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나라의 왕? 봉?

북 정권 수립 70주년을 맞아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 개막 공연 모습.

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 언급했던 ‘민족 공동의 경사’ 9.9절 북한정권수립 70주년 행사가 성대히 개최됐습니다.

모두가 예측했던 것처럼 9월 9일 오전 김일성광장에서는 김정은내외 외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 리잔수, 러시아 상원의장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등 외교사절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병식이 진행되었습니다.

대륙간탄도미사일,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등 미국과 국제사회를 자극할만한 무장장비는 등장하지 않아 다행입니다. 아마도 곧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있고, 또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미 트럼프대통령과 서신외교를 주고받는 와중이라 도발적인 행동을 자제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5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대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이 하이라이트를 장식했죠. 여기에도 반미구호, 핵과 관련된 문구는 사라졌습니다. 대신 김정은의 외교업적을 칭송하고 경제성과를 독려하는 것을 선택했죠.

드론을 활용해 공중에 ‘빛나는 조국’이라는 이번 집단체조 주제를 새긴 것도 특징적입니다. 레이저를 활용한 쇼도 등장했는데요, 북한이 강력한 대북제재를 받고 있음에도 높은 기술을 요구하는 이런 공연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트럼프 미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이번 북한의 제스처가 아주 긍정적이라고 김정은에게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외무상은 이러한 북한의 행동이 비핵화 진정성의 표시라고 치켜세우기도 했죠.

현재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는 배경대 카드섹션을 통해 4.27 남북정상회담을 묘사했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악수하는 장면, 두 정상이 판문점선언에 서명하고 포옹하는 모습, 기념식수하는 장면을 수록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4.27 선언 새로운 력사는 이제부터’, ‘우리민족끼리 통일의 새 력사를 써가자’라는 글귀도 등장했습니다.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매체들은 공연소식을 일제히 보도하면서 이번 공연이 서장 ‘해 솟는 백두산’, ‘사회주의 우리 집’, ‘승리의 길’, ‘태동하는 시대’, ‘통일 삼천리’, ‘국제친선’의 장으로 구성됐다고 전했습니다.

김부자 출연으로 백두에서 혁명의 닻이 올라 인민들이 화목한 사회주의 지상낙원을 건설했고, ‘미제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을 보위’했으며, 격동적인 변화와 발전의 역사를 지나 조국통일의 밝은 미래가 눈앞에 다가왔고, 또 북한은 국제적으로 유례없는 자주부강국가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줄거리입니다. 수만 명의 어린이, 학생들이 고생고생해서 창작한 집단체조입니다.

그리고 보통 중앙보고대회는 전날 하는데 이번에는 당일에 한 것도 특징적이죠. 북한에서는 어린이는 나라의 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간부들은 인민의 심부름꾼이라고 하죠. 또는 봉사자라고 합니다.

언젠가 김정일이 집단체조를 관람하면서 주변 간부들에게 여기 손주나 손녀가 집단체조에 참가한 사람 손들어 보쇼라고 했죠. 그런데 고위관료들 중에 집단체조에 내보낸 간부는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겁니다.

결국 북한은 아무리 겉으로는 어린이가 나라의 왕이라고 해도 실제로는 나라의 봉이고, 간부들은 심부름꾼이 아니라 인민위에 군림하는 통치자들이죠. 왕과 봉 사이에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는 거 아닌가요?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