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북한 진보주의자의 눈으로 본 주사파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1.12.09
leftwing_site-305.jpg 지난달 19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클럽에서 열린 '반국가·친북좌파 사이트 2차 공개 기자회견'에서 봉태홍 라이트코리아 대표(왼쪽)가 해당 웹사이트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예전에 제가 2000년에 북으로 돌아간 비전향장기수들이 한국 실상을 알려준다면서 북한 TV에 나와 한다는 말을 듣고 정말 황당해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남조선에서 장군님 영상을 가슴에 모시고 사진을 찍지 못하면 시대에 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이러지 않나. 또 “대학 벽보판 상단에 장군님 영상을 모시고 장군님 혁명경력과 빛나는 업적으로 대서특필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러지 않나 “장군님 열풍 때문에 큰 백화점 점원들은 인민군 군복을 입고 돌아다닙니다. 거리에선 장군님 잠바가 유행의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이러지 않나. 시치미 뚝 떼고 새빨간 거짓말 입에서 줄줄 나오는데, 참 어이없더군요.

여러분은 그런 말 들으면 믿어지십니까. 진짜 그런 사람이 남쪽에 있다면 아마 정신병자 취급당할 것입니다. 혹시 저런 거짓말이 정말 사실처럼 믿어진다 이런 사람이 있다면 자기가 완벽하게 세뇌당하고 살고 있는 증거이니 좀 머리 쓰며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그 프로 보기 전까진 비전향장기수들 대단한 점도 있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사상이야 어찌됐던 자신의 신념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전향하지 않고 감옥생활 견딘다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하지만 그들이 북에 돌아가서 1년도 안 돼 사기꾼이 돼 버린 것 보면서 “저들은 그냥 이상한 인간들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기 한국에도 이상한 인간들 적잖습니다. 가령 법정에서 재판 받으면서도 신념이나 있는 듯이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 만세”하고 소리치는 인간도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당장 3대를 멸족시키는 북한 같았다면 제 까짓게 어딜 감히 그따위 만용 부리겠습니까. 얼마 전에도 북한 중앙TV에서 한미 FTA 통과에 반대해 국회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사실 자세히 보도하더군요. 장본인이 민노당 소속 국회의원인데 올 4월 전임자가 비리로 의원직 잃자 재보선 선거로 1년짜리 의원이 된 인물입니다. 이 사람이 재선거 때 북한 3대 세습과 북한 인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아무도 비판하지 않을 때 비판하는 것이야 말로 진보주의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그냥 궤변일 뿐입니다. 아니,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는 게 세상 상식 아니겠습니까.

남쪽엔 옛날 북한 서적 좀 들여다 본 영향으로 아직도 북한 동경하는 모자란 인간들이 좀 있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에 따라 FTA 반대할 수도 있고 반정부 시위 할 수도 있습니다. 저만 해도 이명박 정부 비판 공공연하게 많이 해요. 여긴 자유세상이니까요. 다만 웃기는 일은 북한 인권 문제만 나오면 딱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탈북자들의 증언이 조작됐다고 이러는 인간들일수록 심통히도 북한이 선동질하는 일마다에는 왜 그리 눈이 시뻘게서 죽을 둥 살 둥 펄펄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주사파라는 사람들이 걸어온 길을 보면 저랑 딱 반대입니다. 주사파들이 남쪽 대학에서 낮엔 자본주의를 배우고 밤마다 몰래 주체사상을 공부했다면 저는 북쪽 대학에서 낮엔 주체사상 배우고 밤엔 자본주의 서적 몰래 보면서 공부했습니다. 주사파들이 남한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결론 냈다면 저는 북한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결론 냈습니다.

저는 북한으로 봤을 때 진보주의자입니다. 다른 것 다 떠나 인민들 굶겨 죽이는 그런 사회는 반드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그 자체가 진보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북한 진보주의자인 제가 한국에 와보니 그 썩은 북한 체제를 옹호하고 감싸는 자들이 여기서 진보행세를 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저 같은 사람 수구보수로 몰고 있습니다. 기절초풍할 일이죠.

북한 진보주의자인 저는 그 사회가 싫어 탈북 했는데 남쪽 진보를 자처하는 여기 주사파들은 탈남해 북에 가서 살 생각도 안합니다. 남쪽에서 간첩들 잡히는 것을 보면 쩍하면 주사파 출신입니다. 아, 그리 북이 좋으면 직접 가서 살지 말입니다. 주체사상 어쩌고 하는 인간이 있으면 “내가 김일성대에서, 쟁쟁한 사상 교수들에게서 정통으로 주체사상 배운 ‘본산제’니까, 몰래 숨어서 저들끼리 주워들은 주체사상 운운하지 말고 정식으로 나랑 논쟁해보자” 이렇게 말해주고 싶은데, 여기서 주체사상이나 북한 체제를 공식적으로 찬양하면 정신병자 취급당할 줄은 다 아니까 이 사람들 “남이 다 비판하니 나는 안 한다”는 궤변이나 하면서 딱 숨어있는 것이죠.

저는 만약에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이 된다 이러면 우려되는 문제 중 하나가 사법제도입니다. 여기 사형제도 없는 것 아시죠. 사람 몇 십 명 잔인하게 죽여도 사형 안 시킬 뿐 아니라 피해자보다 범죄자를 먼저 걱정해주는 일도 비일비재입니다. 통일돼서 인민들에게 죄지은 자들을 처벌하려 해도 북에 따로 법을 만들지 해야지 지금 같은 한국의 법 제도하에서는 피해자 인권이니 뭐니 하면서 못하게 할 것이 뻔합니다. 무너진 체제 찬양하며 말도 안 되는 선동하고 다녀도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가만 놔둘 것이 뻔하고, 그런 거 보고 열불 나서 어떻게 하면 그런 사람만 폭력죄 몰아 처벌하겠다고 이럴 것 같네요.

그나마 지금 제가 여기서 속이 터져도 참고 사는 건 그래도 여기가 아직은 비전향장기수들의 거짓말과는 달리 초상화 달고, 인민군 군복 입고 다니면 정신병자로 취급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살만한 겁니다. 또 통일이 되면 북한을 찬양하고 비참한 인권 상황을 거짓말이라고 매도해온 자들을 2,400만 북한 동포 여러분들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믿기에 힘을 얻고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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