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의 음악으로 여는 세상] 라디오 음악방송 DJ

디제이(DJ). 아마 처음 들어보시는 말일 겁니다. 남쪽에서는 DJ 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요, 이름의 영어 이름 약자를 앞에 한자씩만 따서 조합한 것입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은 DJ는 디스크자키. 관객들 앞에서 음악이 담긴 디스크, 즉 시디나 레코드판을 골라서 틀어주는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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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남쪽에서 크게 유행을 해서 음악 다방, 음악 감상실, 무도회장, 심지어 학생들이 가는 분식점에도 이런 DJ가 있었다는데요, 요즘은 희화의 대상입니다.

장발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목에는 작은 스카프를 매고 딱 붙는 남방을 나팔바지에 넣어서 입고 바지 뒷주머니엔 도끼 모양으로 생긴 큰 빗을 꼽고 유리로 만들어진 DJ 자리에 앉아서 신청곡이 들어오면 목소리를 최대한 내리깔고는 "이춘자 씨의 신청곡 '예스터데이' 띄어 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70년대 음반 다방의 DJ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당시 여학생들에게 최고 인기인이었다고 하는데요. '음악으로 여는 세상'을 진행하는 저도 따져보면 DJ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런 행색으로 다니는 건 절대 아니고요.

요즘은 음악 다방 같은 곳이 없어졌으니 DJ가 활동하는 주요 무대는 바로 '라디오'인데요, 오늘 '음악으로 여는 세상', 이 시간엔 이런 'DJ'와 남쪽의 '라디오'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첫 곡으로 Merci Cheri, 고마워 쉐리 듣고 얘기 이어갑니다. 폴 모리아 악단 연주곡으로 듣습니다.

Merci Cheri – Franck Pourcel

남쪽에서 1969년부터 41년째 밤 10시부터 2시간 동안 방송되는'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방송의 시그널 음악입니다.'음악으로 여는 세상'도 방송 시작에 항상 같은 음악을 트는데요 음악을 들으시면 '아 이제 김철웅이 인사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드시죠? 한 방송의 신호가 되는 음악입니다.

이 방송이 최고 인기였던 시절은 1980년대 말부터 90년 초 가수 겸 DJ 이문세 씨가 진행할 때였습니다. 남쪽 70년대 생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닐 즈음인데요, 그래서 여기 제 또래 친구들은 다들 이 시그널 음악만 들으면 이문세 씨가 특유의 굵은 목소리로 '별이 빛나는 밤에…' 하고 인사하던 생각이 나서 가슴이 설렌다고 하던데요. 혹시 제 목소리에도 그런 분이 있을까 기대해 봅니다. 이문세 씨 노래 한 곡 들어보겠습니다. '소녀'.

소녀 – 이문세

남쪽의 라디오 방송은 통로가 수십 개가 되고 방송도 24시간 계속 됩니다. 자유아시아방송 같은 단파 방송은 거의 없고 주로 AM과 FM으로 방송되는데, 서울에서 들리는 방송만 세어봐도 AM 방송 약 10개, FM 방송은 약 20개 정도입니다.

별이 빛나는 밤에 같은 음악 방송뿐 아니라 시내 교통 상황을 전하는 교통 방송이라든지 영어로 하는 영어 방송, 뉴스 방송, 종교 방송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보통 방송은 2시간 간격으로 DJ가 바뀌는데요, 텔레비전 방송 통로가 케이블까지 합해서 70개가 넘어도 라디오는 아직 건재합니다.

영국 그룹 퀸의 노래 중에서 '라디오 가가' 듣습니다.

Radio Ga Ga - Queen

"라디오, 난 홀로 앉아 너의 불빛을 보았지. 유년의 밤을 함께한 유일한 친구" 이 노래의 노랫말이 라디오가 텔레비전 같은 화려한 매체와 대결해도 절대 지지 않는 이유를 잘 보여줍니다.

남쪽에는 독서실이 있습니다. 칸막이를 단 책상을 따닥따닥 붙여놓고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일종의 공부방인데, 공부를 하기 위한 공간인 만큼 발소리를 조심해야 할 정도로 조용합니다.

그런데 이런 쥐죽은 듯 조용한 방에도 간혹 웃음소리가 들릴 때가 있는데요, 바로 라디오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대부분 눈으로는 공부하면서 작은 이어폰을 귀에 끼고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경우가 많은데 방송에서 재밌는 사연을 읽어줄 때면 웃음 못 참고 키득거리는 겁니다.

저도 언젠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재밌는 편지를 읽어주는 라디오 방송을 우연히 들었는데, 사연이 너무 우스워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웃어버린 경우가 있었습니다. 제가 웃으니 주변에서 웃음을 참고 있던 다른 승객들도 모두 따라서 웃는 통에 버스 안이 웃음바다가 돼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고정된 납땜을 뜯어버리고 남들 다 자는 새벽이 돼서야 몰래 숨어서 라디오 방송을 듣는 북쪽 주민들에게는 부러운 일입니다.

'비와 당신' 영화 라디오 스타 OST 중 듣습니다.

비와 당신-럼블피쉬

자유아시아방송 기자들이 방송을 만들면서 염원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청취자 전화 연결'! 우리 청취자들은 연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몰래 듣고 전화를 받을 수도 쉽게 걸 수도 없습니다.

남쪽 라디오 방송에서 흔하게 할 수 있는, 청취자를 전화로 연결하기, 또 청취자 편지를 소개하기는 저희에게 꿈같은 얘기입니다.

늦은 밤 학생들에게 공장에서 야근하는 노동자들에게 종일 운전을 해야 하는 택시 운전 기사에게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항상 친구처럼 함께 해주는 라디오.

저희 자유아시아방송도 여러분께 힘이 들 때 기댈 수 있는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친구 같은 라디오였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언젠가는 저도 여러분이 전화로 직접 신청하는 신청곡을 틀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날을 기약하면서 마지막으로 김동률의 노래 '감사' 들으면서 저는 물러갑니다.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세요.

지금까지 진행에 김철웅, 구성 이현주, 제작 서울지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