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평양정권이 북-일 정상회담에서 얻고자 하는 것

워싱턴-홍알벗 honga@rfa.org
2024.04.04
[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평양정권이 북-일 정상회담에서 얻고자 하는 것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친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사진)이 "일본 측과의 그 어떤 접촉도, 교섭도 외면하고 거부할 것"이라며 향후 일본과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지난달 26일 밝혔다.
/연합

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지난달 29일 북한의 최선희 외무상은 “조·일(북·일) 대화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고 하면서 마치 비밀리에 진행되어 오던 북한과 일본의 대화가 결렬된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노골적으로 일본을 비난하면서 그동안 진행되어온 양측의 접촉이 깨진것처럼 욕설까지 동원하였습니다. 북한과 일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오늘은 “평양정권이 북-일 정상회담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런 제목으로 한국의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안찬일 박사와 자세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안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네 안녕하십니까!

 

MC : 최근 북한 정권은 비밀리에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 접촉을 벌려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 사실이 드러나면서, 북-일관계 개선이 주변국들에게 줄 영향력에 관심이 쏠렸는데요. 그런데 갑자기 북한 정권이 양측 접촉이 결렬된 것처럼 반응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안찬일: 네, 북한의 관영 통신인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30일 논평에서 “지난 세기 침략과 약탈의 길에 나섰던 ‘황군’의 망령들이 군국주의 독소에 쩌든 현대판 황군·자위대의 몸을 빌려 버젓이 환생하고 있는 것이 일본의 현실”이라고 싸잡아 비난했습니다. 오쓰카 우미오 전 일본 해상자위대 해장이 야스쿠니 신사의 궁사(우두머리 신관)로 취임하는 것을 비판한 말인데, 이와 같은 보도는 평양정권이 일본과의 대화 의사를 거부한 다음날 나왔습니다. 이에 하루 앞서 29일 최선희 외무상은 담화를 통해 “조·일(북·일) 대화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고 했습니다.

 

MC : 북한 관영매체의 보도를 들어보면 그동안 북한이 일본 정부와 관계 개선을 꾸준히 진행되어 온 걸로 보이는데 여기에는 일본 당국의 호응이 있었다는 말이겠죠?

 

안찬일: 네,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북·일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국내적으로 정치자금 스캔들 등으로 떨어진 지지율을 정상회담을 통해 회복하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풀이하는 전문가들로 있습니다만, 북한 정권도 화답하는 모양새를 보여왔습니다. 올초 일본 노토반도 대지진 이후 김정은 총비서는 이례적으로 기시다 총리에게 ‘각하’ 호칭을 사용하며 깎듯한 위로 전문을 보냈습니다. 일본을 ‘약한 고리’로 삼아 한·미·일 밀착관계에 균열을 내고 싶어 한다는 분석까지 나왔지만 어쨌든 북한 정권이 이처럼 일본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여온 것은 김정은 정권 등장 후 처음 일이었습니다.

 

MC : 네, 그런데 북한과 일본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 즉 일본인 납치 문제가 항상 장애물로 등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문제를 북한 주민들도 잘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대관절 언제, 어디서, 무엇 때문에 북한은 일본인들을 납치해 간 것인가요?

 

안찬일: 네, 일본인 남치문제는 그렇게 짧게 설명할 사안은 아닙니다만 분명하게 있었던 명백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지난 1977~1983년까지 행방불명된 11명의 일본인이 모두 북한과 연루됨으로써 북한-일본 간 외교현안이 되었던 사건입니다. 즉 구체적으로 지난 1977년 도쿄 시청 경비원이었던 구메 유타카(당시 52세)를 시작으로 1983년 유럽 유학 중이던 아리모토 게이코(당시 23세) 등이 사라진 일련의 사건입니다. 일본 정부는 이들 사건의 배후에 북한이 있는 것으로 확신하고, 북한에 대해 줄곧 이들의 생사확인 및 조속한 귀국조치를 촉구해 왔습니다. 일본 측은 북한이 대일(對日) 공작원들의 `일본인화 교육'을 위해 일본인들을 납치해 간 것으로 보았습니다. 특히 1987년 대한항공기 폭파범 김현희가 '이은혜'라고 불리던 일본인 여자선생이 있었다고 증언한 것을 계기로 북한을 의심하는 일본의 심증은 더욱 굳어졌던 것입니다.

 

MC :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께서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일본어 선생 이은혜에 대한 북한의 납치행위는 거다란 인권문제로 세상을 떠들썩 하게 했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그 진위를 좀 설명해 주시죠.

 

안찬일: 네, 일본 경찰당국은 `이은혜'라는 인물이 지난 1978년 행방불명됐던 다구치 야에코(당시 22세)인 것으로 파악하였습니다. 이에 북한은 납치 문제는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2002년 9월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납치사건은 특수기관원들의 일본어 교육과 남한 잠입을 위해 이루어졌다고 인정했습니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일본이 확인 요구해 왔던 11명의 생사여부 외에 확인요구가 없었던 3명의 생사여부까지 통보해 주었습니다. 북한은 총 14명 중 8명이 교통사고, 가스중독, 자살, 간경변증 등으로 사망했으며, 5명이 생존해 있고, 1명은 행방불명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일본정부는 지난 1978년 니가타(新潟)현에서 행방불명된 소가 히토미(43) 모녀 등 4명을 납치 피해자로 추가 인정하면서 일본 정부가 북한에 납치됐다고 공식 인정한 피해자는 15명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KAL기 납치범 김현희 씨를 통해 이은혜라는 이름을 가지 일본인 여선생에 대해 직접 증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MC : 그렇군요. 그런데 그 후 일본인 납북자들이 고향인 일본을 방문하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나요?

 

안찬일: 네, 지난 2002년 10월, 납치된 일본인 중 생존해 있던 5명이 일본을 일시 방문하였고, 이들이 잔류 의사를 밝히자 일본 정부는 그들의 영주귀국(귀환거부)을 결정하였습니다. 이에 북한은 납치생존자 5명을 평양으로 돌려보내지 않은 것은 `약속 위반'이라며 강력히 반발하였습니다. 일본은 본국으로 귀환한 일본인의 북한 잔류 가족의 귀국을 요구했으나 북한은 그 가족들의 일본 방문을 불허하였으며 이후 북-일관계는 다시 냉각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과 일본은 2004년 5월 4~5일 중국 베이징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둘러싼 비공식 회담을 가지고, 정부 간 협의를 속개해 앞으로 교섭을 계속해 나간다는 데 합의하고, 2004년 5월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을 방문하여 2번째 북일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그 결과 북한 내 잔류자녀 5명의 추가 송환이 성사되었습니다.

 

MC : 그러면 언제 북한과 일본의 납치자 문제 회담이 중단됐나요?

 

안찬일: 네, 10명의 안부와 관련해 "10명 가운데 8명은 숨졌고 2명은 북한에 입국한 사실이 없다"고 북한은 종전 입장을 되풀이했습니다. 북한은 대신 13살 때 북한 공작원들에게 납치됐던 일본인 소녀 요코다(橫田) 메구미의 유골과 사진 수첩 등을 일본 측에 건넸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유전자(DNA) 감식 결과 이 요코다 메구미의 유골이 가짜로 드러나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여론이 더 악화되자 2006년 북한은 메구미의 남편 김철준과 두 사람 사이에 난 딸의 존재를 공개했는데, 바로 그 김철준은 1970년대 말 고등학생 때 서해 백사장에서 납치된 한국 출신의 김영남입니다. 북한이 주선한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김영남은 “나는 납치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그 딸은 “엄마가 병사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2011년 한 탈북자에 의해 일본인 납북 피해자인 요코다 메구미가 생존해 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그녀의 생존설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MC :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평양 정권이 꺼낸 북일정상회담 그 가능성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안찬일: 네, 아마도 김정은 정권은 북-일관계 개선으로 벼랑 끝에 선 북한 경제에 숨통을 트려는 것 같습니다만, 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간접 압력일수도 있습니다. 즉 “당신들이 북한 정권을 돕지 않으면 우리는 일본과 관계 개선해 투자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는 무언의 압력 같은 것 말입니다. 물론 우리는 북한이 언제까지 자본주의 나라에 대해 문을 걸어 잠그고 페쇄와 고립의 길을 갈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개혁과 개방으로 가기를 바라지만 평양 정권의 그에 대한 준비는 아직 덜 된 것 같습니다.

 

MC : 네, 오늘 주간진단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안찬일: 수고하셨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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