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도, 사과, 포도계층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원
2019.07.22
local_vote_b 지난 21일 북한 각지에서 도·시·군 등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2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지난 일요일 북한에서는 또 한 차례의 지방인민회의 의원선거가 치러졌죠. 어김없이 유권자의 99.98%가 참가했고 100%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북한당국은 인민주권이 더욱 강화됐다고 선전했고 ‘오늘의 선거는 일심단결의 위력으로 전진하는 우리 식 사회주의의 불패성을 남김없이 과시하는 중요한 정치적 계기’라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오늘 선거자들이 바치는 찬성의 한 표 한 표는 우리의 사상과 제도, 우리의 생활을 말살하려는 원수들에게 내리는 준엄한 철추, 모든 선거자들이 선거를 계기로 경제건설 대진군에 더 큰 박차를 가해나갈 의지를 가다듬어야 한다’고 의미부여하기도 했죠.

뭐 의례히 북한에서 반복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외부에서 보기에는 정치체제의 획일주의, 전체주의, 경직성에 그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원래 선거란 복수의 또는 그 이상의 후보자들이 나서 서로 정책경쟁을 하고, 선거운동을 하고, 여러 정당이 참여해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삶을 만들겠다고 지향해야 지극히 정상인데 북한에서는 노동당 1당 체제, 단일 후보, 당국의 지목에 의한 후보자 선발, 주민들의 무조건적인 투표와 무조건적인 찬성이 수십 년간 지속되고 있습니다.

결국 다양성이 완전히 무시되고 노동당 정책과 다른 또는 더 좋은 목소리가 불가능한 그런 선거이기 때문에 사실상 선거는 주민들이나 유권자들에게는 무의미하고, 선거가 가져다주는 모든 민주주의적, 긍정적 혜택이 사라지는 단순한 요식행위, 정치행사로 전락한 상태입니다. 정말 불행한 일이죠.

물론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가 모두 부정부패 없이 투명하게, 합리적으로 진행되고, 이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들이 유권자와 국민을 위해 100% 헌신적으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북한의 정치시스템보다는 선진적이고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라 하겠습니다.

북한이 이러한 선거를 통해 자기의 우월성을 남김없이 발휘한다는 수령․당․대중의 일심 단결된 북한사회, 과연 그 내면의 실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북한주민들 속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은어가 유행하고 있죠. 충성층은 사회주의 붉은 사상에 철저히 물들어 있어 안과 밖이 모두 빨간 ‘도마도’, 부동층은 겉만 빨갛고 속은 하얀 ‘사과’, 적대층은 절대로 빨간색으로 물들일 수 없는 ‘포도’라고요.

원래 북한의 복잡하고 정교한 성분제도, 그 구체적 내용은 노동당 간부들, 보안기관과 인사사업에 관여하는 일부 사람들만 알고 있는 극비인데 지금 주민들은 눈이 많이 떠 대체로 그 내용을 숙지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노동당에 입당하지 못한다든가, 자녀들이 공부를 뛰어나게 잘 하는데 좋은 대학에 추천받지 못하거나, 인민군대에 나가지 못한다거나, 혼인 대상자와 갑자기 헤어진다거나 등 일상에서도 이를 많이 감지하고 있습니다.

한번 가정적 배경, 성분에 낙인찍히면 본인은 영원히, 그리고 자녀들 몇 대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가장 악랄한 성분 제도를 운영하고 있죠.

결국 인민대중제일주의, 이민위천, 선거를 통한 인민주권 강화, 이 모든 것은 일부 지배계층인 ‘도마도’를 위한 위선, 강요가 아닐까요?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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