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교회를 본 딴 북한 체제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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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사망소식이 발표된 19일 평양 만수대언덕 김일성 동상 앞으로 주민들이 모여있다.
김정일의 사망소식이 발표된 19일 평양 만수대언덕 김일성 동상 앞으로 주민들이 모여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모두들 추모 행사장 다 다녀오셨습니까. 며칠째 피곤하실텐데 그럼에도 오늘밤도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들 참 대단하신 겁니다. 하긴 뭐 저도 19일부터 지금까지 밤 12시 넘게까지 하루에도 기사를 쉴 새 없이 쏟아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다 내가 과로사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김정일 사망에 관련해서는 여러분들도 며칠째 지겹게 들었을 것이니 저까지 이 자리에서 같은 이야기 또 하면 짜증이 날지도 몰라서,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야기하려 합니다.

오늘 저녁이 바로 크리스마스이브가 아닙니까. 여기 남쪽은 예년과 다름없이 축제를 즐기고 있습니다. 밖에 나가면 크리스마스트리가 사방에서 번쩍번쩍하고 연인들이 쌍쌍이 걸어 다니고 그럽니다. 반면 북한 분위기는 어제보단 오늘 더 팍 가라앉아 있겠지요. 오늘이 ‘어머님 탄생일’과 ‘최고사령관 추대일’ 두 명절이 겹쳐진 날이니 추도 행사 더 요란했겠네요. 평년엔 이날 저녁에 다 모여서 충성의 노래모임 했는데, 오늘은 김정은 동지에게 충성을 바치자 뭐 대충 이런 행사 했겠지요. 이제부턴 김정은이라는 새파란 새 주인 섬기게 됐네요.

크리스마스가 기독교 명절인 건 다 아시죠. 제가 여기 와서 교회에 가서 보면 북한 통치 체제가 기독교와 어떻게 그리도 흡사한지 정말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제일 다른 점이라면 기독교는 벌써 2000년 넘게 하나님이라는 유일신을 섬기고 있지만 북한에선 수령님, 장군님을 무조건 믿어야 하고 이제는 김정은이란 새로운 신을 믿어야 합니다. 안 믿는다면 총살해버리니 겉으로만 보면 기독교 이상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기독교에서 가장 구속력이 강한 법은 십계명입니다. 십계명 들어보신 적이 없죠. 다른 신 섬기지 말라, 우상 섬기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지켜라,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을 말라, 간음을 말라, 도둑질 말라, 이웃에게 거짓 증거 말고,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이런 내용입니다.

기독교에 십계명이 있다면 북한에는 당의 유일사상체제 확립의 10대 원칙이 있습니다. 사실상 북한에서 헌법 위에 있는 실질적 법이죠. 기독교에서 예배 볼 때 주기도문이라는 것을 외웁니다. 북에선 명절 끝나면 어쩝니까. 선서를 외워야 하죠. 이거 딱 보면 주기도문과 흡사합니다.

천주교나 기독교는 1주일에 한 번 성당이나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북에선 1주일에 한 번 선전실 등에 모여 생활총화를 갖습니다. 천주교나 기독교 모두 자기 잘못 털어놓는 참회를 하는데, 북에선 이게 주일 생활총화입니다. 비서 앞에서 한 주간 잘못을 털어놓고 용서를 받는 것이죠. 기독교에 성경에 기초한 목사의 설교가 있다면 북에는 당비서가 주관하는 당정책 등의 학습이 있습니다. 당비서가 기독교 목사 역할을 하는 겁니다. 기독교는 설교에 앞서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데, 북에선 당비서가 회의에 앞서 꼭 교시 말씀을 인용해야 합니다. 회의 시작에 앞서 ‘김일성 장군의 노래’,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노래’ 이런 것 부르죠. 참 좀 있다가 ‘존경하는 김정은 동지의 노래’를 또 배우게 되겠네요.

기독교에서도 설교에 앞서 찬송가를 부릅니다. 설교가 끝난 뒤에 다시 찬송가를 부르는데, 북에서도 회의 끝나고 ‘수령님 만수무강 축원합니다’,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만수무강 축원합니다’ 이런 노래 불러야 합니다. 암만 축원해봤자 흐르는 세월은 못 이기는데 말입니다. 이젠 84년생 27살짜리 김정은 만수무강 축원 노래 불러야 하나요. 김정은이 좀 지각이 있다면 이런 노래 못 부르게 할 텐데 말이죠.

세계 유명한 종교 현황집을 보면 ‘주체교’라는 종교를 세계 10대 교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신자는 2,400만 명. 이 정도 신자 숫자이면 당당히 세계 10대 종교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북한 체제가 왜 기독교 방식을 따라갔을까요. 그걸 알려면 김형직, 강반석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반석이란 이름은 베드로에서 따온 기독교 이름이고 아버지 강돈욱은 칠골교회 장로요, 강량욱은 목사입니다. 이렇게 집안이 기독교 신자 집안이니 기독교 체계를 교묘하게 본떠서 북한 체제를 만든 것입니다.

김형직이 다닌 평양 숭실학교는 평양 장대재교회에서 설립한 신학교였고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이었습니다. 여러분 장대재교회란 말 들어본 적이 없으시죠. 100년 전 동방에서 제일 큰 교회가 바로 장대재교회였는데, 어디에 있었냐 하니 바로 지금의 만수대에 있었습니다. 만수대의 원래 지명이 장대재인데, 옛날 장수가 전투를 지휘하던 장대가 있는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동상과 소년궁전이 있는 그 자리에 100년 전에는 동방 최대의 교회와 신학교가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참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만수대 동상 앞에서 장군님, 장군님 하면서 눈물 흘리고 있는데, 그 자리가 우리 선조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던 자리였으니 말입니다. 먼 옛날 일 같죠. 하지만 일제 때 장대재교회에서 전도사를 하셨던 목사님이 아직도 남쪽에 생존해 계십니다. 설 쇠면 우리 나이로 102살입니다. 그리고 평양에 있던 숭실학교의 전통을 이어받은 숭실대학교가 서울에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숭실대가 아마 평양에 돌아가던지 아니면 분교라도 내던지 할 것입니다. 동시에 평양에도 교회, 성당들도 엄청 생겨날 것입니다. 수령님, 장군님 하던 평양 시민들이 교회에 가서 주여, 주여 하며 기도할 모습을 상상하니까 정말 뭐라 할 말이 없네요. 끝으로 엄동설한 속에 아직 추모행사로 닷새나 더 고생해야 하고 또 쉴 새도 없이 새해 시작되자마자 또 유훈관철 투쟁이니 뭐니 하며 시달릴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드리며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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