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꽃박람회장을 다녀와서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12.05.09
koyang_flower_fare-305.jpg 경기도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꽃박람회.
사진-연합뉴스 제공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그 때문인지 5월에는 다른 가정들처럼 사랑하는 내 가족들이 자주 한자리에 모이게 되는 날이 많아지곤 합니다. 벌써 한국 생활 9년, 이런 모습을 되돌아볼 때마다 이제는 이곳 대한민국 사람이 다 된 듯합니다.

우리 가족은 주말 평택시 오성면에 있는 숙성리 꽃박람회에 다녀왔습니다. 자가용 승용차 3대가 넓은 벌판에 차려 놓은 꽃박람회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아들이 운전하는 맨 앞차에 저는 두 손자와 함께 탔고 그 다음 둘째 딸 내외, 맨 뒤에서 맏딸 내외가 따라서 평택시 안중오거리를 신나게 달렸습니다.

날씨는 화창했습니다. 차안에서 외사촌인 손자들이 조잘대는 소리가 저에게는 마치 노래 소리와 같이 들렸습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넓은 벌판에 꽃 박람회를 차려 놓았는데 그 넓은 벌판이 자가용 승용차로 가득했지만 우리가 주차할 자리는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좁은 도로를 다시 나와 멀리 바라보이는 아파트 단지 주변에 주차를 했습니다.

차라리 잘 된 듯도 합니다. 무연한 벌판이 전부 노란 유채꽃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제일 처음 우리를 반겨 주는 꽃은 바로 유채꽃이었습니다. 양옆의 유채꽃밭을 두고 가운데로 걸어가는 우리 가족들의 입에서는 넓은 유채꽃 평야를 보는 순간 저절로 탄성이 마르질 않았고 그윽한 꽃향기로 인해 제 기분은 상쾌하고 시원했습니다. 그야말로 유채꽃 바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향기에 취해 사진도 찍고 저는 손자들과 함께 꽃 속에 파묻혀 나올 줄을 몰랐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를 반겨준 꽃은 평택시 기술센터 앞마당에 활짝 피어 있는 갖가지의 튤립이라는 꽃이었습니다. 다음으로 곤충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여러 가지 형형색색의 나비와 물매미, 잠자리와 거미 그리고 이름 모를 곤충과 새들도 많았습니다.

저는 손자들과 함께 새장에 직접 들어가 아름답고 고운 새들에게 직접 먹이를 주는 체험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손자들이 무서워 다가서지 못하더니 어느새 정이 들어 새장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중 첫눈에 제 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장수풍뎅이들이 태극기를 메고 한국과 일본전쟁을 치열하게 치르는 장면이었습니다.

다음은 예쁘게 활짝 핀 꽃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봄 냄새 그윽한 꽃 속에 취해 정신을 잃을 뻔했습니다. 손자들은 주렁주렁 줄기에 달려 있는 빨간 호박과 수박 그리고 참외와 고추, 오이를 직접 작은 손으로 만져보면서 좋아라했습니다. 제 딸들은 아이들에게 씨를 심고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게 되는 순서를 그대로 하나하나 어린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을 해주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저는 뒤에서 대견한 자식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들도 한때는 저만한 아기들이었는데 벌써 아기들의 엄마가 되어 지난날 나의 모습처럼 제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고 있다고 생각을 하니 정말 뿌듯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우리는 간단히 준비 해가지고 간 김밥과 북한식 순대와 꽃 박람회장에서 판매하는 부침개와 매콤한 족발을 시켜 맛있게 먹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평택호로 갔습니다. 평택호 역시 꽃 박람회장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과 어린이들로 붐볐습니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더불어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분수가 높이 뿜어내려 마치 비가 오는 듯 했습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좋아라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직접 아이들이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 놀이 기구도 있었습니다.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다칠세라 뒤따라 다니는 저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비 오듯 흘러 내렸습니다. 한참을 신나게 구경하던 우리는 다시 그늘아래 돗자리를 깔고 준비해가지고 간 간식을 간단히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후 5시가 되어 안중에 있는 큰 딸집으로 갔습니다. 딸들이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저는 손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둥근 밥상에 온 식구가 모여 앉았습니다.

두 딸들은 손자들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직접 만들어 온 카네이션을 저에게 자랑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작은 딸은 문득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처음 아들에게서 받아 보는 카네이션이라 가슴이 뭉클하다며 만약 북한에서 결혼했음 아마 이런 행복을 모르고 살았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저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을 이제야 알았으니 그게 바로 어른으로 성장하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우리 가족은 지난날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을 떠올리면서도 재미있고 행복했던 추억을 만들며 밤새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일요일인 다음날, 조금 늦게 아침밥을 먹고 오랜만에 온 가족이 생필품을 파는 대형 상점, 홈플러스로 갔습니다. 아기들 옷을 파는 판매대에 들린 저는 두 손자들에게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라고 했습니다. 신난 꼬맹이들은 이리 돌고 저리 돌고 하더니 제법 예쁜 옷들을 골라 가지고 계산대에 올려놓았습니다.

모아놓고 보니 만만치 않은 가격이 나왔습니다. 옷 가게 사장님은 멋진 할머니라고 좋아했습니다. 제 어미들은 너무 비싸다고 난리였지만 저는 대견했습니다. 저 역시 손녀가 골라 주는 구두와 원피스 한 벌을 구입했습니다. 행복한 가정의 달, 5월에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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