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입학

서울-노재완, 박소연 nohjw@rfa.org
2018-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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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재 대학원 건물.
서울 소재 대학원 건물.
사진-연합뉴스 제공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이 시간 진행에 노재완입니다. 함경북도 무산 출신의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로 7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소연 씨는 남한에 도착한 이듬해 아들도 데려왔는데요.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남한에서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노재완: 안녕하세요?

박소연: 네, 안녕하세요.

노재완: 소연 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박소연: 네, 노 기자님도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 청취자 여러분도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도 건강하세요.

노재완: 1월 2일이 업무를 시작하는 첫날인데요. 소연 씨는 새해 계획 세우셨어요?

박소연: 올해는 저에게 특별한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조금 있으면 할머니를 바라본다고 해서 북한에서 40대 여성은 지는 달이라고 했어요. 그냥 집안에서 살림 잘하고 장사나 잘하면 되는 나이입니다. 그런데 제가 남한에 와서 44살의 나이에 대학원 진학에 도전했습니다.

노재완: 대학원요?

박소연: 네, 북한에서는 준박사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노재완: 대학원 입학 축하드려요. 그러면 지난 12월에 시험을 봤겠네요?

박소연: 네, 면접시험을 봤습니다. 박사님 6명이 앉아서 질문하시는데 두근두근해서 정말 사지가 다 떨리더라고요. 제가 조금만 실수해도 시험에서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합격자 명단 발표날 발표가 되지 않았습니다. 알아보니까 북한대학원에 응시한 사람이 많아서 심사가 늦어졌다는 거예요. 솔직히 저는 떨어질 줄 알았거든요. 젊은 사람들 위주로 뽑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결국 합격자 발표는 예정일보다 이틀 늦게 발표됐는데 세상에 합격자 명단에 제 이름이 있는 거예요. 제 이름을 보는 순간 너무 행복했습니다.

노재완: 그러셨군요. 그런데 북에서 오신 분이 북한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하니까 좀 재밌네요.

박소연: 사실 제가 한국에 와서 6년 살면서 북한을 너무 몰랐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동의 자유가 없고 정보 공유가 없는 북한이다 보니 내가 살던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특히 북한 최고위층의 구조와 사명, 북한이라는 제도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한 국민보다 북한에 대해 모르는 것도 많았습니다. 남한은 북한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와 자료가 있고 북한에 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연구소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을 잘 모르면서 남한 국민들에게 제가 북한을 알려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재완: 그런데 어떻게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을 하셨어요? 무슨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박소연: 제가 이번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기까지는 여러 가지 동기 부여가 있었습니다. 지난 2016년에 대학입학시험인 수학능력시험에서 최고령 수험생이 70을 넘긴 노인이라는 사실을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알았습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나이도 많으신 분이 아직도 배움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신다는 것에 감동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기회가 되면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더 지체하면 안 될 것 같아 이번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노재완: 소연 씨는 북한에서 대학을 나오셨죠?

박소연: 저는 음대를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예술전문대학을 나왔습니다. 1990년대만 해도 북한에서는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았습니다. 왜냐하면 음악으로 김부자 우상화를 강화하고 음악 선전으로 주민들을 교양하는 시기라 음악 대학이 꽤 인기가 많았습니다.

노재완: 음대를 나오셨군요.

박소연: 저는 7살 때부터 화술을 전공한 터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학시험을 보지 않고 특기생으로 대학에 갔습니다.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대학이라 이론 수업이 없고 화술경연과 성악에 대해서만 배웠습니다. 그런데 남한에 와서 보니 저의 이런 대학 경력이 아무런 쓸모가 없더라고요. 또한 이곳에서는 경력을 우선시하는 곳이라 배우지 않고서는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노재완: 북한에서 오신 분들은 대학원 입학할 때도 혜택이 좀 있죠. 등록금을 싸게 해준다든가 그런게 있지 않습니까?

박소연: 네, 여기 남한에는 탈북자들에 대해 교육지원이 아주 잘 돼 있습니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까지 무료로 가르쳐줍니다. 물론 대학 입학은 만 35세까지만 학비를 지원해주는데요. 대학원도 학비 중 절반은 정부가 부담합니다. 이렇게 좋은 환경이 마련되다 보니 공부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 할 나이에 준박사 학위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노재완: 그러면 소연 씨가 이번에는 등록금 절반을 준비해야겠네요.

박소연: 네, 대학원이니까 등록금 준비도 해야 합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사이버대학에도 다닌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100% 무상으로 다녔습니다. 저도 그렇게 학비 혜택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대학원은 2년제입니다. 그 정도는 낼 수 있습니다.

노재완: 배움에 대한 소연 씨의 열정은 정말 놀랍습니다. 다른 탈북자분들에게도 동기부여가 될 것 같습니다.

박소연: 아이를 돌보면서 일도 하면서 대학원에 다닌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한 번 해보려고요. 더 많은 것을 배울 때 나에게는 더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고 믿고 싶습니다.

노재완: 소연 씨 아들에게도 좋은 본이 될 것 같습니다.

박소연: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로 살고 싶어요. 먼 훗날 아들이 기억하는 엄마는 항상 열심히 공부하고 살아오신 분으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노재완: 말씀하신 대로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이번에도 소연 씨는 잘 극복하리라 믿습니다. 소연 씨, 잘 하실 겁니다. 파이팅입니다. 오늘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재완 박소연이었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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