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인들의 소비생활 (1)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9.10.22
Russian_food_buy_b 러시아 시골 여성들이 행상으로부터 빵을 사고 있다.
/REUTERS

OPENING: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알아보는 ‘공산주의 역사이야기’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전수일: 교수님, 공산권에서 배급제도가 시행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요, 실제 공산주의 종주국이라고 할 소련에서 배급제도 상황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북한만큼 철저했었나요?

란코프 교수: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은 사회주의진영 나라들을 생각할 때, 북한만큼 철저했던 배급제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꽤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북한처럼 배급제를 절대화한 나라들은 없었습니다. 소련이든 동구 공산주의 국가 대부분이든 배급이나 공급을 하지 않거나, 매우 어려운 위기 때에만 했습니다. 북조선 사람들에게 배급제도는 정상적인 상황입니다. 하지만 소련에서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배급제도는 국가 살림이 진짜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다는 선언과 똑 같습니다.

전: 하지만 소련에서도 배급제도가 있지 않았습니까?

란코프: 네 그렇습니다. 소련에서 배급제는 사실상 3번 실시되었습니다. 1929-1936년입니다. 이것은 집단화정책이 초래한 기근과 식량난 시대입니다. 당시에 소련 시골에서는 북한의 고난의 행군보다 더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배급제가 1941년부터 1947년까지 실시되었는데요. 당연히 제2차 대전 시대입니다. 셋째로 1980년대, 즉 소련이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배급제도와 공급제도가 실시하는 지역이 생겼습니다.

전: 그런데 소련에서는 자본주의 나라들처럼 주머니에 돈만 있다면 누구든지 가게를 찾아서 사고 싶은 물건을 살 수 있지 않았습니까?

란코프: 그 답변은 조금 복잡합니다. 아무 때나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물건도 있었지만, 돈이 많아도 일반인들이 살 수가 거의 없었던 물건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대별, 지역별로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대체로 말하면 모스크바를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상점에서 살 수 있는 식량과 물건이 시골이나 작은 도시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품질이 좋았습니다. 그래도 시골에서도 잘 사는 지역도 있었고 어렵게 사는 지역도 있어서 매우 복잡한 이야기입니다.

전: 교수님, 그래도 소련에서 돈의 힘은 컸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란코프: 1970-80년대 소련에서 돈의 힘은 김일성 시대 북한과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련시대 돈의 힘은 김정은 시대 북한보다는 약했습니다.

전: 교수님은 1963년에 소련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당시에 고등중학교를 다니실 때 레닌그라드 일반 상점에서 무엇을 사실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1970년대 레닌그라드 상점에 간다면 아무 때나 무엇이든 살 수 있는 것이 있었나요?

란코프: 제일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1940년대 이후 소련이 제일 어렵게 살았을 때도 밥을 굶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레닌그라드 뿐만 아니라 멀고 먼 시골에서도 밥, 빵, 쌀, 감자 그리고 말린 국수는 소련 전국 어디든지 값싸게 살 수 있었습니다. 1970년대 레닌그라드에는 우유도 있었고 유제품도 있었습니다. 치즈는 1970년대 초 많이 있었지만 1970년대 말 많이 없어졌습니다. 경제상황이 갈수록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여러 가지 빠다도 조금 있었습니다. 당시에 시골에서 우유는 있었지만 빠다나 다른 유제품은 없었습니다. 물론 사탕가루, 알사탕도 초콜렛도 있었습니다.

전: 고기는 어땠을까요? 구하기 어려웠나요?

란코프: 레닌그라드나 모스크바와 같은 대도시이면 돼지고기는 보통 상점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러시아 사람들이 보면, 공산주의 시대 고기는 무엇일까요?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가 먹는 고기입니다. 물론 북한 사람들은 고양이를 많이 키우지 않는데, 키운다고 해도 고기를 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소련시대에도, 러시아 시대에도 고양이에게 고기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레닌그라드에서 돼지고기뿐만 아니라 소고기까지 가끔 있었는데, 품질문제뿐만 아니라 찾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평범한 인민들이 직장에서 돌아온 늦은 시간에 상점에 고기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전: 생선, 물고기는 어땠을까요?

란코프: 큰 도시이든 멀고먼 시골이든 충분히 있었습니다. 참치나 연어와 같은 고급물고기가 아니지만, 명태나 낙지까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소련 냉장기술의 발달과 별 관계 없습니다. 소련시대도 러시아시대도 물고기는 별 인기가 없습니다. 물론 고급물고기도 있었는데, 연어나 참치와 같은 물고기도 있었지만, 이와 같은 고급 물고기는 간부들이나 먹을 수 있었습니다. 흥미롭게 소련에서 배급제도가 실시되지 않았을 때도, 간부들을 위한 특별 공급 제도가 있었습니다.

전: 북조선에도 2일 공급, 1일 공급 같은 특별 공급이 있었다는데 그런 건가요?

란코프: 제가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간부집 아들이 아니고 로동자집 아들이어서, 우리는 특별공급이 있다는 것을 알기는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간부들은 고급 콜바사 (소시지), 뼈가 없는 소고기, 연어 등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공급받았다는 것은 당시에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전: 교수님, 전화나 녹음기와 같은 전자제품은 어땠을까요? 구입하기가 쉬웠습니까?

란코프: 전화와 녹음기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녹음기는 돈만 내면 누구든지 살 수 있었습니다. 소련에서 평균 월급은 180루블 정도였는데요. 싼 녹음기는 120루블이었고, 고급 녹음기는 300루블입니다. 다 국산입니다. 독일제, 일제 등 수입녹음기가 있기는 했는데 아주 비싸서 부잣집이나 간부집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화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전화기 자체는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가격을 잘 기억합니다. 12루블입니다. 아주 쌉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설치입니다. 1980년대 소련에서 인민 10명당 전화기가 1대 꼴로 있었습니다. 물론 레닌그라드에서 훨씬 더 많았고 모스크바에서 제일 많았습니다. 제가 살았던 레닌그라드에서 1970년대 말에 거의 누구든지 전화설치를 주문할 수 있었지만, 10년이나 15년 걸렸습니다. 예를 들면 제 가족은 1960년대말 지은 집으로 이사 갔을 때, 1980년 봄에 전화가 설치되었습니다.

전: 북한에서는 뇌물만 고이면 뭐든지 빨리 할 수 있다고 하던데요, 당시 소련은 어땠습니까?

란코프: 당시에 간부 즉 책임 일꾼이나 조금 유명한 사람, 아니면 장애인이나 영예군인이면 보다 훨씬 더 빨리 설치할 수 있었습니다. 돈을 주면 더 빨리 설치하도록 할 수 있었을 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가끔 생긴 일이지만, 당시에 소련에서 뇌물을 고이는 문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중앙아시아나 소련 남방 가맹공화국에서 있었지만 제가 살았던 북방 러시아에서 거의 없었습니다.

전: 그렇다면 자동차는 어땠을까요?

란코프: 이론상 구입할 수 있었지만, 아주 어려웠습니다. 장애물은 두 가지 있었는데, 첫째 가격 자체입니다. 당시에 가격은 7000-10000루블인데요. 이것은 평균 노동자가 5년동안 번 돈입니다. 둘째는 이렇게 큰 돈이 있다고 해도 자유판매가 아닙니다. 제일 먼저 등록하고, 몇 년을 기다리다가 받을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알아본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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