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지지율이 높았던 소련의 1940~50년대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18.01.09
sovietunion_army_latvia_b 1940년 6월 17일 라트비아 시민들이 거리에서 소련군의 진주를 환영하고 있다.
ASSOCIATED PRESS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하지만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이 시간은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대담에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입니다.

- 대부분 공산당 미워했던 1941년, 독일군대의 소련 침략

- ‘독일 군대가 온다면 협동농장 없앨 것’이란 기대로 독일군에 맞서지 않아

- 학살과 민족차별 자행한 독일군대 목격한 국민 “차라리 공산당이 낫다”

- 농민과 달리 대체적으로 공산당 지지한 도시 시민

- 전쟁 이후 공산당에 대한 지지율 상승, 미래에 대한 희망 품게 돼


지난 시간, 1920년대에 잘 사는 세상을 꿈꾸며 공산당을 지지했던 소련 농민이 토지 약탈과 기근에 대한 불만으로 공산당에 등을 돌리게 된 내용까지 들어봤습니다. 또 집단농업이 시작되면서 농민에게 여행의 자유까지 허용되지 않자, 10년간 지지했던 공산당에 대한 태도는 하루아침에 바뀌었는데요,

이런 가운데 1941년, 독일군대가 소련을 침략했을 당시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은 어땠는지, 독일군대에 어떻게 맞서 싸웠는지 이어서 듣도록 하겠습니다.

- 란코프 교수님, 1941년에 독일군대가 소련을 침략했는데, 당시에 정권에 대한 인민들의 태도는 어땠을까요?

[란코프 교수] 당연히 어느 나라이든 외국의 침략을 당하면, 인민 대부분은 침략자에 대한 분노가 있고 그들과 싸울 마음도 있습니다. 소련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41년 여름과 가을, 파쇼 독일의 침략을 받았을 때 소련은 심각한 패배를 당했습니다.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농민들의 태도입니다. 농민들은 여전히 소련 인구의 3분의 2 정도였는데, 대부분 공산당 정권을 너무 미워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조국을 지키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은 ‘조국을 지키는 것이 공산당국가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파쇼침략자들의 거짓 선전을 많이 믿었습니다. 당시에 파쇼선전일꾼들은 자신이 해방자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짧은 기간이라고 해도, 그 거짓 선전을 믿는 농민 출신 소련 군인이 많았습니다. 그들 가운데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심지어 싸우지 않고 도망치거나 투항하는 부대까지 생겼습니다. 당시에 많은 농민은 ‘독일 군대가 온다면 협동농장을 없앨 것’이라는 희망을 노골적으로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멀고 먼 시베리아 시골에서 소학교 학생으로 지내던 저의 어머니도 같은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다.

- 그렇다면 인구의 다수인 농민들이 공산당을 싫어하는 상황 속에서도 소련은 어떻게 이길 수 있었나요?

[란코프 교수] 1941년 말에 들어와 파쇼 독일에 대한 농민들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파쇼군대는 학살과 매우 심한 민족차별을 자행했습니다. 따라서 소련 농민 대부분이 공산당을 매우 싫어했지만, 그래도 공산당정권이 파쇼침략자들보다 훨씬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국, 1941년 말부터 거의 모든 소련 국민들, 스탈린과 공산당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 모두 같이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전쟁의 결과를 결정한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스탈린은 이 사실을 어느 정도 알았습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스탈린은 ‘러시아 사람들이 공산당을 위해서 싸우지 않을 수 있지만, 조국을 위해서는 싸울 수 있다’고 측근들에게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스탈린은 그때부터 러시아의 전통을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 농민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요. 도시 사람들의 경우는 어땠나요?

[란코프 교수] 복잡한 이야기인데요. 하지만 1930-40년대 도시 사람들의 태도는 농민보다 긍정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도시노동자와 지식인들 가운데 공산당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공산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기본적인 이유는 경제발전입니다. 역설적이지만, 당시 소련의 빠른 경제성장은 수백만 명의 아사자가 생긴 기근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도시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나라의 발전을 보면서 자부심과 민족의 긍지를 많이 느꼈습니다. 당연히 1940년대 들어와 전쟁이 시작되자 노동자와 지식인들은 농민보다 체제를 더 열심히 지지했습니다.

- 그렇다면, 전쟁 이후에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란코프 교수] 당연히 제2차 대전의 승리는 소련의 큰 자랑이 되었습니다. 농민들까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됐습니다. 그들의 희망은 정부가 협동농장을 해산시키고, 땅을 다시 농민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포전담당제와 같은 정책을 펼 것을 기대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희망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1940년대 말부터 50년대 초는 소련 역사에서 공산당 체제에 대한 지지율이 제일 높은 시대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경제 상황은 어려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 때 해외에서 싸우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소련이 다른 구라파국가에 비해 매우 어렵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소련사람 대부분 희망은 나라가 빠른 속도로 전후복구를 완성하고, 구라파 나라들을 따라잡는 것이었습니다. 스탈린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에게 스탈린은 ‘나라를 구한 위대한 승리자’로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스탈린 사망 이후 체제에 대한 불만이 갈수록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련의 1950년대 이야기는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 네. 다음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데요, 그럼 다음 시간에 이어서 듣도록 하지요. 란코프 교수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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