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엔 외식

서울-이예진 xallsl@rfa.org
2017.10.05
chuseok_tomb_b 추석인 4일 오전 울산시 남구 울산공원묘지를 찾은 성묘객들이 절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탈북자들은 한국에서 가장 외롭고 쓸쓸할 때가 온 가족이 모이는 설과 추석 명절이라고 말하는데요.

하지만 최근엔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합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여느 남한 가정처럼 북적이는 추석을 보내는 탈북자들의 얘기 들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최근에는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가운데 가족 단위로 오시는 분들이 늘면서 명절에도 시끌벅적한 집들이 많은 것 같아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먼저 한국에 정착한 사람이 북한에 남아있던 가족이나 지인들을 데려오는 사례가 많다보니 명절이면 가족이 함께 모여서 즐겁게 보내고 있는 가정들이 많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단지에 80이 넘으신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데요. 처음 나오실 때에는 할아버지와 두 아들, 그리고 손자, 손녀를 데리고 오셨습니다. 몇 년 지나서는 북한에서 사망한 큰 아들의 손주를 데려왔고 또 이후에는 그렇게 보고 싶어서 애타 하시던 딸과 사위, 그리고 네 살 증손주가 있는 손녀도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제 3국까지 나온 딸이 한국으로 전화한 날이 바로 할아버지의 장례식 날이었습니다. 할아버지도 한국에서 10여 년을 행복하게 지내시다가 위암수술을 받으신 후 3-4년을 더 사시다가 사망하셨거든요. 북한에 더는 남아있는 가족도 없이 모두 한국에 와서 행복한 일만 있을 것 같았지만 딸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역시 사람 사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처음 한국에 와서 자본주의에 대해 잘 모르다보니 브로커 비용이나 생활비 문제를 두고 가족 사이에 갈등도 적지 않아 할머니가 섭섭해 하신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몇 해를 한국에 살면서 그런 오해들은 다 풀렸고 지금은 온 가족이 명절이면 함께 모여서 즐겁게 명절을 보내기도 합니다. 더욱이 추석이면 할아버지의 유골함이 모셔진 추모원에 가셔서 함께 인사도 드리고 명절을 가족이 함께 모여서 지내시더라고요. 모든 것이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가 워낙 음식솜씨가 좋으셔서 북한식 송편도 잘 빚으시고 순대도 맛있게 만드시기에 할머니 댁에 가면 제대로 된 북한음식을 맛볼 수 있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잘 계시는지 추석에 어떻게 지내시는지 전화로 물어보았더니 금년에는 음식은 만들지 않고 할아버지 유골함이 모셔진 추모원에 다 함께 가서 인사드리고 식당에서 식사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할머니 연세도 있으시고 자식들도 한국생활에 적응하다보니 명절이라도 집에서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하게 보내지 않고 편하게 사시는 것 같습니다. 처음 한국에 나왔을 때 비하면 많이 달라지신 거죠.

이예진: 그렇군요. 다만 달라지지 않는 게 있다면 명절에 고향에 계신 조상의 묘를 찾아갈 수 없다는 게 아닐까 싶어요.

마순희: 네. 맞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이 달라지지만 단 한 가지 고향에 가지 못한다는 것만은 변하지 않는군요. 그런 탈북민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행사들이 있어서 그나마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합동차례로 제사도 지내고 서로 만나서 맛난 음식도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도 나누게 되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탈북민 단체들 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지역복지관이나 문화센터, 민주평통이나 적십자사, 해당지역 경찰서 등 단체나 기관들에서 추석에도 고향에 갈 수 없는 탈북민들을 위로하는 합동차례 행사들을 매년 조직합니다. 대형 버스를 타고 임진각을 비롯해서 통일전망대들에 가면 망배단이 있습니다. 우리 탈북민들 뿐 아니라 실향민들도 추석에도 찾아갈 수 없는 북녘의 고향을 그리면서 차례상을 차려놓고 제사를 올릴 수 있게 되어 있거든요.

북녘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푸짐한 음식들과 탐스러운 과일이며 갖가지 해산물까지 없는 것 없이 다 갖추어놓고 고향의 조상님들을 생각하면서 술을 붓고 절을 올리군 합니다. 저는 그렇게 절을 올리면서 고향의 선산 앞에 서서 인사 올리고 있는 저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군 한답니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돌아가신 이들과 살아서 제사를 지내고 계실 식구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언제면 직접 산소에 가서 술 한 잔 올릴 수 있을까, 하루속히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곤 합니다.

이예진: 아마 많은 분들이 그렇게 바라실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도 추석에는 조상의 묘를 찾는다고 하는데 남한에선 명절 전에 벌초를 하러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들이 심하게 막히기도 하는데요. 성묘하는 문화는 남한과 북한이 비슷한가요?

마순희: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점도 많답니다. 물론 제가 북한을 떠난 지도 20년이 지나서 지금 나오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북한에도 화장 문화가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살 때에는 거의 산에 매장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산소에서도 술을 부을 때에는 술을 세 번 꺾어서 붓는다든가 절도 세 번 하는데 한국에서는 우리와 조금씩 다르더군요. 한국에서는 향을 피워놓고 술을 부은 후 술잔을 들고 향 위로 세 번 돌리기도 하고 절도 두 번 하고 세 번째는 그냥 반절이라고 깊숙이 인사하는데 처음에는 그런 것을 몰라서 세 번 절을 하기도 했죠. 그리고 북한에서는 과일을 그대로 올려놓는 반면 남한에서는 과일 윗부분을 살짝 잘라서 놓는 것이 서로 다르더군요.

이예진: 사소한 듯 하지만 다른 점들이 있네요.

마순희: 네. 북한에 있을 때 어렸을 때에는 저에게 추석은 말 그대로 명절이었습니다. 집안의 친척들이 모두 모여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즐겁게 뛰놀기도 하는 명절이었었는데 집안에 가까운 분들이 돌아가시게 되면서부터 추석이 슬픈 명절이 되더군요. 북한에서는 추석 당일에 남자들은 아침 일찍 낫을 들고 산소에 가서 벌초를 합니다. 그리고 여자들은 집에서 제사상 차릴 음식을 장만하고요. 저희 고향의 추석풍경은 아침부터 신작로가 꽉 메이게 사람들이 시내에서 외곽으로 나오고 있는 광경입니다. 손에, 손에 가방이나 음식물 보따리들을 들고 지고, 이고 걸어오는 모습들입니다.

이예진: 저마다 벌초부터 하러 가는군요.

마순희: 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보니 추석 풍경도 역시 많이 다르더라고요. 벌초하는 것도 추석 당일이 아니라 미리 며칠 전에 가서 하는데 낫으로 베는 사람들보다 예초기라고 풀 베는 기계로 벌초를 하더군요. 또 회사생활로 시간을 내기 어려운 분들은 대행업체가 있어서 거기에 신청만 하면 말끔하게 정리해 주기도 한답니다.

이예진: 미리 시간 내기 어려운 분들은 그렇게 대행업체에 맡기더라고요. 다음 시간에는 장례문화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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