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기획 “동독난민 이야기” - 라이너 슈베르트의 동독 난민 탈출 돕기 (1)


2005.07.07

올해 60살의 라이너 슈베르트 (Rainer Schubert)씨는 어린 시절부터 서베를린에서 살았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베를린이 연합군과 소련군에 의해 분할 통치 됐을 때도 동베를린 지역을 갔다 오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뒤로는 동베를린에 살던 친구들의 얼굴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슈베르트씨는 동 베를린 사람들이 장벽을 넘다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동독 독재정권에 대한 울분을 삼켰습니다.

그러다 1963년 어느 날 어릴 적 친구 한 명이 동베를린에서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 정치범 수용소에 있던 이 친구는 서독 정부가 동독 정부에 돈을 주고 데려온 정치범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노베르트라는 이름의 이 친구는 동베를린을 탈출하기 위해 일부러 국경 수비대에서 근무했었습니다. 그러다 기회를 틈타 베를린 장벽을 넘으려고 했는데, 운이 따라 주지 못해 결국 붙잡혀서 정치범 신세가 됐던 것입니다.

노베르트씨는 서베를린에 정착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국경수비대에서 근무할 때 같이 탈출하자고 약속했던 친구 두 명이 아직 동베를린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노베르트씨의 고민을 들은 슈베르트씨는 이 두 명을 탈출시키기로 하고 계획을 짰습니다.

Schubert: At this time there were different ways. You may give East German (border guards) a West German passport.

탈출 방법이 몇 가지 있었는데요, 그중에 하나가 서독 여권을 위조해서 동독 국경 경비대에게 제시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경비대의 삼엄한 분위기에 눌려서 서독 사람 행세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이런 사람들은 노련한 보위부 요원들에게 여지없이 걸리고 말았죠. 그래서 이 방법은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마침 1972년에 동서독간에 통행 협정이 맺어졌는데요, 이 협정에 따라서 동독 경찰은 특별히 의심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독 사람들의 차를 검문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전까지는 검문소를 통과할 때마다 차 뒷좌석과 짐칸을 샅샅이 조사받아야 했습니다. 혹시라도 동독 사람을 차에 숨겨 놓았을까봐 그랬던 거죠. 그 당시에는 동서 베를린을 오갈 수 있는 통행도로가 네 개 있었는데요, 통행협정이 체결된 다음에는 이 통행도로에서는 신분증과 여권만 검사받으면 됐습니다.

우리는 이점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저와 노베르트는 동독 당국이 이 통행협정을 제대로 지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두 달 동안 차를 몰고 이 도로들을 일일이 돌아보고 왔습니다.

동독 경찰이 어디서 어떻게 검문을 하고 있는지 샅샅이 조사한 슈베르트씨는 휴게소 한 곳을 정해서 노베르트씨의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거기서 이들을 차에 태워 동독을 빠져나올 계획이었습니다. 당시 규정상 서독 사람들은 통행도로에서 동독 사람들과 만나거나 이들을 차에 태워 주지 못하게 돼 있었습니다.

휴게소도 동독 보위부 요원들이 하루 24시간 감시했고, 거기서 거는 전화는 모두 도청당했습니다. 그러나 슈베르트씨 일행에게는 묘안이 있었습니다.

Schubert: The two guys came in an old car. And we prepared the engine of this car that when they park this car on the rest station, the engine didn't work any longer.

노베르트의 동독 친구들에게는 고물 자동차를 타고 오라고 했습니다. 이 차가 휴게소 주차장에 왔을 때에는 엔진이 고장 나도록 해 뒀습니다. 그리고 이걸 핑계로 이 친구들을 우리 차에 태웠습니다.

물론 규정에는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보위부도 차가 고장나서 그런다니까 그냥 보내 줬습니다. 차에 몰래 숨는 것도 아니고 뒷좌석에 두 사람을 태웠기 때문에 의심을 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차가 휴게소를 빠져나와 통행도로를 달리기를 기다렸다가, 뒷좌석 뒤에 미리 만들어 놓은 구멍을 통해 두 사람을 짐칸으로 옮겼습니다.

검문소에서는 새로 체결된 통행협정 때문에 우리 차를 철저히 검사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앞좌석에 앉은 저와 노베르트의 신분증과 여권만 검사한 뒤에 차를 통과시켰습니다.

슈베르트씨 일행은 휴게소를 떠난 지 두 시간 반 만에 서베를린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탈출 성공을 서로 축하하며 잔치를 벌이던 슈베르트씨 일행은 여기서 멈추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동독에서 탈출을 꿈꾸는 사람들을 힘 닿는 데까지 돕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십대 초반의 이 청년들은 그 뒤로 1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동독에서 탈출시켰습니다.

태어난 지 넉 달밖에 안되는 갓난아기서부터 75살의 노인까지 슈베르트씨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다양했습니다. 그러나 1975년 슈베르트씨가 동독 보위부에 붙잡히면서 이들의 탈출 돕기도 막을 내렸습니다.

주간기획 “독일난민 이야기” 오늘은 1970년대에 동독 난민들의 탈출을 도운 라이너 슈베르트씨의 얘기를 소개해드렸습니다. 다음주에는 슈베르트씨가 동독에서 겪은 감옥생활에 대해 소개해드립니다.

김연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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