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회와 순교자 정신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14.12.25
cbeheaded_place_305 1984년 방한한 교황 요한바오로2세의 절두산 성지 방문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주말 저는 성지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천주교의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서울의 천주교 순례길은 종교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누구나 서울의 과거를 생생하게 체험하고 역사 속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올해는 벌써 한파가 찾아오면서 유난히 날씨가 매우 추웠습니다. 따끈한 커피를 보온병에 담아 가지고 조금 들뜬 마음으로 시간에 맞추어 출발 지점인 모임 장소로 갔습니다. 사실 저는 한 달 전부터 천주교 교리교육을 받고 있거든요.

일요일 마다 오전 한 시간씩 교리 교육을 받으면서 너무도 많은 새로운 생각을 해 봅니다. 사실 북한체제에서 나름대로 11년제 교육을 받고 민족 간부 양성을 받고 장교로 군 복무를 했으며 또 다른 사람들보다 주민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조금 특별한 직업을 가지고 내 인생의 반생을 살아온 저는 인간성미가 나름대로 뛰어났다고 착각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습니다.

때로는 교리 교육을 은근히 기다리게 됩니다. 비록 자그마한 성당 교육실이라고 하지만 마음이 가볍고 교육을 마친 뒤에도 역시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온답니다. 내 나이에 새로운 인성 교육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뭔가가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던 수많은 상처들이 조금씩 치유된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안정이 되는 듯도 합니다.

또한 교리 공부를 지도해주는 자원 봉사자분과 함께 교리 공부를 하는 친구들 역시 참 좋은 분들이랍니다. 서로 나름대로 바쁜 시간으로 겨우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게 되는 친구들이지만 만나면 서로 안녕하세요. 별일 없었죠. 또 헤어질 때이면 좋은 주말 보내세요, 라는 인사말을 하면서 헤어질 때면 괜히 조금 서운하기도 하답니다. 하기에 이번 성지 순례 역시 좋은 친구들과 함께 즐거웠던 시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서울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는 명동 성당에 갔습니다. 명동 성당은 서울 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이자 심장과도 같은 곳이라고 합니다. 명동 성당의 지하에는 순교 성인 5분과 순교자 4분 등 모두 9명분의 유해가 모셔져 있기도 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용산구에 자리 잡고 있는 새남터로 갔습니다. 새남터에 도착한 우리는 11시 미사에 참가했습니다. 미사가 끝나자 신부님에게 우리는 안수를 받았습니다. 박물관 참관을 했습니다.

새남터 성당에는 새남터에서 순교한 아홉명 등 총 14분의 성인 유해가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당고개 순교 성지를 찾았습니다. 당고개 순교 성지는 대체로 조용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9분의 성인과 ‘복녀’ 이성례 마리아가 순교한 곳으로 기해 박해를 장엄하게 마친 곳이라고 합니다.

제 마음 속 깊이 들어오는 글이 있었습니다. ‘주님, 찢어지는 아픔에도 영원히 지워 지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살게 하소서’한신부의 어머니인 순교자는 체포되어 감옥 안에서 쓰러져 가는 어린 자식들 때문에 흔들렸지만 맏아들이 신부라는 죄로 다시 체포되어 용감하게 배교를 취소하고 끝내 감옥 안에서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자식들을 위해 배교하고 자식들을 위해 순교 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에게 자식들이 희광 이를 찾아가 ‘우리 어머니가 아프지 않게 단칼에 하늘나라로 가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청탁 했다는 이야기였는데 해설을 듣는 내내 저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우리는 절두산 성지에 도착했습니다. 절두산은 수많은 교인들이 이곳에서 처형된 후에 천주교인들이 목 잘려 죽은 곳이라고 합니다. 성해를 모신 지하묘소와 한국 교회의 발자취를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자료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관으로 국내외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코스인 절두산 순교 성지 순례를 마치고 자그마한 촛불을 켜고 소원을 빌고 있는데 내 마음을 알아주듯이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사실 이런 말도 있습니다만 내가 좋아 하는 사람들의 머리위에 조금씩 쌓여 가는 함박눈을 보며 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함박눈을 맞으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는데 어쩌면 하늘도 내 마음을 이렇게 알아줄까, 하고 생각을 하니 더더욱 제 마음은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성지 순례를 마치고 집으로 오면서 저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눈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잠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한 하늘 한 지붕에서 함께 살고 있는 한 민족이지만 왜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어째서 북한 주민들만이 어려운 생활고를 겪으며 살아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 저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교인들을 공개 총살하고 죽어서도 나올 수 없는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는 교인들을 본 기억이 납니다만 혹 그래서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직 믿음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먼저 간 우리 순교자들의 피가 헛되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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