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 남의 아들 (1)

서울-이현주, 문성휘, 박소연 xallsl@rfa.org
201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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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한 초등학교 교문 앞에 어린이들이 모여 있다.
서울 강남 한 초등학교 교문 앞에 어린이들이 모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4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9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우리 아이가 막 누구를 때리거나 하는 아이는 아닌데요. 우리 아들이 화가 나서 애들이 앉았던 책상을 확 뒤로 밀쳤는데 3명이 쪼르르 넘어지고 맨 끝에 앉았던 아이는 넘어지면서 팔목이 금이 가서 깁스를 해서 ...

아이들이 싸우면서 큰다... 남쪽에선 이런 말 많이 합니다. 아이들, 특히 남자 아이들은 사고 치면서 큰다... 소연 씨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겁니다.

소연 씨 인생의 가장 큰 보물이자 가장 큰 행복인 13살 난 아들래미 덕에 지난달엔 미안하다 머리를 숙였고 이번 달엔 뜻하지 않게 사과를 받았습니다. 북한에서도 그렇지만 남한에서 아이 키우기? 나름 힘이 듭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소연 씨의 하소연 좀 들어주세요.

진행자 : 안녕하세요.

박소연 , 문성휘 : 안녕하세요.

진행자 : 남쪽엔 아들 셋이면 엄마는 깡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두 분 들어보신 적 있는지 모르겠는데요. 딸딸이면 금메달, 딸 아들이면 은메달, 아들 아들이면 목메달이라는 농담도 많이들 합니다. (웃음) 그만큼 아들 키우기 힘들다는 얘기겠죠?

박소연 : 북한에는 아들이 많은 집 부모는 분주소 앞마당에서 쪼그리고 앉았어야 하고 딸 많은 집 부모는 우체국 마당에 쪼그리고 앉았어야 한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딸은 만날 뭘 보내니까 소포를 받으러 우체국에 가야하고 아들은 매일 사고를 치니까 분주소, 그러니까 경찰서를 가야한다... 이런 말이죠. 딱 같네요.

진행자 : 딸 가진 부모는 비행기 타고 아들 가진 부모는...

박소연 : 소달구지나 탈 수 있겠는지 모르겠는데요? (웃음)

진행자 : 북쪽도 그렇지만 남쪽도 남아선호 사상이 상당히 강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성휘 : 제가 키워보니까 딸이 좋습니다. 아들은 너무 사고뭉치고요. 제일 좋은 건 딸, 딸 같습니다. 딸이 좋아요.

진행자 : 문 기자, 본인도 아들이잖습니까?

문성휘 : 그래도 딸은 시집 잘 가면 팔자 펴고 딸은 못 살아도 부모를 잘 챙기죠. 아들은 잘 산다고 해도 부모를 잘 안 챙기는데 제가 보기엔 이건 어느 사회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북쪽은 더합니다. 잘 산다는 게... 물론 장사도 있지만 권력이 있는 경우가 많죠. 그러면 만나기조차도 힘들고요. 뭐? 내 아들이 중앙당 아파트에서 사오... 자랑을 해도 부모가 가면 들여도 잘 안 놔요... 거기다 시골 출신이라면 아들은 분명 성분 좋은 여성이랑 결혼은 했을 것이고, 시골 출신 부모가 가면 빤하죠.

진행자 : 아들은 북한에서도 별로 환영 못 받네요. (웃음) 그래도 두 분 다 아들이 키우시잖습니까? 소연 씨는 어떠세요?

박소연 : 저도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백번도 합니다. 지금 금방 13살인데 대화가 안 됩니다. 재미가 없어요. 아들은 같이 있으면 사촌이고 약혼하면 팔촌이고 결혼하면 남이라는데 딱 맞아요. 지금도 열 마디 하면 아니, 응... (웃음)

진행자 : 치고 박고 친구들과 싸우고 그런 사고는 안칩니까?

박소연 : 2달 어간에 2건 했네요. (웃음) 달달이 한 건씩 하죠? 우리 아이가 막 누구를 때리거나 하는 아이는 아닌데요. 지난달에 학원에서 친구들끼리 다툼이 있었는데 얘가 워낙 말이 없이 가만있으니까 애들이 막 의자를 흔들었나 봐요. 그러니까 우리 아들이 화가 나서 애들이 앉았던 책상을 확 뒤로 밀쳤는데 3명이 쪼르르 넘어지고 맨 끝에 앉았던 아이는 넘어지면서 팔목이 금이 가서 깁스를 했습니다.

진행자 : 그렇게 되면 보상도 해줘야하고 좀 복잡해지지 않나요?

박소연 : 주변에 남조선 사람들에게 이럴 땐 어떻게 하느냐 물어봤더니 만나서 해명하고 사과하라고.. 보상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큰 사고 아니고 그 아이가 잘못이 있으니 찾아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해서 전화로 사과했어요. 그 집 할머님도 흔쾌히 받아들여서 괜찮다 했고 아이들끼리 싸우지 않도록 주의를 주기로 하고 잘 마무리 됐습니다.

진행자 : 애들 싸움이 부모 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은데 다행히 잘 마무리 됐네요. 어떠세요, 문 기자님 아드님도 보통이 아니라서 비슷한 경험 있을 것 같습니다. (웃음)

문성휘 : 많죠. (웃음) 나 자신도 그랬고 아이들 녀석도 더 속이 탄다는 건 말이 아니죠. 애는 북한식으로 말하면 혁명화까지 다녀왔습니다.

진행자 : 혁명화요?

문성휘 : 여기는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뭘 잘 못하면 봉사하게 하는 거요.

진행자 : 아... 네, 경미한 잘 못이면 봉사활동으로 처벌을 하죠? 몇 십 시간 또는 몇 백 시간... 이렇게 봉사 시간을 줍니다.

문성휘 : 네, 같은 북한 아이들끼리 싸웠는데 온지 얼마 안 됐을 때니까 북한처럼 생각한 거죠. 아이들 싸움에서 애가 다른 아이들을 때렸답니다. 부모들은 이미 정착 연한이 있는 사람들이라 제가 찾아갔어요. 아들들 보험을 들었냐? 들었으면 보험처리를 하시라, 우리 다 같은 탈북자들이라 처지가 다 비슷하고 돈이 있어 봐야 도토리 키 재기라고. 누가 잘 하고, 잘 못 했느냐 따질 수 없지 않냐... 처음부터 누구에게 물리적인 보상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분들, 후에 저에게 아무 말도 안 하고 다시 전화도 안 하시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경찰은 가만 두지 않더라고요.

진행자 : 폭력 사건... 그러니까 크지 않고 작은 싸움이라도 경찰서에 신고가 들어가면 꼭 이런 식으로 처리가 돼야 한답니다.

문성휘 : 네, 맞아요. 그래서 전라남도 시골에 있는 장애인 요양시설에서 2달 간 목욕도 시켜주고 함께 산보도 하고, 식사도 도와주고 했습니다. 아마 북한 사람들, 남한엔 이런 게 있었나 하실 겁니다.

박소연 : 저도 처음 알았네요...

문성휘 : 이건 예전에 그.. 한화그룹 회장도 사회봉사 처벌은 1백일 다녀오지 않았습니까? 저는 어떻게 하겠니, 잘 못 저질렀으니 다녀와라 했는데...

진행자 : 아드님만 가고 같이 싸운 다른 친구들은요?

문성휘 : 그 아이들은 맞았고 애는 친구들을 때렸으니까 아들 녀석만 간 거죠. 그래 갔는데... 이 녀석이 두 달 지났는데 안 오겠다는 겁니다! (웃음) 저는 젊은 아이인데 거동도 불편하고 나이든 분들을 도와주는 걸 힘들어하지 않을까, 그리고 북한에선 그런 직업을 좀 천시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가서 일도 안 하고 말썽을 피우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안 오겠다니... (웃음) 저 정말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릅니다.

진행자 : 왜 안 오겠다고 했을까요?

문성휘 : 거기 선생님들이 너무 좋답니다. 신부님이 계시는데 너무 잘 해주고 누나들도 자기를 귀여워한다고... (웃음) 중학교도 졸업을 못한 게 졸업장도 받아야하는데...

진행자 : 그 때가 남한에 온지 얼마나 됐을 때인가요?

문성휘 : 한 6개월쯤이요? 아무것도 모를 때죠. 아유, 그 때 내가 답답하던 걸 생각하면....(웃음)

진행자 : 그런데 저는 봉사 활동 처벌 받는 것을 혁명화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맞죠... 북한식으로 생각하면 혁명화 맞습니다.

문성휘 : 혁명화 맞죠. 그러나 북한 혁명화는 다릅니다. 나쁘죠... 가면 사람을 죽이는데요. 육체적으로 죽이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완전히 죽여 버립니다. 사람 취급을 안 하고요. 여기는 그렇게 간다고 해서 사람 취급을 안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랬다면 집에 돌아가겠다고 계속 전화했을 텐데 아예 안 오겠다고...

진행자 : 근데 혁명화는 되었습니까?

문성휘 : 네, 혁명화는 확실히 됐습니다. 그 일이 있고난 뒤엔 이제 맞으면 맞았지, 절대 때리지 않을래. 그리고 누군가 나를 좀 세게 때렸으면 좋겠다고 자기가 보상을 받겠다고... (웃음) 여기는 이렇게 쌍방이 싸우면 서로 합의금을 내고 합의를 하지 않습니까?

박소연 : 혁명화가 전혀 안 됐는데요? (웃음)

진행자 : 북한에서 주먹으로 해결하던 버릇이 아직 있어서 문 기자 아드님 뿐 아니라 탈북 청년들이 초기에 비슷한 사고를 많이 칩니다.

문성휘 : 그렇습니다. 북한 같으면 보안원들이 그런 싸움을 쳐다보지도 않죠. 그러나 여기는 다르다는 걸 배우는 겁니다. 조금만 주먹질을 해도 경찰이 반드시 개입을 하고 반드시 법적 책임을 져야한다... 이건 딱 인식이 박혔어요.

박소연 : 근데 남한도 좀 잘 못 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 엄마한테 엄청 맞으면서 살았지만 그게 나 잘 되라고 그런 것이지 악으로 때린 건 아니잖아요? 아시는 분이 딸이 늦게 다니고 너무 속을 썩여서 팔을 좀 휘둘렀답니다. 그랬더니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더니 30분 뒤에 경찰이 왔다고요...

진행자 : 그건 딸이 좀 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경우 많이 없는데요...

박소연 : 저도 우리 아들이 처음 남한에 막 왔을 때는 막 욕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점점 크니까... 얼마 전엔 학원을 안 갔기에 들어오는 걸 현관 앞에서 막 고함을 치고 혼내다가 제가 기운이 없어서 훌 쓰러졌어요. 그랬더니 우리 아들이 저한테 사죄를 하는 게 아니라 저를 넘어 들어가더라고요. (웃음) 북한 같으면 빨래 망치를 들고 해대겠는데... 여긴 빨래 망치도 없고 아들이 귀하게도 안 들어서... 이제는 그렇게 안 하려고요.

진행자 : 저희 방송이 미국 방송이잖습니까? 미국은 아들에 대한 훈육이라도 체벌에 굉장히 민감해요. 그래서 이런 얘기는 안 되겠지만... (웃음) 그러나 남쪽 문화는 아직도 엄한 부모들은 체벌을 합니다만 그 체벌의 범위라는 게 손으로 아무데나 마구잡이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부분이 잘 못했다고 얘기하고 회초리를 이용하는 편이고요. 또 요즘은 전혀 체벌을 안 하는 부모들도 많습니다.

문성휘 : 근데 정말... 소연 씨 말에 공감이 가는 것이 아이들이 약았습니다. 처음엔 딸애가 와서 영어 공부를 너무 안 해서 집에서 나가, 그랬습니다. 북한은 쩍하면 쫓아내거든요. 나가라 그럼 갈 곳이 없거든요? 다른 집들은 초저녁부터 다 드러누워 자는데 어딜 가겠어요? 주머니에 돈도 없고. 그럼 애들이 하는 수없이 문을 두드리며 울며 사정해요. 잘 못했다고 다신 안 그런다고... 처음에 그렇게 혼냈을 때는 막 잘 못했다고 공부 열심히 하겠고 문 열어 달라고 그러더니, 두 번째 그랬을 땐 알았어, 나 PC방 갈께... 여자 아이가 늦은 밤에 게임하는 PC방에 가면 야단이죠... (웃음) 이런 땐 진짜 막 속에서 열불이 나죠. 북한 같으면 빨래 망치로 막 두들겨 놓겠는데...

진행자 : 잘 못 했는데 더 혼내시지 그러셨어요?

문성휘 : 괜히 입이 아파요, 목이 터져요, 동네가 떠나가요. (웃음)

그래서 문 기자는 아이들 교육 방법이 남쪽에 와서 아주 골치 아파졌다고 말합니다.

북쪽 같으면 싸리 빗자루, 빨래 망치, 집에서 내쫓기 이렇게 세 가지면 해결됐는데 남쪽에선 일단 집에서 내쫓는 건 소용이 없고 체벌은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고 하고 또 분위기상 피하게 되고요...

결국 말로 해야 하는데 이게 보통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쉽고 빠른 길을 놓아두고 돌아가는 느낌이지만 그 길이 결국 아이들 입장에서 쉽고 빠른 길이 아니라 나를 위한 쉬운 길이었다는 걸 깨달았다고요. 그래도 역시 골치 아프긴 마찬가지지만요.

뭐 하나 쉬운 일이 없습니다... 소연 씨 아들은 이번 달에도 한 건 했다는데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죠.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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