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설 쇠던 추억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4-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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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명절 설을 맞아 평양시내 김일성광장에서 한 가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민속명절 설을 맞아 평양시내 김일성광장에서 한 가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새해를 축하합니다. 설날인 오늘 하루 잘 보내셨습니까. 올해를 말띠해라고 하는데, 음력설이 지난 오늘부터 진짜 말띠해가 됐습니다. 하긴 뭐 해마다 올해는 뱀띠해요, 용띠해요 여기선 크게 떠드는데, 그래서 뭐 어쨌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14년이 말띠면 어떻고, 개구리띠면 어떻습니까. 그냥 내가 올 한해를 의미 있게, 행복하게 보내면 그만인 것이죠.

지금 이 방송이 나가는 시간이면 집집마다 동네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 주패(카드놀이)  치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북에 있을 때면 설날 저녁이면 보통 그렇게 보냈죠.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아마 설날 저녁에도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한국 방송을 듣는 분들이 있다면 당신은 자유아시아방송 중독자입니다. 당신은 진실에 굶주려 있는 자유의 영혼입니다.

한국에서 살면서 북한이 그리울 때가 많은데 그중에서 설날이 가장 그립습니다. 지금 명절을 맞아도 홀로 보내야 해서 더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설날 저녁 한잔하고, 얼굴 벌개져서 흥수(카드놀이의 한 종류)  신나게 때리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죠. 진 사람이 술을 가져오면 또 마셔대고, 새로운 판을 벌이고, 이렇게 새벽까지 하하 웃으며 노느라면 만시름이 가시는 기분입니다. 물론 이런 것이 꼭 설날 풍경만은 아니지만, 설날에는 맛있는 음식을 가득 차려놓고 배도 부르고, 내일 출근해야 한다는 근심걱정도 없고, 설이란 분위기에 사람들의 마음 또한 들떠 있으니 제일 분위기가 살아나는 날이 아닐까 합니다.

여기에 전깃불이 오면 금상첨화겠지만, 겨울엔 대개 전기난으로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제가 있을 때는 사정이 좀 좋으면 카바이드 등잔을 켜고, 보통은 석유등잔 아래서 지냈는데, 요즘은 사는 게 좀 괜찮아져서 자동차 바떼리를 가지고 조명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전기가 안 오면 어떻습니까. 이웃들과 친구들과 즐겁게 보내는 그 시간이 소중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한국에 와서 정전이라는 것을 모르고, 티비를 틀면 백 개가 넘는 통로가 나오고 휴대전화에 밤새 빠져들어 놀 수 있는 게임이 수백, 수천 가지가 있는 세상에서 살지만 북한에서 밤새 등잔 아래 흥수(카드놀이의 한 종류) 를 치던 때가 그립습니다. 여기선 보통 즐기는 문화가 사람들과 고기를 구워 먹고 술을 마시고 좀 취하면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릅니다. 글쎄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지만, 저는 모여 앉아서 주패(카드놀이) 를 노는 것이 더 좋습니다. 물론 북에서 살면 또 고기 굽고 노래방에 가던 남쪽이 그립겠죠.

한국에 와선 흥수(카드놀이의 한 종류) 를 거의 놀아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저는 워낙 바쁘게 사는 직업을 얻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말 북한의 목가적인 삶이 그리울 때가 많습니다. 또 다 커서 만난 사람들은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함께 큰, 아무 부담감 없이 만나는 친구들보다 못하겠죠. 저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삽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저처럼 그리 사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저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집도 더 좋은 환경을 찾아서 또는 집주인과 사이가 안 좋으면 2년이나 4년마다 자주 동네를 옮겨 다니며 삽니다. 여긴 전세나 월세 계약이 2년 단위로 이뤄지거든요. 물론 저는 월세 살아서 이사 다니지만 한국 사람의 반은 자기 집이 있어 저처럼 옮겨 다니진 않습니다.

북한은 집하나 배정받으면 대를 이어가면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농촌은 당연히 그렇고, 도시라고 해도 같은 아파트 사람들은 몇십 년 함께 사는 이웃이 됩니다. 당연히 잘 아는 사이죠. 여기에 인민반회의니 해서 계속 얼굴 맞댈 일이 있으니 누구네 집에 숟가락 몇 개 있는지도 다 압니다. 남의 집 들어가기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국에 와서 12년 동안 살면서 탈북자들의 집은 많이 가봤지만, 한국 사람의 집을 가본 적은 1년에 한 번도 안 됩니다. 아는 사람은 엄청 많지만 그만큼 거리가 있다는 소리겠죠. 하지만 여긴 사생활을 중시하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저만해도 남을 자기 집에 데리고 오지 않거든요.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나 봅니다.

설날 아침에 바지 주머니에 술병을 차고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아무개 아버지 한잔 받으세요, 선생님 한잔 받으세요 하며 세배하는 시절도 그립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설날이면 다 고향에 가서 일가친척이 모여서 시간을 보냅니다. 저녁엔 가족이 모여 주패(카드놀이) 보다는 보통 화투도 놉니다. 저는 그럴 수 없는 탈북자의 처지라 북한이 그립나 봅니다. 어쩌면 이는 타향에서 세배 할 사람도, 받을 사람도 없이 설을 맞는 사람이면 당연히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여기서도 설날에 찾아갈 집들은 있습니다만, 워낙 멀리 사니까 돌아다닐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동네는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대다수 탈북자들은 명절이면 한 동네에 사는 탈북자끼리 모여서 북한처럼 술도 마시고 흥수(카드놀이의 한 종류) 도 놀지만, 북한처럼 흥취가 나지 않습니다. 제 생각엔 북에선 져서 사와야 하는 술과 안주는 적지 않은 돈이지만 여기는 풍족하니 술과 안주 가격은 아무것도 아니고, 그러니 긴장감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큰 돈 걸고 도박을 하면 여긴 불법입니다.

설날 저녁에 북에서 이웃 친구들과 주패(카드놀이)  놀던 생각이 나서 남과 북을 비교하면서 이야기해봤습니다. 그렇다고 흥수(카드놀이의 한 종류)  놀려고 북한에 다시 가겠냐고 한다면 단언컨대 노 할 겁니다. 설날만 좋고 그 외는 끔찍한 일이 너무 많죠. 특히 설날 지나서 첫 출근부터 퇴비 전투를 한다면서 추운 겨울 언 인분을 까서 바쳐야 하는 기분, 전 세계에서 북한에만 존재하는 그 원시적 작업은 회상하기도 싫습니다. 그냥 딱 설날만 고향에서 보내고 싶을 뿐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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