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YS 서거 보도 왜 안 할까?

201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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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이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이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최민석: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 내용을 다시 한번 뒤집어보는 ‘북한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오늘 진행을 맡은 최민석입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정영기자, 오늘 우리는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정영: 남한에서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알려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20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가 서거한지 5일이 지나도록 북한 매체는 전혀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남한에서 군정정치를 끝장내고, 민주화 시대를 연 김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북한도 잘 알고 있는데요, 북한이 왜 보도하지 않는지 이 시간에 분석해보겠습니다.

최민석: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오늘, 한반도 시간으로 26일 진행되지요? 그런데 북한에선 아직 반응 없습니까?

정영: 북한 노동신문을 비롯한 관영매체들은 오늘 이 시각까지 김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보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때 ‘민주인사’로 까지 깎듯이 불러주던 북한이 조전을 보낼 법도 한데 아예 보도자체를 금하고 있습니다.

이는 북한에서 ‘민주화 인사’로 동시대를 빛냈던 김대중 대통령 서거 때와 사뭇 다른 모습인데요, 북한은 지난 2009년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바로 다음날에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의로 조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김기남 노동당비서를 단장으로 하는 6명으로 구성된 조문 사절단도 남한에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떴을 때도 바로 이튿날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의로 조전도 보내왔습니다.

최민석: 그런 걸 보면 북한이 한국의 햇볕정책에 대해 굉장히 아쉬워하는 것 같습니다.

정영: 이처럼 북한은 2중 보도행태를 취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한국 국민들은 ‘북한을 지원하던 대통령은 깎듯이 보도해주고, 지원하지 않던 대통령은 보도도 하지 않냐?’고 힐난하고 있습니다.

최민석: 북한이 과거에도 이렇게 차별적으로 보도한 적이 있었나요?

정영: 자기네 한 테 어떤 상대였는가에 따라 보도성격이나 사용하는 문구도 달라지는데요, 예를 들어 1960년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났을 때는 “리승만 괴뢰정권이 무너졌다”고 당장 남북이 통일될 것처럼 떠들썩했습니다.

그러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됐을 때는 “박정희는 끝장났다!”고 중앙방송에서 보도했는데요, 그때 확성기에서 터져 나오던 남성의 목소리를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북한은 자기에게 우호적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조의를 표시하고, 강했던 대통령은 맹비난하고 있습니다.

최민석: 그러면 북한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정영: 북한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야당총재 시절에 그를 가리켜 ‘민주인사’라고 불러주었습니다. 아마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 맞섰던 야당총재였기 때문에 그를 지지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갑자기 ‘김영삼 역도’라고 말을 바꾸었습니다.

최민석: 왜 인사에서 역도로 갑자기 바뀌어요?

정영: 텔레비전을 보던 북한 주민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어제까지 민주인사라고 하더니 역도가 무슨 말이냐고요? 그 이유는 김 대통령이 북한 핵문제에 아주 강경한 입장을 취했기 때문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최민석: 김영상 대통령이 북한에는 강경했지요.

정영: 출범 초기에 김영삼 정부는 대북포용정책을 실시했습니다. 김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고 연설했습니다. 그리고 비전향 장기수 리인모 노인을 1993년에 아무 조건 없이 북한으로 돌려보냈지요.

그런데 1994년 북핵위기가 터지자, 김영삼 대통령은 “핵을 가진 자와 악수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입장 표명을 하자, 북한의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최민석: 그래도 김영삼 정권이 북한에 해준 것도 많지 않나요?

정영: 김영삼 정부가 북한에 해준 일 중에 가장 큰 것이 영변 핵시설 폭격을 막은 겁니다. 그때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미군 폭격기가 들어와서 폭격할거라고 바짝 긴장했었는데요, 김영삼 정부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미국 정부를 강력히 자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김일성 주석과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도 했지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기 임기에 통일하겠다는 의지도 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비록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무산되긴 했지만요.

김일성 주석이 1994년 7월 8일 묘향산 별장에서 사망하지 않았습니까, 이 두 사람의 만남을 달가워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최민석: 김정일 위원장은 이 두 사람의 만남을 매우 우려했지요.

정영: 김일성 주석이 말년에 남북정상회담을 하려고 했던 것은 당시 북한 주민들이 배급이 끊겨 굶어 죽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을 보고받고, “이러다가 인민들이 들고 일어나겠다”고 걱정하면서 남한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도와줄 곳은 남한 밖에 없었습니다. 구 소련과 동구권은 다 망한 상태였고, 러시아는 자기 앞가림도 못해서 쩔쩔 매는 상태였고, 그렇다고 중국을 보니까, 중국은 이미 남한과 수교를 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남한이 내민 손을 잡으려고 했는데, 그때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다 물려받은 상태이고 그래서 만약 두 사람이 만나는 경우에는 자기 권력유지가 위태롭기 때문에 아버지의 죽음을 방치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최민석: 방치했다면 어떻게 했다는 겁니까,

정영: 김일성 주석이 묘향산 별장에 가서 정상회담 준비를 할 때 담당 주치의를 따라 보내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김일성 주석이 심장쇼크를 받고 쓰러졌을 때 그를 치료하기 위해 떠났던 심장 박동기를 실은 직승기가 도중에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난 것도 우연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최민석: 김영삼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보겠다고 노력을 많이 했군요.

정영: 그런데 북한의 심기가 완전히 삐뚤어진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남한으로 망명해온 황장엽 노동당 비서와 개인적으로 가까웠다고 합니다.

최민석: 김영삼 전 대통령이 황장엽 비서에게 갈 데가 없으면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살자고 말까지 했다지요?

정영: 한국언론에 따르면 황 전 비서가 김대중 정부 때 너무 고립되어 있고, 탄압을 받으니까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갈 데 없으면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살자”고 말할 만큼 가까웠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최민석: 결국 북한이 남한 대통령 서거에 대해 제대로 보도해준 사례는 앞서 본대로 2명뿐이군요. 결국 북한을 도와준 대통령들은 잘 해주고, 아니면 비난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군요.

정영:  북한은 남한에서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처음에는 ‘남조선 집권자’라고 하고, 그 다음에는 ‘남조선 당국자’이렇게 보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북한에 강경한 자세를 보여주면 실명을 거론하면서 싸잡아 비난합니다.

최민석: 그래서 북한 언론을 가리켜 프로파간다, 즉 선전선동 매체라고 하는군요. 북한 언론이 사실 전달에 충실한 그런 성숙된 언론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정영기자 수고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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