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기획 “동독 난민 이야기” - 디터 뎃케 박사의 누나 구출 작전

2005-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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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진 동독이란 나라는 냉전 시절 소련의 위성국으로 남아있다 지난 90년 서독에 의해 전격적으로 흡수 통일된 나라입니다. 당시 동서독 통일의 물꼬를 튼 데는 공산주의 붕괴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서독 행을 감행한 동독 난민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은 동독난민 출신 디터 뎃케 (Dieter Dettke)씨가 동독에 남겨진 누나를 구출하려고 한 이야기를 소개해드립니다. 진행에 김연호 기자입니다.

디터 뎃케(Dieter Dettke) 씨는 1953년 가족과 함께 자유를 찾아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했습니다. 당시 열두 살의 어린 소년이었던 뎃케 씨는 부모님과 할머니 그리고 이모와 함께 난민수용소에서 1년 정도 생활한 뒤 서독 뒤셀도르프 (Dusseldorf)에서 새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뎃케 씨는 트럭 운전사로 일하는 아버지 밑에서 넉넉하지는 않지만 자유로운 서독 사회를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뎃케 씨 가족에게는 커다란 근심이 하나 있었습니다. 동독에 아직도 뎃케 씨 누나가 살고 있었던 겁니다.

Dieter Dettke: 우리 가족이 동독을 탈출할 당시에 우리 누나는 이미 동독에서 결혼 준비를 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원래 우리 누나는 서독으로 건너가서 대학공부를 하고 있었는데요, 결혼할 남자가 생겨서 동독으로 되돌아갔던 겁니다. 그 당시는 아직 베를린 장벽이 생기기 전이라 서독과 동독 사람들이 상대방 지역에 가서 공부하고 교류하는데 별로 장애가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우지기 전까지 뎃케 씨 가족처럼 동독 당국의 제재가 약한 틈을 타고 서베를린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백오십만 명이 넘었습니다. 당시 베를린은 2차대전 전승국인 미국과 영국, 프랑스, 그리고 소련이 분할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동베를린을 점령하던 소련은 동독 주민들의 서독 방문에 대해 특별한 제한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두뇌 유출을 겪은 동독 당국은 소련을 부추겨 가며 결국 1961년에 베를린 장벽을 세워서 동독 주민들의 탈출을 봉쇄했습니다. 그 후로 뎃케 씨 가족들은 동독에 두고 온 뎃케 씨 누나에 대한 근심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결국 1967년 그러니까 뎃케 씨가 26살이 되던 해에 누나를 동독에서 탈출시키려는 계획이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DD: 서독에 있는 우리 매부 친구들이 누나 가족의 탈출계획을 짰습니다. 매부는 건축기사였는데 서독에서 공부하는 동안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 놓았습니다. 이 친구들이 매부에게 서독으로 와서 같이 일하자며 탈출을 제의한 겁니다. 또 제 친구들도 탈출 계획을 함께 거들었습니다. 저는 그 중간에서 연락책을 맡았는데요, 우리 계획은 누나 가족에게 줄 가짜 프랑스 여권을 들고 동독에 들어가서 누나 가족과 함께 동독에서 덴마크로 가는 기차를 타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계획이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프랑스 말을 좀 할 줄은 알지만, 만약 프랑스 말을 제대로 할 줄 아는 동독 경찰을 만난다면 모든 게 금방 들통 날 수 있었죠. 그리고 누나에게는 어린 두 딸이 있었는데, 만약 동독 경찰이 이 아이들에게 프랑스 말로 질문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프랑스 말을 할 줄 몰랐거든요. 만에 하나 동독 경찰에 발각되는 날에는 우리 모두 끌려가서 감옥살이를 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탈출계획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비록 누나 가족을 탈출 시키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뎃케 씨는 누나를 가끔씩 만날 수는 있었습니다. 이산가족의 경우에는 당국의 허락을 받아서 서로 방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DD: 동독 정부는 이산가족의 상호 방문을 허용했는데요, 무조건 허용한 것은 아니고 가족이 병에 걸렸거나 사망한 경우 그리고 결혼식처럼 큰 가족행사가 있는 경우에만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동독사람이 서독에 있는 친지를 방문할 경우에는 가족이 모두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가족 중에 누군가를 꼭 동독에 남겨 두게 했습니다. 말하자면 볼모로 붙잡아 둔 것이죠. 서독으로 넘어간 뒤에 돌아오지 않으면 남아 있는 가족에게 해가 미칠 것이라는 경고였죠.

어쨌든 저는 이 이산가족 방문 사업 덕분에 누나를 만나러 동독에 갈 수 있었습니다. 누나도 가끔씩 우리 가족을 만나러 서독을 방문했습니다. 결혼식 때문에 몇 번 왔었고, 또 가끔씩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거짓 이유를 대고 온 적도 있었습니다.

뎃케 씨 가족은 1990년 동서독이 통일 된 후 감격의 상봉을 했습니다. 그 때는 물론 동독 당국의 허가를 받을 필요도 없었고,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핑계를 댈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서독가족을 만나기 위해 남편이나 자식을 동독에 볼모로 남겨둘 필요도 없었습니다.

주간기획 “독일난민 이야기” 오늘은 동독출신 디터 뎃케 씨가 동독에 두고 온 누나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다음주에는 동독난민 수용소 자리에 세워진 박물관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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