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치료에 대한 남과 북의 차이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15.01.22
nk_dental_305 북한 평양 문수지구 '류경구강병원'. 조선중앙통신은 이 병원이 현대적인 구강종합치료기와 진단치료실, 구급치료실, 재료준비실, 약국 등의 시설이 갖춰져있다고 전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요즘 저는 치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북한을 탈출했다 체포되어 강제 북송당한 이후 그 후유증으로 오래전부터 저는 이빨 통증으로 잠을 설친 적이 수없이 많았습니다만 두려움과 공포증으로 치과를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통증이 심해져 결국 국립의료병원치과를 찾았습니다. 접수를 하고 의사 선생님의 상담을 받으면서 저는 조금 놀랍기도 했습니다.

저는 무조건 통증이 심한 이를 뽑아 달라고 쉽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젊은 치과 의사선생님은 의아한 눈으로 저를 한참을 말없이 쳐다보더니 환자분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보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조금 기분이 언짢았지만 아픈 사람이 머리를 숙이라고 저 역시 조용한 침묵을 지켰습니다. 치아를 원상태로 살리는 것이 기본이라고 말하면서 잇몸에 많은 염증과 조금 이상한 것이 조금 보이기에 CT촬영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말없이 의사 선생님의 말에 따라 CT촬영을 했습니다.

처방도 없이 한주일 후에 오라고 예약을 해주고는 됐다고 합니다. 이빨 통증으로 죽겠는데 약 처방도 주지 않는다고 저는 투덜투덜 거리며 약국에 들려 통증을 없애는 약을 구입하고는 집으로 왔습니다. 시간이 지나 예약된 날짜와 시간에 맞추어 다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저는 나도 모르게 긴장감으로 인해 온몸이 조금 떨리기고 초조했습니다.

치과 공포증이 많은 저로서는 길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치과 병원이라는 글만 보아도 체중이 작아지는 것을 느낄 만큼 웬만해서는 치과를 잘 찾지 않았거든요. 남들 보기에는 아주 웃기는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보다도 제 치아는 형편없이 안 좋은데도 한국에 온지 10년이 지나도록 치과를 찾는 것이 이번이 고작 2번째입니다.

사실 북한의 치과 병원에서는 통증이 심한 이빨을 뽑아 달라는 환자의 호소에 말없이 뽑아 주거든요. 호적도 없이 남모르게 숨어 살던 중국에서 이빨 통증으로 인해 몇날 며칠을 잠 못 자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치과의사 자격도 없는 동네 아저씨가 통증으로 39도의 고열에 시달리던 제 이빨을 뻰치로 뽑아 주었는데 그만 제가 의식을 잃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기에 저는 항상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건강하고 좋은 치아를 볼 때마다 조금은 부럽기도 했습니다. 이곳 한국에 와서도 불면증으로 인해 감히 치과를 대담하게 찾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예약 날자가 되어 다시 치과를 찾았습니다. 이제부터는 기본 치료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더욱 조바심이 났고 긴장감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공포증으로 예약 날짜를 잡아 주면 될 수록이면 아침 첫 순번을 요구 했거든요. 제일 먼저 치과에 도착은 했지만 조금은 아니 많이 떨리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담당 의사는 제 치아를 보고 치료를 하려면 보통 2개월은 걸려야 한다고 하면서 우선 충치부터 치료 하고 신경 치료를 해야 하겠다고 합니다.

어쩌면 뽑으면 안 되는 가고, 괜한 소리 같지만 다시 한 번 부탁하자 여의사는 친절하게 얼마든지 살릴 수 있는 치아를 왜 무조건 뽑겠다고 하느냐면서 상세히 설명을 해 줍니다. 듣고 보니 의사의 진단과 설명이 맞는 말이었습니다. 뽑고 이를 새로 해 넣는 것보다 본 이빨이 더 좋은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치과치료에 관한 두려움과 공포증이 저에게 많다는 얘기와 신경이 남들보다 조금 예민하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의사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된다고 하면서 아프지 않게 해 주시겠다고 합니다. 충치 치료를 하고 약을 쑤셔 넣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만 저에게는 너무도 긴 시간인 것 같기도 합니다. 치료가 끝났으니 인제는 일어 나셔도 된다는 의사의 말에 의자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얼마나 긴장되었던지 현기증과 함께 아랫배 근육이 뭉치는 것처럼 아프기도 했습니다.

사실 치료를 받고 보니 별게 아니었습니다. 잇몸이 조금 뻣뻣하기는 했습니다만 하나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조금 쑥스러운 생각으로 집으로 오는 내내 저는 혼자 넋이 나간 사람처럼 웃었습니다. 의사들이 얼마나 나를 보고 웃었을까, 또 얼마나 내가 무식해 보였을까, 이것이 다 지옥 같은 북한 사회에서 태어나 여태 살아 온 때문인 것 같아 다시 한 번 후회스러웠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북한의 병원에 가면 첫눈에 들어오는 글을 쉽게 볼 수가 있는데요. ‘의사는 직업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책임진 혁명가’라는 글이 있습니다. 환자의 병은 의사가 진단과 판단으로 치료를 하는 것이 응당한 것이지만 북한은 환자가 참기 어려운 통증이 심하다고 뽑아 달라고 하면 환자의 장래는 어떻게 됐든 군말 없이 뽑아버립니다. 조금 웃기는 일이지만 의사들이 과연 생명을 책임진 혁명가 될 수 있겠는가 반문해 봅니다.

중국공안에 체포되어 북한으로 강제 북송되면서 고문으로 인해 앞 이가 부러져 말할 수 없는 통증과 고통으로 병원치과를 찾았습니다. 의사는 환자인 저를 먼저 진찰하고 상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손에 무엇이 들려있고 어느 정도 주머니가 불룩한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솔직한 말로 강제 북송되어 고향이라고 찾아간 제 손에 무엇이 들어 있겠습니까. 뻔한 일이었습니다만 저는 돈과 고일 물건이 없어 끝내 치과 치료를 거부당했고 이곳 한국에 와서야 치과 치료를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사람의 건강은 치아에서 부터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치아가 건강해야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잘 씹어 먹어야 소화도 잘되고 소화가 잘되면 병의 근원을 미리 예방할 수가 있고 치매도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북한사회에서 체득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하루빨리 버리고 새로운 의료 환경에 적응해야 건강한 나 자신을 되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됐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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