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기획 “동독 난민 이야기” - 동독 난민 문제의 역사

2005-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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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진 동독이란 나 &# xB77C;는 냉전 시절 소련의 위성국으로 남아있다 공산주의가 붕괴될 조짐을 보이던 지난 90년 서독에 의해 전격적으로 흡수 통일된 나라입니다. 당시 동서독 통일의 물꼬를 튼 데는 공산주의 붕괴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서독행을 감행한 동독 난민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동독 난민 이야기’에서는 1945년 2차 대전이후 분단된 이후 1990년에 다시 통일될 때까지 동서독이 분단국가로 지내면서 겪어야 했던 동독 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오늘은 그 첫 번째 순서로 동독 난민 문제가 발생하게 된 배경에 대해 알아봅니다. 김연호 기자가 진행합니다.

냉전 시절 지구상에서 대표적인 분단국가로는 흔히 동서독과 남북한이 꼽혔습니다. 냉전이 끝난 지 15년이 흐른 지금 동서독은 지난 90년 마침내 통일을 이룬 반면에, 남북한은 여전히 분단국으로 남아 있습니다. 동서독과 남북한을 단 &# xC21C; 비교할 수는 없지만 요즘 중국 혹은 제3국으로 피난 나오는 탈북 난민에 관한 뉴스가 봇물을 이루는 것을 보면 냉전 시절 자유진영인 서독을 향해 필사적인 자유의 피신을 결행했던 동독 난민들을 연상해봄직 합니다.

1945년 2차 대전이 끝난 후 패전국인 독 &# xC77C;은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게 됩니다. 서독은 자유진영인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으로 이뤄진 연합군 측이 그리 &# xACE0; 동독은 공산진영의 소련이 점령해 통치했습니다. 이어서 소련 &# xC758; 공산주 &# xC758;와 연합군 측의 자유민주주의간의 이데올로기 대립이 심해지면서 냉전체제가 굳어지자 결국 1949년에 동독과 서독 양쪽에 정부가 들어서고 동서독의 분단이 공식화됐습니다. 그리고 1952년부터는 동서독간의 국경이 봉쇄돼서 동서독간에 사람과 물자가 교류되는 통로도 막히게 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사실 하나는 2차대전직후 독일의 수도였던 베를린시를 또다시 동서로 &# xB098;눠 서베를린은 연합군이, 동베를린은 소련이 나눠서 &# xD1B5;치했다는 것입니다. 베를린을 분할 통치하기로 한 것은 2차대전을 일으킨 독일 나치정권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지리적으로 베를린시는 동독 안에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서베를린은 &# xB9C8;치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섬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동서독 분단체제가 공식화된 1952년 이후에도 이런 상황은 계속됐는 &# xB370;, 다른 국경은 모두 봉쇄됐지만 베를린시에서만큼은 동서독 양측간의 교류가 활발하게 유지됐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산주의 통치아래 있던 많은 동독 사람들이 정치경제적인 자유를 찾아 서베를린으로 넘어갔습니다.

베를린 장벽의 역사에 관한 책 ("Driving the Soviets up the Wall: Soviet-East German Relations, 1953-1961")을 저술한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의 호프 해리슨 (Hope Harrison) 교수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당시 서베를린은 동독사람들에게 서구 자본주의의 성공을 알리는 아주 훌륭한 통로 역할을 했습니다. 서베를린은 동독이라는 공산주의 땅에 둘러싸인 자본주의 섬나라였으니까요. 그래서 연합군측은 1950년대 기간동안 서베를린에 엄청난 지원을 해줘서 경제적으로 아주 매력적인 도시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그러나 서베를린으로 넘어가는 동독 난민들의 수가 걷잡을 수 &# xC5C6;이 불어나게 되자, 동독당국은 1961년 결국 동서베를린 사이에 40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콘크리트 장벽을 설치해서 동독난민들이 서독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설치되기 전까지 서베를린으로 넘어간 동독난민은 매년 수십만 명을 헤아렸습니다. 동독 당국으로서는 더 이상 동독의 인력이 한없이 빠져나가는 것을 구경만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고 난 다음에도 서독으 &# xB85C; 탈출하려는 동독난민들의 시도는 계속됐습니다. 동서베를린 간에는 아주 제한적이나마 여전히 교류의 문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이용해 몰래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려는 동독난민들이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해리슨 교수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당시 서독 사람들 중에는 동독난민들의 탈출을 도운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차량을 개조해서 거기에 &# xB3D9;독난민을 몰래 숨겨가지고 동베를린을 빠 &# xC838;나온 게 가장 잘 알려진 예 가운데 하나입 &# xB2C8;다. 또 어떤 사람들은 베를린 장벽 밑으로 땅굴을 파서 빠져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동독 경찰에 발각돼서 붙잡히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한편 민간차원 뿐만 아니라 서독 정부차원에서도 동독인들을 서독으로 데려오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서독정부는 동독의 정치범들이나 서독으로 탈출하려다 구속된 동독인들을 돈을 주고 넘겨받았습니다. ‘정치범 석방거래’(Freikauf)로 불린 이 계획을 통해 1963년에서 89년 사이에 모두 약 3만4천명의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넘어올 수 있었습니다.

동독에서 서독으로 직접 탈출하는 방법 외에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폴란드 같은 이웃나라들을 통해 탈출하는 방법도 시도됐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80년대 중반 소련에서 시작한 개혁개방 정책을 이들 동유럽국가가 받 &# xC544;들인 다음에야 비로소 가능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이 이웃 &# xB098;라들이 2차대전 동안 독일에게 고통당한 역사를 잊지 못해 동독 난민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정치적으로 동독정부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89년 개혁개방을 표방한 헝가리는 독일 난민들에게 국경을 열어줘 오스트리아를 거쳐 서독으로 넘어가게 해줬습니다. 또 수많은 동독난민들이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폴란드에 있는 서독 대사관에 진입해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같은 해 동독에서도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면서 결국 동서냉전의 상징물로 여겨졌던 베를린 장벽이 89년 11월 철거됐습니다. 물론 서베를린으로 넘어가는 동독난민의 물결을 막는 장벽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동독은 이듬해인 90년 서독에 흡수 통일됐고, 동독난민 문제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주간기획 “독일난민 이야기” 오늘은 독일난민 문제가 &# xC0DD;기게 된 배경을 알아봤습니다. 다음주에는 동독 난민 출신의 볼프강 웰쉬 씨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김연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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