방된 8 15일도 아니었습니다.

김일성을 비롯한 여러분 당 최고 원로들이 북한 땅을 밟은 날은 1945 9 19일 바로 추석 전날이었습니다. 게다가 조선 땅을 밟은 곳도 평양이 아니라 원산이었습니다. 해방된 후 1개월여 만에 소련군이 마련해준 푸가초프라는 어선을 개조한 선박을 타고 소련 극동군사령부, 8·8특수여단 소속대원으로 50여 명이 함께 들어왔습니다. 왜 이처럼 늦게 들어왔는가? 일본군과는 총 한 방 쏴 보지 못하고 소련군의 명령으로 하바로프스크에서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끝났지만 도로가 폐쇄되어 일찍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에게 진격 명령을 내렸다느니 무슨 지역을 공격 했다느니 새빨간 거짓말임을 여러분도 알고 있지요? 김정일이 백두산 귀틀집에서 출생했다고 하는 말도 새빨간 거짓말임을 알고 있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날조된 항일빨치산 투쟁사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을 수립했는가? 더 이상 물을 필요조차 없지요. 바로 소련공산당 수령, 스탈린이지요. 전 세계 공산주의자들의 수령이던 스탈린입니다.

1945 9월 런던에서 개최되었던 미·영·소 3개국 외상회의에서 소련의 외무상 모로토프가 “극동지방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에 대한 전후 보상으로 일본 영토인 북해도의 일부를 소련에게 할양해달라 그리고 일본 점령 후 군정에 미국과 함께 참여하도록 해달라”는 요구를 하자 미국과 영국 외상이 즉석에서 거부했고 그러자 9 20일 바로 김일성 일행이 소련 국적의 소련군 소좌 이동화의 인솔로 원산에 왔는데 상륙했던 바로 그 다음날 북한을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들도록 결정하고 소련 점령군 정치위원 스티코프에게 북한에 들어온 김일성 일당을 잘 교육시켜서 공산당을 창당하고 소련의 괴뢰 정부를 세우도록,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를 세우던 그 방식대로 크레믈린이 작성한 계획대로 추진하라고 지시해서 여러분이 당 역사학습에서 배운 그대로 10 10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조직하고 크레믈린의 지시대로 북조선5도인민정치위원회를 세웠지요.

당 간부 여러분! 본 방송자는 1945 10 14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 소련해방군 환영대회에 참가했던 사람입니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느닷없이 소련군 장군이 단상에서 여기에 김일성 장군이 참석했으니 소개한다고 할 때 나타난 젊은 사람, 바로 김성주 즉 김일성을 보고 “저 사람이 무슨 김일성 장군이야” 라며 관중들이 수군대던 그 모습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 간부 여러분! 더 이상 역사를 속여서는 안 됩니다. 물론 1946 2월 창설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인민위원회로 바뀌고 다시 오늘의 인민공화국으로 되던, 1945년에서 1948년까지 3년간 김일성이 무슨 일을 했는지 여러분도 알고 있지요? 민족주의자들을 숙청하고 김두봉, 최창익, 무정 등 중국 공산당계 인사 또 소련에서 파견한 허가이, 박창옥, 남로당의 박헌영, 이강국 그리고 국내에 남아있던 공산주의자 현준혁, 박정애 등과 연합하여 인민군을 창군하고 ‘국토완정’이란 구호 하에 무력남침 준비를 했습니다. 그 결과 1950 6월부터 1953 7월까지 천인공노할 동족상잔을 자행하여 300만의 무고한 인명이 희생되었고 천문학적인 재산을 소실 시켰습니다. 천인공노할 반민족, 전쟁범죄자 바로 그 자가 김일성입니다.

당 간부 여러분! 1953년 휴전 이후 지금까지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공화국 창건의 건국공신들은 모조리 숙청했습니다. 당 간부 여러분은 피어린 당내 권력투쟁으로 수만 명의 당 간부와 열성 당원, 무고한 인민대중이 반당 반혁명분자로 낙인 찍혀 숙청된 것을 알고 있죠? 오늘날의 3대 세습 체재로 김일성 왕조가 이어진 지난 73년간 과연 북한인민들에게 평안하고 안전하고 풍요한 경제생활이 보장되었습니까? 과연 지금 여러분이 이른 바 '김일성 민족‘으로 ’김정일 조선인‘으로 불리우며 무슨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왜 북한 동포 2,500만이 김일성 민족입니까? 그가 우리 민족의 조상이란 말입니까? 2500만 북한 인민이 김정일 인민입니까? 봉건 왕조 때의 신하입니까? 왜 ‘주체’라는 왕조 국가의 연호를 써야 합니까?

당 간부 여러분! 인민공화국 창건 70주년, 이란 말은 공포의 70, 노예 생활 70년이었습니다. 창살 없는 형무소, 이것이 오늘의 북한 땅입니다. 금년 들어와 이 알량한 9·9절 기념식을 “자랑찬 로력적 성과로 맞이하자”는 구호 하에 밤낮 가리지 않고 북한 청년들이 건설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경제적 혜택이 돌아왔습니까? 핵개발에 쏟아 부은 막대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수백만이 굶어 죽었고 영양실조로 사망했습니다. 이른 바 ‘고난의 행군’이 바로 이를 입증합니다.

당 간부 여러분! 이제는 사람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3대 세습을 목숨으로 옹위한다고 여러분에게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겠습니까? 핵무기를 가졌다고 여러분의 안전이 보장되겠습니까? 강성대국 군사대국 운운하면 할수록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력을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이제는 편안하게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자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어야 합니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사회로 바꾸어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인권, 자유, 민주주의 개혁으로 나갈 때임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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