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을 탈출하다 희생된 사람들

2005-09-29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목요 주간기획 동독난민 이야기, 오늘은 동독을 탈출하다 희생된 사람들에 관한 조사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소개해드립니다.

hildebrant-200.jpg
'8월13일 작업반’의 알렉산드라 힐데브란트 대표 - RFA/김연호

1962년 4월 스물 세 살의 클라우스 브루에스케 (Klaus Brueske)는 친구 두 명과 함께 베를린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하기로 했습니다. 이들은 트럭을 타고 국경 초소로 돌진했습니다. 짐칸에는 국경수비대의 총알 세례에 대비하기 위해 모래를 잔득 실었습니다.

트럭은 국경수비대의 사격을 뚫고 서베를린 땅으로 250미터 정도 들어간 뒤 건물벽을 들이박고 멈췄습니다. 브루에스케는 목과 손에 총상을 입고 쓰러졌습니다. 차에 실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브루에스케는 이미 숨져 있었습니다.

브루에스케처럼 동독을 탈출하다 숨진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베를린에 본부를 둔 한 시민단체가 조사한 바로는 희생자들의 숫자가 천명이 넘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날짜를 따서 ‘8월13일 작업반 (The August 13 Working Group)’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 단체는 1945년 2차 대전이 끝난 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국경을 넘다 희생된 동독 사람들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recl_church-200.jpg

이 단체는 동독 인권 운동에 앞장섰던 라이너 힐데브란트 (Rainer Hildebrant)가 40여년 전 세웠습니다. 힐데브란트가 90살을 일기로 작년에 세상을 떠난 뒤에는 그의 미망인 알렉산드라 힐데브란트 (Alexandra Hildebrant)가 희생자 조사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베를린 검찰청에서 발표한 210명이라는 숫자는 가해자가 분명히 드러난 경우만을 모아 놓은 겁니다. 독일정부는 동서독이 통일된 후에 동독 공산정권 아래서 범죄행위를 한 사람들을 조사해서 처벌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동독을 탈출하려다 국경수비대에 살해당한 사람들도 함께 조사된 거죠. 또 중앙정부 차원에서 비슷한 조사를 한 결과 희생자들의 숫자는 모두 421명로 늘어났습니다.

manfred-200.jpg
만프레드 피셔 목사 - RFA/김연호

우리가 현재까지 조사한 바로는 희생자들이 모두 1,135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조사를 더 진행할수록 숫자는 계속 늘어날 겁니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사례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우리 단체가 발표한 숫자가 정부 발표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건 우리가 조사 기간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16년 전인 2차 대전 직후부터로 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가해자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들까지 모두 계산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국경근처에 있는 강이나 바다로 탈출하려다 빠져 죽은 사람들도 저희는 희생자 명단에 올리고 있습니다.

베를린 베르나워 거리에 있는 화해의 교회 (The Chapel of Reconciliation)에서는 탈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예배를 매일 올리고 있습니다. 매일 한 명씩 희생자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만프레드 피셔(Manfred Fischer) 목사는 희생자들의 신상에 관한 정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Fischer: There is no good proved book of biographies until now. So we started with very, very few information.

희생자들의 신상을 제대로 검증해서 모아 놓은 책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처음 추모 예배를 시작할 때 가진 정보가 정말 별로 없었습니다. 지금은 역사학자들이 참여하는 연구사업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탈출 희생자들을 모두 알아내서 그들의 사연을 자세히 기록하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김연호기자

하고 싶은 말 (0)
Share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