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중국도 무시한 김정은의 배짱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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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린성 옌지시 누리꾼들이 최근 89식 대전차 자주포 등이 중국과 북한 간 국경 부근으로 집결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글과 관련 사진 여러 장을 인터넷에 올렸다고 빈과일보가 23일 보도했다. 사진은 옌지시 시내를 통과하는 중국 탱크 모습.
중국 지린성 옌지시 누리꾼들이 최근 89식 대전차 자주포 등이 중국과 북한 간 국경 부근으로 집결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글과 관련 사진 여러 장을 인터넷에 올렸다고 빈과일보가 23일 보도했다. 사진은 옌지시 시내를 통과하는 중국 탱크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주는 남북 관계가 극과 극을 달린 기억에 남을 만한 한 주였습니다. 발단은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북한 군인들이 분계선을 몰래 넘어와 한국군 순찰로에 목함 지뢰를 묻어놓았는데 그것 때문에 남한병사 2명이 발목이 잘렸습니다.

지뢰 잔해를 살펴보니 송진 냄새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는 북한에서 생산된 새 목함 지뢰였습니다. 여기 남쪽은 목함 지뢰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또 고지에서 터졌으니 장마로 북에서 밀려온 것도 아니고, 의도적으로 설치한 것이었습니다.

북에선 남쪽이 자작극을 벌인다고 떠들지만, 과거 통제가 가능했던 군부독재 시절이라면 몰라도, 이제는 이런 조작극을 벌이기 거의 불가능합니다. 야당이니 시민단체니 다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와중에 도대체 뭘 얻자고 장병들을 부상시키면서까지 조작극을 하겠습니까. 만약 들키면 대통령이 물러나야 할 정도의 위기가 찾아오는데, 작은 것 얻겠다고 목숨 걸겠습니까. 이번 지뢰 도발은 북한의 짓이 맞습니다.

북에서 누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일개 부대장 지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정은 체제 들어서 까딱 잘못해도 해임철직 정도가 아니라 바로 처형되는데, 군단장이나 정찰총국장도 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누가 김정은에게 “우리가 가만있으니까 남조선 박근혜가 상대해주려 하지 않는다. 관심을 끌만한 사건 하나 만들어야 하겠다”고 제안했고, 김정은이 그러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김정은이가 직접 목함지뢰를 묻으라고 지시하진 않았겠지만, 아무튼 남조선의 무관심이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법도 합니다.

누가 그럽디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엔 북에서 달란 말을 하지 않아도 갖다 줬는데, 이명박 정부는 준다고 하고선 안주고, 박근혜 대통령은 준단 소리도 안하고 실제 주지도 않았다고 말입니다. 거기에다 또 요즘 김정은이 골치가 아플 일이 또 있지요.

중국 역시 남쪽처럼 김정은을 상대해주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 인민들은 잘 모르겠지만 요즘 북중 관계가 정말 최악입니다. 중국 지도급 간부들은 김정은이 철이 없고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며 싫어하는데, 그렇다고 김정은 체제를 무너뜨리면 미군이 바로 압록강까지 들어 올까봐 그냥 싫어도 참고 있습니다. 대신 예전처럼 북한 편의를 봐주지도 않습니다.

예전부터 북한이 중국의 관심을 끄는 방식은 항상 남쪽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을 때리면 북한이 대상이나 되겠냐 만은 남쪽은 만만하게 봤거든요. 여긴 전쟁하기 싫어하니까 아무리 큰일을 저질러도 김정은이 죽을 위기까진 가지 않을게 뻔합니다.

남쪽을 상대로 북한의 소행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사건을 일으키면 이목이 여기에 집중되겠죠. 군사적 긴장이 조성되면 미군이 움직입니다. 중국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미군이 북한의 도발을 이유로 항공모함이나 정찰기를 중국 근처에 갖다 놓는 것입니다. 미군 군함이 저기 제주도 앞에만 들어와도 베이징에서 비행기 뜨고 내리는 것까지 다 감시 가능합니다. 그러면 중국은 지금까지 북한을 이렇게 달래 왔죠. “그러지 말고 좀 참아. 뭐가 부족해서 그래. 우리가 줄게” 이러는데 그게 지금까지 북한이 재미를 본 방식이었습니다.

북한이 10월 10일을 올해 최고의 명절로 삼고 대대적인 행사를 하는 것처럼 중국은 9월 3일 항일전쟁 70주년 기념식이 최대의 명절이자 축제입니다. 이런 와중에 중국 앞마당에서 소란이 벌어지면 중국이 다급해져서 지금까지 무시하던 정책을 버리고 또 북한을 얼리려고 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번 도발은 안 통한 것 같습니다. 중국이 열 받아서 “남의 잔치에 재를 뿌리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가뜩이나 눈 밖에 난 김정은이 더 눈 밖에 난 것 같습니다. 이번 열병식을 계기로 봐도 중국이 김정은을 더 이상 혈맹이니 동맹이니 하는 눈으로 봐주지 않는 것이 확실합니다.

김정은이가 중국 열병식에 참석하겠다면서 두 가지 제안을 했는데 다 거절당했습니다. 하나는 내가 가면 박근혜 대통령을 초청하지 말아달라고 했는데, 중국이 우리가 누굴 초대하던지 상관 말라고 단칼에 거부했답니다.

또 하나는 항일전쟁 70주년 기념식 행사에 가면 김정은을 좀 특별대접 해달라, 다시 말하면 다른 정상을 1시간 만나면 김정은은 한 3시간 만나고 신문에도 크게 내달라 뭐 이런 걸 제안했는데, 중국이 이번에 오는 30여명의 외국 정상과 똑같이 대접하겠다고 대답했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이번에 중국은 한국을 엄청 배려해 주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주석단에 서니, 6.25전쟁 때 남쪽 입장에선 적으로 싸웠던 지원군 부대를 열병식에서 제외시켰습니다. 또 17개국 외국 군대가 와서 열병식에 함께 참가하는데, 박근혜 대통령 앞을 인민군이 행진하는 것을 의식했는지 북한군을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한국군은 군사 참관단이 갑니다.

이렇게 보면 중국이 북한보다 한국에 훨씬 신경을 쓴 것 같은데,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중국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북한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국에 가서 사는 한국인만 100만 명이 넘고 한중 무역규모는 3000억 달러가 넘습니다. 반면 북한은 무역의 9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면서도 겨우 무역액이 60억 달러밖에 되지 않습니다.

결국 무시당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김정은은 최룡해를 대신 보냅니다. 분계선에서 도발한 것도 전혀 먹히지 않았습니다. 남쪽이 과거와 달리 기가 죽지 않고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로 맞서면서 김정은은 결국 머리를 숙여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전화위복이란 말이 있듯이 지뢰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대결상태로 치닫던 남북관계가 화해 분위기를 탈 것 같으니 앞으로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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