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 살이] 북조선의 약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0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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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난번 방송에서 각국의 의료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은 거기에 더해 약에 대한 문제만 따로 이야기하려 합니다.

몇 년 전에 대북지원을 하는 한국 교회의 지도급 목사들이 중국에서 북조선 의료관계자들을 만났습니다. 북조선에 약을 좀 지원하고 싶은데 어떻게 지원하면 되겠는가를 토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목사가 돌아와 하던 말이 정말 가슴 아팠습니다.
어떻게 보위부가 듣지 않는 조용한 자리가 생겼는데 북조선의 한 간부가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이야기하더랍니다.

“목사님, 목사님들이 약을 지원하겠다고 하는데, 지금 북조선엔 약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못 먹어 굶어 쓰러지는데 약이 다 뭡니까”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저는 그 간부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북조선에 그런 훌륭한 간부가 많다는 것은 압니다. 인민이 굶어 쓰러지는 것이 가슴 아파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간부들이 말입니다.
사실 사람이 다른 이유 없이 굶어만 죽기는 힘듭니다. 못 먹으면 몸이 허약해지고 그러면 면역이 떨어져서 병에 쉽게 걸려 죽습니다. 1990년대 말 사망한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 보건대는 앓아죽었지만, 사실은 굶어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비만이 올 정도로 너무 많이 먹어도 안 되지만 적당히 잘 먹으면 사람이 병에도 잘 걸리지도 않습니다.
그렇긴 해도 사람이 아플 때는 약도 있어야 합니다.

2007년 2월에 조선적십자회가 남측에 한건의 건의서를 보내왔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선생님들도 알다시피 우리 북쪽은 의약품이 많이 부족합니다. 남측에서 제조한 의약품이 유효기간이 6개월이나 1년이 지났어도 폐기처분하지 말고 우리 북쪽으로 돌려주었으면 하는 요청을 담아 건의하는 바입니다.” 이 비슷한 건의서는 2006년 10월에도 왔습니다.
저는 적십자회 간부들도 참 큰 용단을 내렸다고 봅니다. 적국인 한국에 자존심까지 버리면서 유통기한이 지난 약이라도 보내달라고 하기가 어디 쉽습니까. 물론 그래서 올라간 약이 간부들이나 군대에 배정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찌되든 남한 약이 북에 올라가면 많이 새나가서 장마당에서 팔린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건의서를 보고 저는 유통기간이 지난 약을 보내주자는 내용의 기사를 신문에 썼습니다. 한국에서는 유통기간이 지났다고 그냥 태워버리는 의약품만 한해에 대략 5000만~8000만 달라어치 정도 됩니다. 그런데 대다수 약품은 유통기간이 지났어도 약효가 아주 조금 떨어질 뿐이지 사실 병을 치료하는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여기서 버리는 약들만 다 북에 주어도 앓아죽는 사람 몇 만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남쪽에서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새 약을 주면 주었지 여기서 버리는 약품을 양심상 어떻게 북쪽에 주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국제사회의 손가락질을 받을 우려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새 약이든, 버리는 약이든 북에 올라간 것은 없습니다.

북조선의 절박한 사정을 잘 아는 저로서는 정말,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남쪽에선 체면을 따지지만 그 체면 때문에 구할 수 있는 수 만 명의 생명이 그냥 죽게 됩니다. 오죽하면 북에서 유통기간이 지난 약이라도 달라고 하겠습니까.

물론 앓아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원하지 못하는 것은 북조선 지도부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핵실험이니 미사일 실험이니 하는 데 우선적으로 매달리다보니 정작 인민생활은 뒷전입니다. 그렇긴 해도 우리가 지금 북조선 지도부의 책임만 따지고 앉아서 죽어가는 생명들을 모르는 체 하기에는 양심이 너무 편치 않습니다. 특히 약이 없으면 민족의 미래를 떠메고 나가야 할 어린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봅니다.

그러는 사이 장마당에는 유통기간이 지난 한국약보다 몇 십 배 못한 가짜 중국약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가짜 약을 잘못 먹고 사람이 죽으면 보위부에서는 “남조선 괴뢰들의 비열한 책동”이라고 선전합니다. 전염병이 돌아도 남조선 괴뢰들이 국경으로 전염병을 퍼뜨린다고 강연합니다. 정말 비열합니다. 남조선 사람들이 왜 전염병을 퍼뜨립니까. 말도 안 되는 이런 식의 선전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합니다.

그래도 북조선에는 아직 나쁜 간부보단 한줄기 양심이 남아있는 간부들이 더 많을 겁니다. 대다수 보위부 사람들도 속으로 뻔히 알면서도 시키니 어쩔 수 없어 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의사들은 또 어떻습니까. 얼마전 북조선을 방문한 외국 의료진이 깜짝 놀랐습니다. 장비가 너무 열악하다 보니 의사들이 방사선이 새나오는 엑스레이로 촬영을 하더랍니다. 이렇게 하면 의사들이 오래 못삽니다. 그런데 그걸 뻔히 알면서 의사들이 목숨을 내대고 진단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환자에게 자기 살점 떼주고, 자기 목숨 내대고 남을 치료해주는 이런 의사들은 세계에 북조선 밖에 없습니다.

이런 좋은 사람들의 심성이 더 나빠지기 전에 북조선도 빨리 좋은 날이 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라지오를 듣는 간부 동지들, 인민들 못살게 굴지 말고 잘 좀 대해주십시오. 선행에 대한 보답을 받는 날이 꼭 올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 기자였습니다.

Anonymous says:
2009-12-15 18:02

남한에서 버리는 약들을 소각되는 약간의 비용과 함게 북한에 보내준다면 서로 명분도 살고, 도움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안타까운 마음에 한줄 적어봅니다

Anonymous says:
2009-12-16 21:11

평소 주기자님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日本사람은 북쪽을 北朝鮮이라 부르고 남쪽을 한국이라 부르지만 주기자님이 북쪽을 북조선이라 쓴데 대해 불만입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남조선이란 말입니까?
있는 그대로 조선이라 쓰는 것이 좋을 듯 한데 어떤신지요? 아니면 북한이라 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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