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기획 “동독난민 이야기” - 존 앨트너의 동독 난민 탈출 돕기 (1)

200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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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기획 “동독 난민 이야기” 시간, 오늘은 1964년 동베를린에 사는 한 가족의 탈출을 돕다 동독 국가보위부 감옥에 갇혔던 존 밴 앨트너 (John Van Altena)씨의 얘기를 소개해드립니다.

미국인 존 밴 앨트너씨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1961년 독일 괴팅겐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1년 동안 살았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밴 앨트너씨는 독일 생활을 잊지 못해 결국 독일 자유베를린 대학 법대에 입학했습니다.

1964년 새 학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던 밴 앨트너씨는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사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거기서부터 동독과의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같이 일하면서 친하게 지낸 베르너 클로쓰씨에게는 남모를 고민이 있었습니다. 동베를린에 사는 사촌 가족을 어떻게든 탈출시키고 싶은데 마땅한 방법이 없었던 겁니다. 이 얘기를 들은 밴 앨트너씨는 자기가 돕겠다고 선뜻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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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10월 서독으로 풀려난 라베 부부

Altena: I guess as an American and appreciating the freedom to travel openly, I found it very difficult to understand how the communist regime in East Germany was able to stifle or completely prevent people from traveling.

미국 사람들은 자유롭게 여행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죠. 저도 마찬가지구요. 그래서 자유로운 여행을 억압하는 동독 공산정권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동서독은 사실 두 개의 나라가 아니라 갈라진 민족이라고 봐야 옳을 겁니다. 국경을 사이에 두고 가족과 연인이 헤어져 살았으니까요. 그때는 그냥 이런 생각에서 베르너를 도와주기로 한 겁니다.

그리고 스물두살의 젊은 나이에 그 정도 위험한 일은 한번 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었죠.

클로쓰씨의 사촌 유르겐 라베는 아내와 네 살짜리 어린 딸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들을 헝가리로 먼저 빼낸 다음에 서독으로 데려올 계획이었습니다.

일단 헝가리에만 도착하면 서방진영인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데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국경검문이 동독만큼 철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모녀를 숨기기 위해 차 짐칸과 뒷좌석 사이에 있는 이 연료통을 4분의1로 줄이고 그 자리에 작은 짐칸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헝가리로 빠져나가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헝가리 관리 한 명이 초청을 해주기 했지만, 초청장 허가가 쉽게 나지 않았습니다.

밴 앨트너씨는 할 수없이 위험부담이 큰 계획을 준비했습니다. 탈출 준비가 시작된 이상 동독 국가보위부의 감시망에 걸려들기 전에 서둘러야 했기 때문입니다.

Altena: We rebuilt a gas tank in an American Ford which was large enough to hold the daughter.

미국 자동차 포드를 개조했습니다. 차가 워낙 컸기 때문에 연료통도 사람이 겨우 들어가 누울 수 있을 정도는 됐습니다. 차 짐칸과 뒷좌석 사이에 있는 이 연료통을 4분의1로 줄이고 그 자리에 작은 짐칸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두 모녀를 눕혔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꼭 안고 있었는데, 아이에게는 미리 수면제를 먹여 놓았습니다. 검문소에서 애가 소리를 내면 안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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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라베씨의 아내 바르벨과 딸 사브리나를 탈출시키고, 다음날 다시 동베를린에 돌아와서 같은 방법으로 라베씨를 데리고 나올 계획이었습니다.

베를린 장벽 가까이 가자 동독 국경검문소가 나타났습니다. 까다롭기로 이름난 국경수비대도 미국인이 탄 차는 보통 그냥 보내주었습니다.

라베씨 가족을 탈출시키기 위해 동베를린에 들어올 때도 그랬고 그전에 몇 번 시험 삼아 들락날락 할 때도 그랬습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밴 앨트너씨는 외투 안쪽에 총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차를 몰고 그대로 미군 지역으로 돌진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검문소에 닿자마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우선 경비대원들이 평소보다 두 배 정도 더 많이 있었습니다. 여권을 검사한 경비대원은 다짜고짜 짐칸을 열라고 소리쳤습니다. 순식간에 대여섯명의 경비대원들이 몰려와 차를 수색했습니다.

차 밑을 들여다 보고 뒷좌석을 꼬챙이로 쿡쿡 찔러보기도 했습니다. 뒷좌석을 억지로 뜯어내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밴 앨트너씨도 이 정도는 미리 예상했었기 때문에, 뒷좌석이 움직일 리 없었습니다. 경비대원들은 앞좌석을 아예 뜯어내고 차 앞뚜껑도 열어서 그 밑을 샅샅이 조사했습니다.

의심될만한 게 나오지 않자 경비대원들은 밴 앨트너씨를 검문소 건물 안으로 끌고 갔습니다. 몸 수색 결과 총이 나오자 보위부 요원은 “이 총을 진작 쓰지 그랬어. 네 놈을 기다리고 있었는데.”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라베씨의 친척 한 명이 상금을 노리고 보위부에 밀고를 했습니다. 보위부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던 겁니다. 결국 차는 완전히 해체됐습니다. 물론 모녀가 숨어있던 짐칸도 발각됐습니다.

밴 앨트너씨와 라베씨 부부는 즉시 보위부 감옥으로 연행됐습니다. 아이는 친척집으로 보내졌습니다. 그 뒤 1년 반 동안 미국 정부는 밴 앨트너씨의 석방을 위해 동독 정부를 상대로 끈질긴 협상을 벌인 끝에 결국 그를 석방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주간기획 “독일난민 이야기” 오늘은 1964년 동베를린에 사는 한 가족의 탈출을 돕다 동독 국가보위부 감옥에 갇혔던 존 밴 앨트너씨의 얘기를 소개해드렸습니다. 밴 앨트너씨의 감옥생활은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김연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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