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생각, 평양 생각] 연말연시 더욱 생각나는 고향땅, 고향 사람들

어느덧 2008년도 저물어 갑니다. 이맘때면 저는 ‘한 해 동안 내가 한 일이 무엇인가’,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로서 할 일은 다 했는가?’ 이런 자체 총화 사업을 해보곤 한답니다.
김춘애
2008-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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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제게 기쁜 일 즐거운 일 좋은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한 해를 보내고 나이 한 살 먹자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곳 남한 생활이 좋을수록, 저는 한 해 두 해 한 살 두 살 나이 먹는 것이 제일 안타깝고 흐른 시간과 세월을 잡아 놓을 수만 있다면 억센 두 손으로 꼭 잡아 놔주고 싶지가 않네요.

서산으로 넘어 가는 손에 닿을 듯 말듯 한 붉은 저녁노을을 아파트 베란다에 나와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자니 저절로 고향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일입니다. 한 해는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에게 보낼 새해 신년 축하장에 좋은 그림을 그려 보내고 싶어, 군대에서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친구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맨입으로 부탁을 할 수 없어 제가 군에 입대할 때 학교 담임선생님께 받았던 아끼던 만년필을 주고, 좋은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모님이 그 축하장을 보고 딸이 잘 있구나 하고 안심하고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하나 잊히지 않는 추억은 ‘달력’에 관한 것입니다. 남쪽에 오니 흔한 것이 달력입니다.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연말이 되면 이곳저곳에서 연말 선물로 이 달력을 그냥 주는 곳이 많습니다. 저도 어제 제가 자주 이용하는 은행에서 달력을 받았고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도 달력을 받았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니 아이들이 달력 만드는 체험 학습도 하고 연예인들이 직접 달력을 제작, 판매해서 수익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도 하더군요.

사실 종이 사정이 매우 열악한 북한에서는 책과 그림으로 된 달력을 구입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이름 있는 영화배우들이 그려져 있는 화보로 된 달력을 구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와도 같았습니다. 장마당에서는 그 당시 100원에서 500원까지 했습니다. 100원이면 쌀 1 킬로그램을 살 수 있었으니, 웬만한 사람들은 집에 좋은 달력 하나 걸어 놓기 힘든 형편이었습니다. 저는 출판사에 다니던 큰 아버지에게 부탁해 좋은 달력을 구입해서는 지방에 나가 쌀과 바꾸어 먹기도 했었는데요...

참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도 열악한 북한 생활이 힘들어 콱 세상이 무너져라 생각한 적도 있건만 지금은 고향 생각이 많이 납니다. 특히 이런 가족이 함께 모이는 연말연시에 우리 아이들이 찾아오고 재롱부리는 손녀의 모습을 보며 기쁘고 행복할 때, 고향과 부모 형제들이 그리워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어제 밤엔 함박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남 다 자는 밤에 남편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하늘이 뚫린 것 같이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마을 주변을 산책하면서 고향 얘기를 했습니다.

북한에서 설을 맞는 이맘때면 많이 힘들었는데 우선 우리 아이들에게 설음식으로 무엇을 해 줄까 선물은 무엇으로 준비 할까 장마당에는 없는 것이 많지만 주머니에 돈이 없는 부모로서 마음이 아파 남모르게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저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북한 여성들, 주부들의 하나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곳 남한에서 맞는 설은 그런 걱정이 없습니다. 사실, 저에겐 일상 먹고 쓰고 사는 것 전부가 명절이 따로 없게 느껴집니다. 북한에서는 1년에 한 두 번 밖에 먹을 수가 없었던 육 고기와 수산물. 이곳 남쪽에서는 매일 밥상에 올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명절에도 음식을 어떻게 마련하나 하는 걱정은 없습니다.

고향에선 밥상에 올려놓을 것이 없어 매일매일 끼니때마다 눈물을 흘렸지만 이곳 남한 생활에서는 해 놓은 음식을 먹어 주는 사람이 없어 주변에 사는 친구들을 부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차이 나는 두 현실을 보면서, 저는 이것이 참 비극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많이 부족한 생활 속에서 설 준비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을 내 고향의 주부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 비극이 끝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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