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복더위 삼계탕

200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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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7월은 그 어느 해보다도 제일 기억에 남는 추억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예년에 없었던 일찍 찾아온 장마 비에 가는 곳마다 많은 피해를 보므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었고 슬픔을 안겨준 7월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큰 무더기 비로 많은 나라들에서의 수재민들에 대해 텔레비전를 통해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주민들이 수재민들의 아픈 마음을 진심으로 돕고 있는 자랑스러운 모습들을 청치 하면서 지금도 많은 수해에 굶주림을 겪고 있을 우리의 부모 형제들과 또 지나간 세월 수재민이 되었을 때의 추억에 대해서 말입니다.

여기 서울의 주민들들 뿐만이 아닌 남한의 모든 국민들은 정부에서 명령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 자각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 많은 수재민들의 아픈 상처를 자신들의 아픔으로 함께 겪으며 직접 가정들을 찾아가 진심으로 돕고 있으며 나라를 지켜선 군인들 역시 제 부모 제 형제 된 심정으로 현실 속에 들어가 한 삽의 흙을 떠도 하나의 라면 한 토리의 쌀을 전달하여도 진심어린 사랑으로 배려하고 있는 그 현실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더더욱 내 고향을 그려 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날도 그러 했지만 지금도 내 고향의 우리 부모 형제들은 우리 남한과 꼭 같은 수해로 많은 수재민들이 있지만 국가와 정부만을 처다 보며 손만을 들고 앉아 있을 그 모습이 영화의 화면처럼 떠오르며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 밤을 들 수가 없습니다. 잠자리에 누으면 조카들이 큰엄마 하고 찾는 듯한 느낌이 들고 귀에는 낯익은 목소리들이 들리는 듯한 느낌이 환각 속에 들리는 듯합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자식들도 그러한 느낌이 온다면서 어느 날에는 온 식구가 앉아서 밤을 새운 적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7월에는 재해로 많은 피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의 기쁨을 앗아가려고 하였지만 절대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내 고향의 북한에서는 느끼지 못하고 보지 있지 않았던 특이 한 일들도 저를 놀라게 하였던 추억들도 있었습니다. 지난 20일 오전 11시 쯤 되어 저의 손 전화기는 난데 땔래랭 땔래랭 하고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날은 며칠째 오던 비도 멎고 날씨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은 날씨였습니다. 저는 호기심을 가지고 손 전화기를 들고 메시지를 확인 하였습니다.

복날을 알리면서 좋은 날씨에 좋은 하루가 되길 기원한다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날이 바로 초복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출근한 몸인 지라 아이들에게 점심에 잊지 말고 꼭 삼계탕을 먹으라고 문자 메시지로 알리었습니다. 그 메시지를 보내주신 분은 제가 이용하고 있는 서울의 국민은행 지점장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고객들에게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로 이 남한은 남을 위해서 또 고객들을 위해 봉사하는 봉사자들의 기쁨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를 많은 심려를 쓰고 있는 사랑을 진심으로 새롭게 찾게 되었고 알게 되었습니다.

저녁에 퇴근하여 집에 들어가니 둘째 딸은 삼계탕을 주문하여 놓고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색다르고 맛있는 삼계탕을 먹으며 또 한번 고향 생각을 하였습니다. 고향에서는 삼계탕을 닭곰이라고 하는데 아무나 쉽게 먹어 보는 음식이 아닙니다. 가정에 몸이 허약하거나 앓는 환자가 있으면 한 번씩 해주는 보약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1년12달이 가도 먹을 수가 없는 특별한 보약입니다.

어느 해인가 저는 애 아빠가 몸이 약하여 때 없이 많은 기침을 하며 시름시름 앓고 있었습니다. 저는 겨울에 남모르게 부엌 바닥에 닭 한 마리를 키웠습니다. 그 닭이 어느 정도 컸기에 환기와 찹쌀 밤을 넣어 닭곰을 하여 아이들이 다 잠든 밤에 애들 아빠에게 주었는데 그만 애들 아빠는 아이들 생각에 먹지를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보다 더 웃기는 것은 다음 날 아침에 아이들은 부엌 바닥을 열고 왜 닭이 없는 가고 묻는 바람에 저는 아무 말도 못하고 침묵만으로 애들 아빠와 눈 만 꾸벅꾸벅 하였습니다.

지금은 그 추억을 하며 웃을 수 있지만 그때엔 철없는 아이들에게 무슨 죄라도 지은 듯한 마음으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 남한에서는 아무 식당에 가도 먹을 수가 있으며 가정에서도 흔히 해먹을 수 있는 음식입니다. 아이들의 이런 추억을 하며 삼계탕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저는 여기 남한의 행복한 생활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간 애들 아빠가 하늘나라 그 어느 곳에서라도 내려다보면 얼마나 기뻐할까 하고 혼자 생각을 하였습니다.

오늘도 북한의 주민들은 지난날 저의 그 잊지 못할 가슴 아픈 추억이 현실로 되고 있습니다. 삼계탕은 고사하고 하루 세끼 밥도 제대로 배불리 먹을 수가 없으며 우리의 여성 들은 가족의 생계 때문에 피 눈물을 남모르게 흘린 적이 수 없이 많습니다. 언제이면 내 고향 사람들도 이런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바램을 항상 기원하면서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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