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생활 12년째를 넘기며 드는 생각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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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을 불과 며칠 남겨둔 25일 오후 여수시 율촌면 봉전리 소뎅이 마을에서 붉은 낙조가 잔잔하게 일렁이는 파도와 점점이 떠있는 어선을 배경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2014년을 불과 며칠 남겨둔 25일 오후 여수시 율촌면 봉전리 소뎅이 마을에서 붉은 낙조가 잔잔하게 일렁이는 파도와 점점이 떠있는 어선을 배경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느덧 또 한해가 저물어 2014년 마지막 방송 시간이 되었습니다. 올해는 남이나 북이나 세월호 침몰이나, 평천 아파트 붕괴와 같은 대형 사고가 많이 났던 한 해였습니다. 새해엔 사건 사고가 줄어들길 바랍니다.

저는 몇 년 전부터 12월이면 늘 하는 다짐이 하나 있는데, 새해엔 여러 가지 하는 일들 좀 내려놓고 좀 편안해지자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해마다 일이 줄기는커녕 점점 더 늘어나네요. 내년에도 어떤 큰일을 하나 더 시작해서 또 더 늘어났습니다. 몇 년 전부터 하루에 서너 시간씩 자면서 일을 하다 보니 이제는 3시전에는 잠이 오지도 않네요.

원래 기자가 한국에서 가장 바쁜 직업 중 하나인데, 저는 국제부 기자도 하고, 북한 뉴스도 쓰고, 칼럼도 쓰고 해서 다른 기자들보단 담당 범위가 더 넓습니다. 회사일만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외에 이 방송과 KBS 방송도 매주 꼬박꼬박하고, 일이 끝나면 밤에 연세대 대학원도 다닙니다. 블로그라는 개인적 글을 쓰는 인터넷 공간에 이틀에 한번 글을 올리고 책도 쓰고, 논문도 쓰고, 강연도 하고 그렇게 삽니다. 11월에도 200페이지나 되는 연구 논문 하나를 한 달 동안 새벽에 틈틈이 다 썼습니다. 또 탈북자들 구출해오는 일도 하고, 이외 설명할 수 없는 잡다한 일도 많습니다.

이렇게 바쁘게 살다보니 어느샌가 제 이력서는 한 페이지 빼곡하게 차버렸습니다. 한국에 온지 12년 동안 쌓은 제 삶의 발자취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강연 갈 때마다 이력서를 보내는데 어떤 때는 내가 북에서 살았다면 이런 경력을 다 쌓을 수 있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아마 북에서 살았다면 달랑 몇 줄에 그쳤겠지만 목숨 걸고 한국에 온 보답으로 참 많은 경력을 쌓았습니다.

동아일보 기자에다 대통령 직속으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라고 북한 조평통 비슷한 기관이 있는데, 거기에도 최연소 상임위원을 맡고 있고, 국방정보본부의 자문위원도 하고 있습니다. 이외 탈북자들의 정착을 돕는 남북하나재단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고, 한국에 온 2만7000명의 탈북자들이 보는 동포사랑이란 잡지의 편집위원도 겸하고 있습니다.

블로그를 통해선 지금까지 6,300만 명의 독자들이 제 글을 봤고요, 곧 마무리해 출판될 책까지 하면 벌써 제 이름이 박힌 책 7권을 냈고, 연구논문도 5편을 썼습니다. 한국 생활을 하면서 상도 많이 탔는데, 회사에서 받은 상들 빼고도, 한국에서도 일러주는 큰 상만 대여섯개 받았습니다. 제 나이치곤 쌓은 것도, 받은 것도 참 많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이런 자기 자랑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한국은 이처럼 노력만 하면 충분히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입니다. 제가 북에서 살았다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한계가 있겠죠. 저는 1990년대 북에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좋은 학부를 졸업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갈 때는 대학에서도 열심히 공부를 해야지 다짐을 했지요. 고난의 행군전까지는 모든 과목에서 최고 점수인 5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고난의 행군에 들어가니 상황이 확 바뀌었는데 제가 충격을 받았던 계기는 수업 시간에 다른 학생들보고 저만큼만 공부하라고 계속 이야기하던 교수가 있었는데 결국은 제게 4점을 주더군요. 학기마다 5점을 줄 수 있는 학생 수는 정해져 있는데 뇌물을 받은 학생부터 5점을 주다보니 저에겐 4점이 차례졌습니다. 그때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고 이후엔 공부를 손에서 놓고 잘 안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교수님이 이해가 됩니다. 배급이 없는데 그렇게라도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겠죠. 교육자의 양심을 저버렸을 때 본인도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1990년대 초반에도 김일성대에는 공부 하나만 잘해서 온 학생은 30% 정도나 될까 그랬습니다. 절반이 제대군인이고, 직통생도 간부 자녀로 빽을 써서 오거나 대학에 뭘 주고 입학하거나 했지요. 김일성대에 5000달러만 뇌물로 고이면 입학할 수 있다는 뉴스가 나오는 지금은 더 심할 겁니다.

그런데 졸업하게 되면 공부 잘했던 애들은 정말 별 볼일이 없어지고 결국은 집안 좋은 애들이 좋은 자리에 다 가더군요. 결국 발전은 성적순이 아니라 집안 순인거죠. 한국에 와보니 여기도 공부보다는 결국 집안이 더 중요하더군요. 아버지를 재벌로 두면 자식도 새파란 나이에 재벌이 되는 것이고 공부만 잘 했던 사람은 그 재벌 회사 회사원으로 삽니다. 이건 북한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세상 어디나 다 같습니다. 제가 국제부 기자로 10년 넘게 살면서 느끼지만 정말 정의롭고 공평한 나라는 없습니다. 다만 그렇더라도 북한보다 훨씬 더 낫습니다.

저는 북에서 공부 잘해서 대학에 갔습니다만, 북에 있으면 어디 갔어도 승진이 밀리겠죠. 하지만 한국에 오니 그나마 능력을 살릴 수 있고 저한테 만큼은 노력한 것만큼 보답이 따르는 사회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북에서 나는 머리가 좋은데, 이 제도에서 클 수 없다 이런 기분이라면 한번 용기를 내보라는 말을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탈북도 목숨 건 노력이고, 여기 오면 노력한 것만큼 보답을 받을 겁니다. 만약 김일성대 출신이라면 여기서도 인정은 해줍니다. 그렇다고 빽으로 김일성대 들어가 놀았던 사람은 실력이 없으면 여기도 잘 나갈 수 없고요.

아마 이 방송을 해외에 나온 우리민족끼리 담당자들처럼 해외 공작부서 사람들도 듣겠죠. 그들 대다수는 김일성대도 나왔을 것이고 성분도 좋겠지만, 혹시 나는 집안 때문에 밀린다 이러면 한국에서 사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저도 능력 있는 탈북 후배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엔 모든 분들 행복한 일만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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