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더위속에서 고향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나

김춘애-탈북 방송인
2018.07.27
hot_fan.jpg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이 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연이어 찜통같은 폭염이 계속되는 7월도 어느덧 지나가고 있네요. 이제는 삼복더위라는 말은 어디로 사라져 가고 찜통더위라고 하네요. 37도의 더위에 밭일을 하시는 어르신들이 때로는 탈진에 빠질 수가 있으니 낮에는 될수록 외출을 금지하라는 뉴스가 매일 나옵니다. 어제는 요즘 찜통더위가 계속되니 될수록 낮에 외출을 금하고 항상 물병을 들고 다니며 마시라는 딸의 잔소리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은 또 12살 손녀가 손전화로 물병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가하고 또 잔소리합니다. 그런 잔소리를 들으니 문득 노인이 된 기분이 들어 잠시 서운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또 친구들을 만나니 기분이 좋네요. 전기 절약을 위해 에어컨을 켜지 않았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진땀이 저절로 흘러내리는 지난 주말 제 친구는 더운 집에 있기가 힘들어 1호선 전철을 타고 반나절을 다녔다고 합니다.

배를 쥐고 크게 웃고 있는 저를 보며 전철을 타니 사람 구경도 하고 옆 사람과 수다도 떨고 하니 심심하지도 않았지만 그보다 너무 시원하고 좋았다고 덧붙였습니다. 함경북도 무산이 고향인 그는 정말 천국 같은 이곳 남한에 온 것이 너무도 다행이고 복이라고 하면서 북한에서는 사람 못 살 산수갑산이라고 하는 곳이 본인의 고향인데 지금도 그곳에 있었다면 아마 요즘 같은 찜통더위를 이겨 내기 위해 작은 개울 물속으로 뛰어들곤 했을 거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덧붙여 크게 웃었습니다.

고향에는 높은 산 중턱에 본인의 작은 소토지가 있었다고 하네요. 미 공급 시기 가족의 생계를 위해 남편과 아이들이 아직 꿈속에서 자고 있을 때 본인은 노란 옥수수밥에 김치를 점심 도시락으로 싸 들고 소토지를 향해 갔다고 합니다. 아직 해도 안 뜬 이른 새벽에 출발했지만 높은 산 중턱에 오르다 보면 해가 중천에 뜬다고 하면서 옥수수 몇 줄 김매고 나면 벌써 배꼽시계는 점심시간을 알려 주었고 그 높은 산중턱에서 홀로 점심을 먹을 때면 물이 떨어져 옥수수밥이 넘어 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한 번은 이른 새벽에 가려고 저녁을 먹다 남은 밥으로 도시락을 미리 싸 놓았다가 들고 갔었는데 그 더위에 음식이 변해 먹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점심도 먹지 못했는데 물까지 떨어져 탈수가 되어 쓰러졌다고 합니다. 다행이 옆에 있는 소토지 주인이 산이 떠나 갈 듯이 고래고래 소리쳤고 이로 인해 여러 사람들이 집까지 업고 갔었다고 하면서 그때 죽었으면 오늘과 같은 좋은 세상 구경도 못했을 것이라는 말을 붙여 마음이 짠하기도 했거든요.

북한에 고향을 둔 우리 친구들은 그 얘기가 하나도 낯설지 않게 들렸지만 이곳 남한에서 태어난 친구는 깜짝 놀랐습니다. 60대 중반이 조금 지난 그 친구는 70년대 까지만 해도 이곳에도 부모님들은 밭일을 하다가도 더우면 나무 그늘 밑에 모여 앉아 점심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 분의 얘기를 들으며 저도 잠깐 고향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에어컨은 둘째치고 선풍기조차 그리웠던 여름, 우리 아이들의 등과 겨드랑이에는 땀띠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땀띠가 빨갛게 여물어 찬물에 목욕을 시킬 때 마다 쓰리고 아프다고 울었거든요. 모기장 안에서 부채질을 해 가며 겨우 겨우 재웠지만 겨우 한 시간도 못 자고 또 일어나 울곤 했었습니다.

200m 깊은 땅속에서 다니는 전철은 그나마 시원하지만 버스나 궤도 전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한증탕 안에서 땀을 빼는 것과 다를 바 없거든요. 그 곳에서 반생을 살아온 저로서도 요즘과 같은 폭염주의보가 있는 찜통더위에 생각조차 하기 싫은 고향 생각이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시원한 커피숍에서 고향 생각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한 친구는 집에 물이 나오지 않아 온 식구가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고 하면서 이 무더위를 피해 찜질방으로 피서를 가는 것도 하나의 좋은 경험이라고 합니다. 전철을 타도 버스를 타도 열차와 택시를 타도 회사 업무를 보는 사무실이든 집이든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어 항상 시원한 곳에서 자고 먹고 일을 할 수 있거든요.

에어컨은 생각도 할 수 없고 선풍기조차 부족한 내 고향 사람들은 무더운 찜통더위를 어떻게 이겨 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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