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엘리트의 역설] 북한에서 자기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직업?

서울-이승재 yis@rfa.org
202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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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엘리트의 역설] 북한에서 자기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직업?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 북측 대표단이 지난 2018년 1월 9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리는 남북 고위급회담을 위해 판문점 MDL(군사분계선)을 건너오는 가운데 북측 기자단이 앞에서 취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오늘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려고 합니다. 제가 보니 선생님도 신문기사랑 방송뉴스를 매일 빼놓지 않고 꼼꼼히 챙겨보세요. 북한에서도 로동신문을 꾸준히 보셨을 것 같은데요. 한국 언론의 기사는 북한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죠?

 

조현: . 사실 북한 사람들도 로동신문 기사 중에 김정은이나 로동당 업적 부분에선 100% 사실이 아니라는 걸 이젠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엔 볼 매체들이 많지 않고 새로운 소식에 대한 갈증도 깊어서 북한에선 저도 로동신문을 기다리며 봤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신입기자가 입사하면 사실을 보도하는 건 물론이고 공정하면서 객관성을 잃지 않는 기사를 작성하도록 기본적으로 교육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한국 사람들은 사실이 아닌데 사실인 것처럼 사람들을 호도하는 정치적 가짜뉴스들을 가장 경계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 국민들은 제대로 된 뉴스와 정보를 선별해서 볼 줄 아는 힘이 생기게 되는데요. 북한의 기자들도 앞으로 공정하게, 객관적인 시선에서 기사를 쓸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승재: 그렇군요. 그런가 하면 북한도 SNS, ‘인터넷 봉사망을 통해서 체제 선전 활동을 많이 하던데, 한국에선 SNS가 기사 역할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때론 개인의 SNS가 유명 언론사의 기삿거리가 되기도 하고요.

 

조현: 맞아요. 한국은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고요. 또 한국은 누구든지, 어떤 사안에 관해서도 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리면 누구나 볼 수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요즘은 개인이 쓴 글이 화제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최근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요즘 코로나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한국에서 식당 영업하는 분들이 지금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어떤 식당주인이 자신도 힘들었을 텐데 주변에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거나 삶이 어려워진 분들에게 따뜻한 한 끼를 무료로 대접했다고 합니다. 이분의 선행이 누군가의 인터넷 봉사망에 올라왔는데 사람들이 거기 큰 감동을 받은 겁니다. 요즘 한국 젊은이들이 쓰는 말 중에돈쭐내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이게돈으로 혼쭐내다의 줄임말인데, 어떤 사람이 옳은 일을 했을 때너 같은 사람은 돈 버느라 바빠야 정신차리지이런 의미에서, 반대로 돈으로 칭찬해 준다는 뜻이에요.

 

이승재: 저는 그 말 들을수록 기분 좋아지더라고요. 그래서 그 식당 주인, 돈쭐 좀 나셨나요?

 

조현: . 이런 선행이 알려져서 전국적으로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그 식당에 음식을 주문해서 돈까지 계산하고는 주소를 입력하지 않은 겁니다. , 한국에선 그렇게 식당에 음식을 주문할 수 있어요. 스마트폰으로 식당에 음식을 주문하고 자기 집주소를 입력하고 돈을 결제하면 집 앞까지 음식을 배달해 줍니다. 그런데 주소를 입력하지 않았으니 식당주인이야 돈은 받았는데 어디다 음식을 보낼 수도 없게 된 거죠. 이런 식으로 식당주인 돈을 벌게 해준, 훈훈한 일이 있었는데요. 이런 소식은 개인 글에서 시작됐고 이어 기자들에게 전해져 주요 방송사들마다 뉴스로 전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승재: 정말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소식입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에서기자라 그러면 예전엔 북한처럼 엘리트 지식인으로 사회적 영향력이 어마어마했는데 지금은 언론매체도 늘고,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게 되면서 사회적 지위는 좀 낮아진 느낌이 있어요. 그에 반해 북한은 언론의 자유가 없고 인터넷 봉사망 같은 것들을 이용할 수 없으니 제 생각엔 소수의 기자들이 가진 힘이 대단할 것 같은데요?

 

조현: . 기자의 영향력은 엄청납니다. 북한 사회에선 상류층이죠. 일단 북한에는 언론사가 얼마 안 되고 거기 종사하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기사 자체가 많지도 않고요. 우리가 엘리트 프로그램을 하는데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보면 북한에서 기자는 굉장히 엘리트입니다. 그런데 기자님도 아시다시피 한국에선 기자가 엘리트일 수도 있지만 아닌 사람이 더 많지 않나요?

 

이승재: 이거 점점 흥미진진해지는데요? 보통 우리 프로그램에서 다뤘던 여러 직업들은 한국에선 엘리트지만 북한에선 그만큼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는데요. 오늘은 특별한 경우네요. 북한에서 기자의 영향력이 그렇게나 큽니까?

 

조현: 북한에선 자기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직업이 거의 없습니다. 그 기회를 가진 사람이 기자고요. 기자의 손에 의해 기사가 나면 거기 등장하는 사람이나 기업은 살기도 죽기도 합니다. 스타가 되기도, 단숨에 무덤행 열차를 타기도 하죠. 좋은 기사가 나오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알아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니, 만약 어디에 기자가 취재 왔다고 그러면 북한에선 그 대접이 엄청납니다.

 

이승재: 과거 한국에도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1970, 80년대, 아니 90년대 까지도 언론사가 그렇게 많지 않았거든요.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던 시절이니 세상 돌아가는 일은 전부 언론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됐기 때문에 기자의 글엔 절대적인 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자가 온다고 하면 경찰이 오는 것만큼이나 무서워하기도 했고우리 글 좀 잘 써주십시오하면서 암암리에 돈 봉투를 건네던 문화도 있었죠.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요.

 

조현: 요즘 한국에서야 기사 잘못나면 해명이나 반론을 할 기회도 주어지니까요. 북한에선 기자한테 잘 걸려서 스타가 된 사례가 정말 많습니다. 1980~90년대에 평안남도 문덕군 용림리와 입석리 두 리의 협동농장은 군내의 경쟁관계였는데요. 원래는 용림리 측이 상대에 비해서 일을 잘 못했다고 해요. 그런데 한 기자가 취재왔을 때 용림리의 여자 관리위원장이 기자를 정말 잘 대접해서, 그때 좋은 기사 하나를 내주는 바람에 그 여성은 금세 최고인민위원회 대의원까지 됐답니다. 비슷한 시기에 함경남도의 검덕 영양광산 내 마그네사이트 생산하는 광산에서도 변변찮은 굴착기 하나 가지고 힘을 모아 일을 잘 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요. 이게 사실 별것 아닌 내용인데, 이 기사가 김일성의 눈에 들어 기사에 나온 5~6명은 영웅이 됐고 이후 드라마나 영화로도 각색되어 지금도 웬만한 사람들이 다 압니다. 반면에 2010년 즈음 평양방송 기자들이 평남 개천 보보협동농장에서 탈곡장 청소를 깨끗이 하지 않아 탈곡장에 곰팡이가 폈다는 기사를 써서, 거기 관계자들이 모두 산골로 쫓겨난 적도 있었죠.

 

이승재: 한국은 이렇게 언론을 통해 억울한 일을 당한 경우에 언론중재위원회라는 단체를 통해서 정정 보도를 요청할 수도 있고 혹은 급한 경우, 자기 인터넷 봉사망이나 다른 언론사를 통해서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는데요. 북한 사회에서 이런 일을 당하면 다시 회생하기가 어려울 텐데요.

 

조현: 회생은 거의 불가능하고요. 그대로 한 사람과 그 가족 인생까지 매장인 거죠. 그래서 전 이런 사건을 종종 보며 언론이 왜 필요한지,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곤 합니다.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알 권리의 제공인데요. 반드시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 사실을 기반으로 정부와 사회를 비판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북한 언론은 사실 대신에 정권의 속임수를 그대로 전할 뿐이고 사사로운 이욕을 따라 거짓을 말하기도 하고 작은 것을 포장해 크게 부풀리기도 합니다. 이것은 정말 잘못된 거죠. 기자는 사회를 올바로 이끌어나갈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야 정말 어느 사회에서든 필요한 엘리트 아니겠습니까?

 

이승재: 사실을 보도하는 것은 물론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 그것이 기자의 기본입니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은 북한에선 정말 쉬운 일이 아니겠죠. 그러나 전 세계 역사를 보면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기자들은 묵묵히 자신들의 역할을 해왔고 그 결과 많은 사회의 변혁을 이끌어냈습니다. ,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또 이어가겠습니다. 오늘도 청취해 주신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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