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돌아간 한 시간 반

서울-노재완, 박소연 nohjw@rfa.org
2018.02.13
performance_nk_band-620.jpg 지난 8일 강원도 강릉에서 열린 북한 예술단의 공연이 끝난 뒤 북한 예술단원들이 관객석으로 다가가 웃으며 관객들과 손을 잡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함경북도 무산 출신의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로 7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소연 씨는 남한에 도착한 이듬해 아들도 데려왔는데요.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남한에서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

진행자 : 이 프로그램을 담당하던 노재완 기자의 사정으로 제가 잠시 인사드립니다. 박소연 씨와 함께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소연 씨! 오랜만입니다.

박소연 : 오랜만이에요. 반갑습니다!

진행자 : 저도 반가워요. 남쪽에 제일 유명한 북한 노래가 ‘반갑습니다’죠?

박소연 : 그렇죠. 북한에서보다 더 많이 부르는 것 같습니다. (웃음)

진행자 : 오랜만에 이 노래를 무대에서, 그것도 북쪽 예술단들의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평창 올림픽을 맞아 북한 예술단이 남한을 찾았고 서울과 강릉에서 2차례 공연했습니다. 지난 일요일 11일 서울에서 공연했고 그에 앞서 8일에는 강릉에서 공연을 가졌습니다. 소연 씨 혹시 보셨습니까?

박소연 : 저는 직접 가보진 못 했고 강릉 공연 녹화 방송을 봤습니다.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1시간 30분을 꼬박 다 시청했습니다.

진행자 : 이번 공연 입장권은 판매를 한 것이 아니라 응모하는 사람 중 추첨해서 보내줬는데요. 절반은 정부가 각 계 인사를 초청했고 절반은 총 1,060명에게 무료로 제공했습니다. 혹시 신청 안 해보셨습니까?

박소연 : 지난 시간에 노 기자랑도 잠시 얘기를 했는데요. 신청할 생각은 안 했어요. 저는 사실 북쪽에서 이번 평창 올림픽에 선수단을 보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술단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릅니다. 스포츠 축전에 웬 예술단이냐 고깝게 생각했었고 또 북한 예술단 공연이라는 것이 결국은 체제 선전이죠. 북한에서의 예술은 정치의 한 부분입니다. 그런 공연을 올림픽 때 남한에서 한다? 남한에서도 비판하는 여론도 있었고 저 역시 마찬가지였는데요. 그래도 결국 보게 됐습니다.

진행자 : 어떠셨어요?

박소연 : 당연히 지루한 관현악에 틀에 박힌 동작과 경직된 모습으로 노래를 부를 것으로 생각했고 큰 기대도 없었고 한번 쯤 봐 주자라는 심정으로 봤는데요. 미우나 고우나 해도 역시 나고 자란 고향이라는 게 무섭습니다. 그리고 저 말고 다른 탈북자들도 마음이 다 같았나봐요. 이날 공연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됐는데 시작하자마자 전화에 불이 났습니다. 빨리 텔레비전 켜보라고. 텔레비전 앞에 앉았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진행자 : 고향 생각이 나셨나보네요...

박소연 : 사실 공연 중에서 슬픈 노래가 나온 것도 아니었어요. 나도 내가 왜 눈물이 나나... 놀랐습니다. 불과 6년 전만해도 귀에 목이 박힐 정도로 듣던 음악들, 통통한 얼굴에 진한 화장을 한 북한 예술인들의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오면서 화장대에 가서 내 얼굴을 다시 보았습니다. 그렇지 북한에서는 머리모양을 저렇게 했지... 눈썹도 저렇게 바르고... 내가 참 많이 변했구나, 그래서 저 얼굴을 보니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고향 생각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진행자 : 텔레비전 화면을 보니까 공연을 보겠다고 신청한 사람들 중에는 북쪽에 고향을 두신 분들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눈물을 많이 흘리시더라고요. 소연 씨와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 같고요.

박소연 : 개막식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 위원회 위원장이 눈물을 흘렸잖아요? 공동 입장에서 많이 울던데 그게 가짜 눈물은 아닌 것 같았어요. 남한에서도 90세 가까이 된 이 노인의 눈물이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얘기됐고요.

진행자 : 공연 내용은 어떠셨어요?

박소연 : 솔직히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는 정치적 내용으로만 구성된 북한노래를 남한에서 부르면 어쩌나, 말로는 없다고 하고 공연이 시작되면 김정은을 칭송하는 노래와 춤을 추면 어쩌나 하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그런 가사는 모두 바꿔 불렀습니다. 그리고 북한 노래보다는 남한 노래들이 많았고 무대 의상도 거의 남한 수준과 비슷하게 입고 나왔습니다.

진행자 : 저희가 기존에 보던 북한 공연 모습과는 좀 다르긴 했습니다.

박소연 : 가수들 의상도 어깨를 드러냈고 화려했어요. 아마 북한에서 저런 의상으로 노래 부르면 젊은 층들은 좋아해도 어르신들은 벗고 나왔다고 많이 비난했을 거예요. 거기다 남한음악도 여러 편 나왔는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이선희의 노래 J도 불렀고... 솔직히 남한, 북한 사람들 모두 다 잘 알고 있는 남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진행자 : 거의 북한에서 많이 불리는 남한 가요였습니다.

박소연 : 저도 연변 가요라고 알고 있는 남한 가요였고 옛날에 부엌에서 밥 앉히며 흥얼거리던 노래가 나오더라고요. 이래서 우리는 속일래야 속일 수 없는 한민족인가 하는 생각에 고깝던 마음도 좀 더 열게 되었습니다.

제일 많이 울었던 건 우리의 소원은 통일, 백두와 한라는 우리 조국, 다시 만납시다를 부를 때였습니다. 다행히 빈집에 혼자 있어 마음 놓고 울 수 있었어요. 배경 화면으로 이산가족 상봉장면이 나오는데 관객석에서 한 할아버지가 손주의 인사를 받으며 울고 있었고 그 장면에서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이 밀려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네요.

노래도 함께 따라 부르고 잘하면 박수도 쳐주고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 이렇게라도 남북이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행자 : 그런 얘기들 하시더라고요... 보기 전엔 밉고, 그리고 북한이 지난해 핵과 미사일로 한반도 긴장 상황이 엄청 났잖아요? 도대체 무슨 속셈인가 이런 얘기도 있었고 실제도 공연장 등에서 반대 시위도 있었지만... 그래도 얼굴을 보고 나니, 직접 만나고 보니 이렇게 만나는 게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에는 동의하게 되는 분위기입니다.

박소연 : 미운 정도 정이고요... 한 가지 재밌었던 부분은요. 공연 중간에 북한 예술단이 짧은 바지를 입고 춤을 췄는데 제가 어느새 몸매를 평가하고 있더라고요. (웃음) 남한 가수들은 진짜 날씬하거든요. 고향에서는 공연을 보면 얼굴과 노래 실력에 집중했는데 이제 몸매까지도 보게 됐다... (웃음) 그러고 보니 나도 이제 많이 남조선화 됐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또 여기저기서 친구들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다들 마음이 아프다고, 그러면서도 공연 하는 걸 보니 좋더라, 이런 문자들을 주고받았습니다. 앞으로 남북문제가 잘 풀리고, 북한도 북한만 미사일 쏘고 핵 개발 안 하다면 아무도 북한을 어떻게 해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이런 현실을 주민들에게도 알리고 받아들이고 올림픽처럼 평화로운 한반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래봤습니다.

진행자 : 만나서 기쁘고 반가운 그 마음만으로 상황이 풀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한반도 상황이라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겠죠? 그렇지만 지금 이 마음, 남북 모두가 기억했으면 좋겠다하는 바램, 저도 가져봅니다. 지금까지 박소연 씨와 함께 했습니다. 함께 인사드릴게요.

박소연 : 함께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진행자 :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