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장벽이 건설된 이유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1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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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동베를린의 젊은이들이 경찰의 감시하게 장벽을 쌓고 있다.
1961년 동베를린의 젊은이들이 경찰의 감시하게 장벽을 쌓고 있다.
AP Photo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하지만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이 시간은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대담에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입니다.

- 베를린 장벽 건설 전,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주 많아

-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출퇴근도 가능

- 더 잘사는 서독으로 도망가거나, 돌아가지 않아

- 인구이동 막기 위해 베를린장벽 건설

- 장벽 건설 이후에도 갖가지 방법으로 이주 시도


남북한의 분단 역사를 비교할 때 가장 많이 거론하는 나라가 바로 독일입니다. 동독과 서독으로 나누어졌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경제적 격차가 컸으며, 결국 두 나라를 갈라놓았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을 이룬 독일은 오늘날 한반도의 모델이 되고 있는데요. 오늘은 독일의 분단부터 베를린 장벽의 건설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 우리가 한반도를 분단국가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회주의 진영의 역사를 보면 또 하나의 분단국가가 있었죠. 바로 독일인데요. 독일과 북한의 분단 역사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란코프 교수] 공통점도 많고 차이점도 많습니다. 우선 분단을 초래한 국제상황에서 어느 정도 비슷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한반도처럼 연합군의 점령 지역이 되었고, 그 결과 분단됐습니다. 한반도에서 소련 군대와 미국 군대는 두 개의 점령지역을 만들었는데, 독일에서는 점령지역이 4개였습니다.

- 하지만 독일에서는 동독과 서독이라는 2개의 국가가 생겼잖아요. 점령구역은 왜 4개였나요?

[란코프 교수] 당시 독일로 들어간 군대는 소련 군대와 미국 군대뿐 아니라, 영국군대와 프랑스 군대도 있었습니다. 결국 1945년 여름, 포츠담에서 연합국 지도자들은 독일에 4개의 점령구역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동독이 된 소련의 점령구역이 있었고, 미국과 프랑스, 영국도 각각 점령구역을 설치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이 본격화하기 시작하자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미국은 자신의 점령구역을 통합했습니다.

- 그렇다면 서독이 동독보다 훨씬 크지 않았을까요?

[란코프 교수] 그렇습니다. 한반도에서는 남북한의 면적이 거의 비슷했는데, 독일에서 서독은 동독보다 2배 이상 컸습니다. 인구도 원래 3배나 더 많았는데, 나중에는 4배로 커졌습니다.

- 서독 인구가 동독 인구보다 갈수록 많아진 인구는 무엇일까요? 서독의 출산율이 훨씬 더 높아서 자녀들의 숫자가 많았나요?

[란코프 교수] 아닙니다. 1961년, 즉 베를린장벽이 건설될 때까지 동독 사람이 서독에 이민을 많이 갔습니다. 애초 국경이 없었을 때는 이민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1950년대 들어와 서독으로 이동하는 것이 어려워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갈 수는 있었습니다. 통로는 베를린입니다.

- 당시 베를린을 통해서 서독으로 가는 것은 쉬웠던 이유가 있나요?

[란코프 교수] 당시 베를린은 이상한 형태의 도시였습니다. 두 개로 나누어졌는데, 동쪽 베를린은 동독, 즉 도이치민주공화국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서베를린은 말로는 자치도시였지만, 사실상 서독의 국토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생길 때까지 누구든지 자유롭게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특별한 검사도 받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동베를린에 살았지만, 서베를린에 있는 공장이나 사무실로 출근했습니다.
북한 청취자 여러분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요. 그래도 사실입니다. 쉽게 예를 들면 매일매일 개성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연히 동독 생활에 불만이 많은 사람은 서베를린으로 간 다음 동독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비행기 또는 아무 검사를 하지 않는 직행열차로 서독에 가면 그만이었습니다.

- 이렇게 도망간 사람들이 얼마나 됐나요?

[란코프 교수] 아주 많이 도망갔습니다. 사회주의 국가 중에서 동독처럼 도망가기 쉬운 나라가 없었습니다. 사실 결과를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1949년부터 61년까지 하루에 약 800명씩 도망갔습니다. 기본적인 이유는 동독이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 비해 잘 살기는 했지만, 자본주의 나라가 된 서독만큼은 잘 못살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동독은 인구감소라는 위기에 빠졌고, 특히 도망자 중에는 청년 학생이나 지식인, 기술자들이 많았습니다. 이 같은 상황을 계속 방치하면 동독에는 늙은 사람과 아무런 교육을 받지 못한 미숙련 노동자들만 남게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결국, 동독 공산당 지도부는 도망자들을 막기 위해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기로 했고, 모스크바의 허락을 받아 베를린 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 그렇다면 베를린 장벽은 동독 때문에 생긴 것이군요.

[란코프 교수] 그렇습니다. 서독의 입장에서 이러한 장벽이 없었다면 매우 좋았을 겁니다. 서독은 당연히 동독에서 오는 젊은 노동자나 실력이 뛰어난 기술자들을 환영했습니다. 베를린 장벽 건설은 사실상 군사 작전이었데, 동독 군부대와 동독 청년동맹 돌격대와 같은 건설대는 갑자기 비상동원 명령을 받고, 베를린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내에 서베를린을 포위하는 장벽을 건설한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속도전이었습니다.
당시에 동독 사람은 베를린 장벽을 보고, 이것이 바로 사회주의 건설의 기적이라는 농담을 많이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베를린 장벽의 건설을 지휘한 사람은 에리히 호네커라는 사람인데요. 당시에는 젊은 공산당 간부였지만, 훗날 동독의 사실상 마지막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도 그의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네커는 북한을 여러 번 방문한 바 있습니다.

- 그렇다면 베를린 장벽이 생겼을 때, 효과는 있었나요?

[란코프 교수] 효과가 매우 컸습니다. 물론 베를린 장벽이 건설된 후에도 서독으로 도망치는 사람은 많았습니다. 다른 모든 사회주의 국가에서 도망친 사람들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았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서로 가까웠고, 말도 비슷한 데다 문화도 같은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경비가 삼엄했지만, 오늘날 남북한 사이의 38선에 비하면 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961년에 베를린 장벽이 건설된 이후부터 1989년에 붕괴할 때까지 서독으로 도망친 사람은 무려 60만 명이나 됩니다. 베를린 장벽이 없을 때는 하루에 평균 800명이 도망갔는데, 장벽이 생긴 이후에는 하루에 약 50명 정도가 도망갔습니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장벽을 넘었고, 나중에는 큰 풍선을 타고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동독 사람은 서베를린으로 가기 위해 갖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개발했습니다.

- 동독 사람은 왜 어렵게 장벽을 넘어서 서독으로 넘어갔을까요?

[란코프 교수] 기본적인 이유는 여전히 같습니다. 서독이 너무 잘 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동독은 소련이나 뽈스카(폴란드)보다 잘 사는 사회주의 진영의 부자나라였습니다. 1980년대를 기준으로 서독 사람은 동독 사람보다 2~3배나 많은 월급을 받았습니다. 이는 남북한의 격차보다 작지만, 그래도 쾌 큰 차이입니다. 물론 동독 주민이 모두 서독으로 가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닙니다. 꽤 많은 사람이 체제를 열심히 지지했습니다. 저의 동독 출신 친구들은 서독이 잘 살고 자유가 많기는 하지만, 동독이 더욱 평등하고 정의로운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소수파에 불과했습니다.

시간 관계상 동서독의 역사와 문화, 위기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오늘은 란코프 교수님과 함께 동서독의 분단과 베를린 장벽의 건설 이유 등을 살펴봤습니다. 란코프 교수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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